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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청춘으로 산다_박종국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4. 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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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101


나는 언제나 청춘으로 산다


박 종 국(교사, 수필가)


 “선생님, 저예요. 민숙이! 민정이랑 창녕이에요. 여전도회 교육 세미나 왔다가 전화해봤어요.”

 “그래, 거기 어디냐? 민정이랑 같이 왔다고?”


반가웠다. 거제도 첫 발령지 제자로 둘은 자매다. 곧장 차를 몰아 장마면에 있다는 기독교여전도회관에 다다랐다. 못난 선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둘이 아니라 넷이었다. 만나기 전까지 사춘기 소녀의 기억이었는데, 만나고 보니 각기 아들 하나씩 앞세운 어엿한 엄마였다. 해맑게 웃음 띤 얼굴은 변함없었다. 


 “가스나, 하나도 안 변했네.”

 “선생님도 예전 모습 그대론데요.” 


순간 내 입에서 반갑다는 말보다 ‘가스나’가 먼저였다. 그랬다. 이십여 년 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 변한 게 없었다. 반가움에 차를 몰았다. 제자들이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고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듯 1980년대 초반으로 돌아갔다. 총각 선생님과 말괄량이 계집애로 마냥 깔깔댔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와 수다를 떠는 선생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학산, 그때가 좋았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네, 우리도 그래요. 뭣 모르고 뛰놀았던 그때가 그리워요.”

 “지난번 마을에 들러보니 안면 있는 분이 밖에 없더라. 강산이 세 번 정도 변했으니 그때 어른들은 다 돌아가신 게지. 학교도 폐교가 되어 버렸더라.”

 “저희도 이젠 서른 마흔의 나잇살을 가졌어요. 세월 참 빠르죠?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게 늙지 않으셨어요. 아이들하고 사니까 세월을 잊고 사시는 것 같아요.”


첫 발령을 받아 섬마을 조그만 학교에 5년 동안 근무했다. 그래서 두 살 터울인 자매뿐만 아니라 남동생까지도 담임을 맡았다. 그래서 민숙이 집안 사정은 손금 보듯 훤하다. 그만큼 그들의 부모님과도 절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제 그 분들도 환갑을 맞았고, 장성한 아들딸이 시집장가 보냈고, 남부러울  만큼 손자손녀를 두었다. 난 달랑 아들 하나만 두었을 뿐이다. 살아보니까 자식 많이 둔 게 가없는 행복이다.


 “민숙아, 민정아, 너흰 참 행복하게 산다. 내 나이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미덥고 착하게 살더라. 물론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도 열심히 살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 보다 진실한 삶을 일구고 살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신앙을 가지니까 생활이 신실해지는 것 같아요.” 


민정이가 신앙을 가졌다는 건 의외였다. 초등학교 시절 녀석은 선 머슴애였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재주꾼이었다. 깔끔을 떨고, 소위 공주병이었던 언니에 비해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또래들에게도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되레 민정이가 더 내숭쟁이였다. 선생님을 좋아한 나머지 그저 눈길만 마주쳐도 가슴이 두근두근했었다는 얘기를 하며 서른 중반 나이에도 얼굴 붉히는 것을 보면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예뻤다.


 “민정아, 못난 선생이 그렇게도 좋더냐. 그래, 지금 만나보니 어때? 이젠 나도 많이 늙었지?”

 “선생님, 지금까지 만났던 제자 중에서 누가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웠나?”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제자들 많지. 지난해까지 6학년으로 내 반을 거쳐 간 아이가 천 명인데, 그래도 그 중에서 민숙이 네가 가장 예쁘다! 기분 좋냐? 가스나.” 


여든의 어머니 눈에 예순의 아들이 마냥 예쁘듯이 선생의 눈에 비친 제자는 하나같이 예쁘다. 마흔 줄에 두 아이 엄마 민숙이가 왕공주병에 걸렸더라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제자다. 자매는 교육 세미나 교사로 왔다고 했다. 빡빡하게 짜인 일정 탓으로 더 이상 얘기 나누지 못하고, 마트에 들러 팔십 여명의 아이들에게 나눠 줄 간식을 챙겨서 전도회관으로 들여보냈다.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멀어져 가는 자매와 아이들을 보며 갑자기 내 자신이 할아버지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인데, 제자들이 어엿하게 성장하는 것만큼 늙는 것은 축복이다. 이제부터의 내 인생은 좋은 뜻을 심어놓은 제자들을 두루 만나는 즐거움이 남았다. 그들과 함께라면 나는 언제나 청춘으로 산다. 201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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