박종국의 글밭 2011-177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는 착한 이웃들
박 종 국
주말이면 우리가족은 으레 동네 목욕탕에 갑니다. 시설은 다소 떨어지지만 주인 마음이 너그럽고 물이 좋습니다. 하여 아들딸 앞세우고 두어 시간 부시고 나면 한주일 동안 묵은 피로가 싹 가십니다. 아무리 사우나를 자주 한들 널따란 온탕에 몸을 푹 불렸다가 때수건으로 쓱쓱 미는 기분에 미치지 못합니다. 한사코 사우나찜질에 매료됐던 친구도 동네 목욕탕의 묘미를 알고부터는 아예 단골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비까번쩍한 사우나보다 한적한 동네 목욕탕을 즐겨 찾습니다. 그곳에 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도 금방 마음 트기가 됩니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사는 형편이 비슷한 까닭입니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서로의 등을 쓱 한번 밀어주고 나면 지기가 됩니다. 그네들과 나는 목욕만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하게 몸을 부시고 난 뒤에는 탈의실 평상에 앉아 그간 막막했던 세상사에 물꼬를 틉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못난 사람들을 함부로 싸잡지 않습니다. 좋게 이야기하고 너그럽게 공감합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남의 이야기에 더 신경을 씁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향한 경청의 폭이 넓습니다. 마음이 착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선량하면 모든 것이 좋아집니다. 사람의 마음은 일정한 음정을 가진 악기와 같아서 즐겁고 기쁜 일을 만나면 고아한 음률을 창출하지만, 괴롭고 슬픈 일을 만나면 불협화음을 만들어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침묵으로 빠져듭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침실이 있어 기쁨과 슬픔이 살고 있습니다. 한 방에서 기쁨이 깨었을 때, 다른 방에서 슬픔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슬픔을 깨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고, 행복한 생활 또한 마음의 평화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그 마음에 숨어있는 미치광이가 깨어 날뛰지 않게 조심하여야 합니다.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분명 기쁨의 침실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마음처럼 부드럽고 엄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듯이 각자의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 안이 깨끗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한 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처럼 사악하고 변덕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좋든 싫든 자기 것으로 애써 붙들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며 자주 변하는 성질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더구나 마음 없이 그냥 뜻 없이 대하는 만남에는 늘 미운 구석이 엿보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싫은 사람의 정원에서 자유로이 사느니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쪽이 훨씬 낫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애인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를 오래 지배하려거나 소유하려든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를 경멸하는 것입니다. 위아래가 나눠지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서로 동등해야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배려할 수 있고,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나날이 서로의 좋은 점을 찾아내고 북돋워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착하면 그 모든 게 가능합니다. 어떤 사랑을 갈구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은 시냇물과 같습니다. 시냇물은 산을 만나면 몸을 좁혀서 가늘어져서 바위틈을 빠져나갑니다.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때론 평야를 만나면 해변에 누운 피서객처럼 게을러서 마냥 널브러지기도 합니다. 땅위에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면 땅속으로 쓰며들거나 하늘로 올라가 구름으로 변신해서라도 다시 땅으로 내려와 바다로 향하는 열정을 계속 이어갑니다.
참 좋은 마음을 얻고자 하거든 동네 목욕탕으로 가 보세요. 그곳엔 아직도 먼먼 옛날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뚝배기로 끓여주시던 토장국 같은 순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고급화되는 사우나찜질로 인해 너무나 많이 이웃을 잊어버렸습니다. 2011. 05. 30
/천안지역 장애인종합정보지 <한빛소리> 제 180호, 2011년 6월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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