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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아이는 없다_박종국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5. 2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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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137


문제 아이는 없다


박 종 국(교사, 수필가)


살면서 같잖은 일에 부대낀다. 오늘도 반 아이들 일로 경찰(형사)과 언쟁을 했다.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담임이 문제해결의 단초가 되어야한다. 또 아이들 편에서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 근데 요즘 아이들은 사뭇 부대낌이 심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생활지도에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그 행동 하나하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때론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암울하다. 다들 현재의 상태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을 하면 할수록 공부벌레만 양산하는 형국이다. 이것은 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교육의 목적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 배울수록 경쟁의 늪에 허우적거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전철이다. 경쟁이 아닌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는 게 교육이어야 한다.


단지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죽자고 공부만 해야 하고, 잘못된 교육정책 때문에 교육이 좌지우지되고, 사회에 나가도 써 먹지도 못하는 공부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도 공부만 하도록 애들 등을 떠미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니 한창 자라야할 아이들이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고, 제 하고픈 것을 못하니 스트레스만 쌓이는 것이다. 그 결과는 빤하다. 급기야 젊은 혈기가 폭력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은 애 키우기가 무섭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아이들 가르치기가 만만치 않다. 이것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잘못이다. 기성세대로서 자신은 공부를 잘 했다고 치부하면서 애들을 그저 공부만 하게 만들고 있다. 기성세대도 학창시절에는 지독히 공부가 하기 싫었다. 그런데 그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하니 아이들은 억압된 감정을 풀지 못하고 쉽게 일탈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일탈행동을 보면 기성세대가 제 잇속만을 위하는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자신의 아이를 바르게 키우고 싶으면 부모의 행동도 바르게 해야 한다. “이 놈들아, 내가 바담풍하는데 왜 너희도 바담풍하느냐”는 훈장의 다그침은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들에게 필요도 없는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아이의 심성을 크게 그르치는 일일뿐더러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 될 뿐이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을 보면 숫제 우리나라가 미국의 한 주인가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눈만 뜨면 영어를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 영어 공부가 부족하여 학원과외까지 나서고 있다. 가히 영어공화국이다.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영어공부를 해도 미국에 가서 영어 한번 쓸 일이 없는 사람도 단지 대학가고 좋은 직장 얻기 위해서 죽자 살자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난 이런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회사에 취직해서도 영어를 써야할 사람은 소수이다. 영어가 필요하면 그때 배워도 될 일을 무리하게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다.


초등학생 때는 한 인간으로서 기본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다. 하여 이 시기는 우리말 교육에 보다 충실하여 인간본연의 심성을 도야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한데 지금은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영어공부에만 시간이 뺏겨 윤리교육 등을 소홀히 하게 되니 나쁜 가치관이라도 자기 자신만 우선하면 된다는 가치관이 팽배하고 있다. 빈발하고 있는 학교폭력도 그와 같은 맥락에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 사회가 더욱 각박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운동선수가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운동을 잘 하면 된다는 게 우리의 편견 아닌가.


학교폭력에 대해서 언론매체들이 앞 다투어 논지를 쏟아낸다. 그렇지만 그 어떤 전문가가 혜안을 제시해도 학교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답답하게 아이들 교육현장에서 사회문제의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 처방전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건강하게 잘 놀 수 있을 때 그들의 잠재력은 자연 풀려난다.


경우가 그러한데도 사사로운 아이들의 행위하나조차 범죄시하여 치도곤 하겠다는 경찰의 일처리는 동의할 수 없다. 정녕 문제 부모가 있을지언정 문제 아이는 없다. 열서너 살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얼마나 중대한 죄과를 범할까? 문제 사단을 법의 잣대로만 해석할 게 아니라 긴긴 아이의 장래를 대성적인 견지에서 고려하고 또 고려해 보아야한다. 아이가 일탈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책무성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문제 아이는 없다. 201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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