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대북 송금에 수수료 60만원…
브로커에 떼이기도
"수수료 비싸지만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보내"
"제가 남한에서 벌어서 보내주는 돈이 북에 있는 가족에겐 생명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2002년 중국으로 탈북해 2007년 입국한 A(42.여)씨는 지난 5월 초 함경북도에 있는 가족에게 200만원을 보냈다. 북한으로 보낸 4번째 송금이다. 북한으로는 은행을 통해 돈을 보낼 수 없기에 '돈이 제대로 간다'고 알려진 믿을만한 '송금 브로커'를 소개받아 이용했다.
돈은 3단계를 걸쳐 전해졌다. 송금 브로커가 알려준 중국의 다른 브로커 계좌로 A씨가 200만원을 이체하자 입금을 확인한 중국 브로커는 보따리상으로 북한을 드나드는 조선족을 통해 A씨의 가족을 찾아 국경 지역까지 데리고 나왔다.
두만강 국경 지역까지 나온 A씨 가족은 브로커의 휴대전화로 A씨와 통화를 하며서로 안부와 송금액수를 확인했다. 이런 절차를 거친 뒤 브로커는 가족에게 돈을 건네줬다. A씨는 브로커에게 수수료로 60만원을 따로 챙겨줬다.
A씨는 "200만원이면 북에 있는 네 명의 가족이 1년 동안 굶지 않고 쌀밥을 먹으며 살 수 있는 돈"이라며 "그 생각만 하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A씨뿐 아니라 많은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부치고 있다는 것은 이젠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탈북자 지원단체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이 지난해 30세 이상 탈북자 3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1.4%가 북한으로 돈을 부친 적이 있다고 답했고, 같은 해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설문에서도 조사 대상 탈북자 396명 중 49.5%가 송금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탈북자 B씨는 "내가 (남한으로) 내려와서 나 때문에 가족들이 요시찰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눌려서 펴지도 못하고 사는데, 경제적으로라도 좀 펴고 살게 해주고 싶어 돈을 보낸다"고 말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탈북자 중 많은 사람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국경을 넘어 탈출해 중국에서 돈을 벌어 보내고 있고 한국으로도 넘어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급이 끊겨 먹고살 길이 막막한 북한에서 사는 가족을 생각하고 챙기는 건 남한에서 상대적으로 호의호식하는 탈북자들에겐 인지상정이라는 얘기다. 남쪽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부유하게 살진 못하지만, 북의 가족을 생각하면 적은 돈이나마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의 한 탈북여성은 "한국에 온 지 3∼4년밖에 안 돼 여기 적응하기도 바쁘지만, 내 가족 생각하면서 허리띠를 조이고 보낸다"며
"사실 여기 사는 사람도 100만∼200만원 보내고 나면 한동안 허리가 시큰하다"고 했다.
송금이 브로커를 통해 불투명하게 이뤄지다 보니 탈북자들 사이에 송금 관련 피해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돈을 보내는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완전히 다 뜯겼다'는 사람부터 '수수료로 50∼75%까지 물었다"는 사람까지 사연도 다양하다.
지난해 새조위 설문조사에서 북의 가족에게 돈이 전달되지 않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33.3%에 달했다.
탈북자 C씨는 "그래도 직접 국경을 넘어가서 주고 올 수는 없으니 브로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수수료가 비싼 편이지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돈을 보내도 북에 있는 탈북자의 가족은 대놓고 쓰진 못하지만, 장마당을 통해 음성적으로 식료품과 일용잡화를 사서 살 수 있고, 장마당에 나가 장사하는 밑천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웃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눈치로라도 알게 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들키면 작살난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양강도 혜산 출신 탈북자 D씨는 "최근 김정은으로 권력이 세습되면서 탈북자 가족을 색출해 추방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탈북자들이 북으로 보낸 돈이 결국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탈북자들에겐 부담스럽다.
탈북자들은 "우리가 보내는 돈은 모두 우리 가족 입으로 그대로 들어간다"며 "김정일이나 북한 당국에 흘러들어 가지 않는 돈"이라고 강조했다. 탈북자와 관련단체들은 오히려 이 돈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신미녀 새조위 대표는 "탈북자들이 보내는 돈은 실제로 가족들의 생활비로 쓰이는 돈이고, 이렇게 들어간 돈이 북한 주민의 생각을 바꿔 사회 저변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통일부가 어떤 종류의 대북송금이라도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탈북자 사회가 한때 술렁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일정 금액 이하로 북에 보내는 생활비나 의료비는 예외로 한다"며 "이제까지 위법성 논란이 있던 부분을 법적인 정비를 통해 합법화하자는 게 본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어쨌든 정부가 북한으로의 송금을 들여다보고 감시하겠다는 것처럼 들려 불쾌하다"며 "송금에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 정부 모르게 송금하는 방법을 찾거나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도 고려해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연합뉴스) [2011 12 11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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