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주부
박 종 국
서울시가 발표한 ‘2011 통계로 보는 서울 남성’은 여성·부모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는 남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육아·가사를 전담하는 가사전업 남성이 3만6000명으로 2005년(1만6000명)보다 2.3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가사전업 남편은 1만8000명(2006·2007년)에서 2008년 2만3000명으로 급증한 이후 계속 증가세에 있다. 이는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난이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통계에서는 특히 서울 남성들의 세대별 특징이 엿보인다.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는 20대 후반에 여성 취업자에게 밀려 취업난을 겪고, 30대에는 되도록이면 결혼을 늦추고 부모님과 동거하고 있다. 또 결혼 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전담을 하는 남편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가사전담 남편들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오후 2시 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무리의 남성들이 멋진 와인을 마시며 일할 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권운동가들이 처음 사회에서 봉착했던 문제를 떠안고 새로운 직업 영역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도전하는 ‘현대형 가사전담 남편’들이다.
요즘은 아내가 육아를 이유로 직장을 그만 두는 것보다 남편이 가사를 전담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아내가 전체 수입의 75% 이상을 벌면 남성은 일할 필요가 없으니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돌보기, 생일파티, 친척, 친구모임준비, 가정부, 정원사 관리, 부동산 관리, 자산투자 등을 도맡으며 남편이 집에서 살림을 한다. 조용히 외조하는 남편이 그만큼 많아졌다.
베란다에 말끔하게 세탁된 빨래가 가지런하게 널려 있다. 각 방마다 서랍장마다 물건은 잘 정리되어 있다. 일에 지쳐 피곤한 아내를 위해 보금자리를 알뜰하게 매만진다. 아이들의 지지를 받기위해 사랑으로 준비한 영양식이 깨끗한 그릇에 담겨있다. 아내를 기다리며 밥 짓고, 두부찌개 끓이고, 저녁상을 차린다. 오늘도 가사전담 남편은 사회적으로 표가 나지 않고, 각광도 받지 못하고, 쓴 감투도 없지만 그들은 자기 일에 충실함으로써 행복하게 사는 건강한 가정을 만들이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선구자들이다.
이제 ‘불량주부’가 보통명사로 통용되는 시대다. 아이를 키우거나 집안일을 전담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집에서 가사를 담당하고 있는 남자의 수는 15만 명에 이른다. 여성의 취업과 사회적 활동이 늘고, 맞벌이 부부가 일반화되면서 집안일은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역할도 비슷하다. 아들딸을 건사하기에는 벌이가 시원찮아 아내가 힘을 보태면 고맙기 그지없다. 하여 맞벌이부부는 집안에서 각자 역할을 나누어한다. 식사준비를 남편이 도맡는 경우가 많다. 밥하고, 국 끓이고, 찬거리는 물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다 해낸다. 그렇다고 가사전담은 아니다. 아내는 가계운영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뒷바라지한다. 빨래며 집 안팎을 부시는 것도 아내 몫이다. 아내도 간간히 설거지를 거들어준다. 이렇게 맞벌이 부부는 가사를 분담하고 있다.
휴일인 경우 평소처럼 아침을 챙겨 먹고 남편은 부엌을 시작한다. 일주일 내내 사용했던 각종 냄비며, 프라이팬, 접시, 식기류들을 세척한다. 눈에 띠는 대로 집어다 싱크대에 몰아넣고는 깨끔하게 부신다. 씻어놓은 말간 그릇들이 산더미로 쌓인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렇지만 아내를 위하는 젊은 남편들의 헌신은 그칠 줄 모른다. 이렇듯 요즘 3,40대 남편들은 가정 일도 곧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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