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글밭 2011-195
함부로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들
박 종 국
저녁 무렵 면내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평상시에는 아내랑 함께 걷는 산보길입니다. 딱히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는 길은 아니어도 냇가를 따라 걷다보면 이내 인조잔디구장이 나타납니다. 밤 엳아홉 시인데 운동장에는 불빛이 환합니다. 지역 축구사랑 동호인들이 다 모였습니다. 나도 졸보기안경을 끼지 않았을 때는 열심히 공을 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뛰고 달리면 시야가 원만치 않아 아예 공을 차지 않습니다. 공을 찾아다니며 땀에 흥건하게 젖은 사람들이 참 건강하게 보였습니다.
공을 차지 않아도 운동장 바깥을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룩하게 삐어져 나온 뱃살 탓에 자주 나가다보니 낯익은 얼굴도 많습니다. 그중에 두 분 수녀님이 참 인상적입니다. 반 팔 반 바지차림으로 운동장 두어 바퀴만 돌아도 송송 땀방울이 맺히는데 수녀복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팡팡 내달아 걷습니다. 가만가만 뒤따라가 보지만 세월아 네월아 하는 요량으로 걷는 내 발품으로는 금방 숨이 찹니다. 여느 분들도 두 분 수녀님을 크게 앞서지 못합니다.
발목이 제법 시큰하다고 느껴졌을 때 본부석 스탠드에 올라가 쉽니다. 운동은 즐기는 것이지 무리하면서까지 욕심 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나다녀도 살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잖아도 아내는 운동을 하지 않아 배불뚝이가 되었다고 핀잔을 해댑니다. 그나저나 저는 햄버그나 피자, 치킨, 삼겹살을 제외하고는 먹성이 좋아 문제입니다. 푸성귀라면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살찌는 것을 걱정할 노릇이 못됩니다.
한참 동안을 공차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너른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는 사람들이 자못 부러웠습니다. 열시쯤 경기가 끝나자 동호인들이 서둘러 떠났습니다. 근데 볼썽사나운 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이 머물고 간 뒤끝이 잡동사니로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하나 치우려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운동은 열심히 하면서 자기들이 냅다 만들어 놓은 쓰레기는 그냥 두고 갔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 공을 찬 동호회 회원들의 뒷마무리는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불러 세워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습니다.
선사(禪師)의 글 중에 살면서 쓰레기를 만드는 무리 오직 인간밖에 없다고 질책(叱責)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소나, 닭이나 돼지, 나는 새, 풀벌레는 어느 것들도 제 삶의 흔적으로 쓰레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기분 좋아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을 탓하고 싶은 까닭은 없습니다. 어느 모임이고 간에 마시는 것이 가장 큰 의미요, 더 바랄 게 없는 행복입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소중하듯이 남겨진 쓰레기는 제 손으로 치우는 게 당연합니다. 한데도 아무렇게나 내던진 쓰레기가 미워터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잘 놀다가 곱게 떠나면 좋은데, 얼없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상합니다. 까닭 없이 냅다 버린 쓰레기 대체 누가 치워야 합니까.
마음을 바로 쓰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만들지 않습니다. 특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머물다 간 자리는 온전하게 매만져져 있습니다. 산의 후덕함을 알고 그 넉넉함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소중하듯이 꽃들도 나무도 애틋하게 대해야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아는 것이 많아서 참다운 교양을 지녔다고 해도 그 사람이 머물었던 흔적이 말끔하지 않으면 크게 빛나지 않습니다. 자연을 홀대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연의 보복이 따릅니다. 아무리 말없는 풀꽃나무라 해도 짓밟거나 함부로 대하며 싫어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알아야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알량함으로 쓰레기 한 봉지 툭 던져두고 가는 사람들 많이 반성해야합니다.
요즘은 전국에 걸쳐 생활쓰레기 매립장 마련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도 병원쓰레기 매립장 문제로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일의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지역주민들에게 의견 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쳤어야 함에도 편의주의에 길들어진 관치행정은 언제나 곁다리만 짚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지역주민들이 농투성이로 평생을 땅만 파먹고 살았어도 ‘이게 아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히 꿰뚫어냅니다. 단순 농투성이들이 뭘 알겠냐는 식으로 그냥 밀어붙일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순리를 따라야 하듯이 지역주민을 함부로 대하는 오만 불순한 결정들 당장에 접어야 합니다. 농민들 머리 질끈 동여매고 낫자루 삽자루 거머쥐면 그때는 이미 늦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어쭙잖은 일들로 화딱지 나지 않게 관치행정의 병폐는 당장에 거두어야합니다. 너그러운 농심(農心)을 바로 읽어야 합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문제를 푸는 해결 고리는 아주 작은 것에 있습니다. 집 근처 슈퍼마켓 한쪽에 자판을 벌리고 있는 초로(初老)의 할머니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 분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눈인사합니다. 그렇게 잘 팔리지도 않지만 온갖 정성을 다하여 푸성귀를 다듬고 계십니다. 하루 종일 자릴 지키고 앉아 있어도 몇몇 가지 밖에 팔지 못했어도 장사를 접을 때면 으레 뒷정리를 깔끔하게 챙깁니다. 그분의 삶이 그렇듯이 큰 것 덤으로 바라지 않고 당신이 해야 할 일만큼은 어느 누구 손 빌리지 않고 몸소 합니다. 많이 배웠다고 우겨댈 일이 아닙니다. 조그만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따라야합니다.
당장에 발 딛고선 삶의 언저리를 살펴보세요. 가지런합니까. 함부로 쓰레기 만드는 일에 처연하지 않습니까. 그저 편하게 살려고 툭툭 던져버리고, 아무렇게나 처박아 버리는 손끝은 없습니까. 한 알의 사과도 전체가 한꺼번에 썩어 문드러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까끄라기에 채이고 멍들어서 곪아듭니다. 별 생각 없이 쓰고 있는 물과 흙, 무한정일 것 같은 공기 또한 그러합니다. 상하고, 더럽혀지고, 매캐한 냄새가 나서 후회한들 이미 소용없습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결코 되돌려지지 않습니다. 늦기 전에 조그만 것부터 충심으로 챙겨가며 살아야겠습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겠습니다. 2011.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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