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충이들 안줏감
박 종 국
사내들 술자리에는 으레 현실상황이 안줏감으로 오른다. 정치가 씹히고, 경제가 갈가리 찢긴다. 사회문제도 발가벗겨진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문화예술은 덜 씹히는 안줏감이다. 그러면서도 다들 자기 가면을 쉽게 벗지 않는다.
정치에 입문한 친구는 자신의 공가를 내두른다. 변호사는 법률적 사안들로, 교수는 학문적 성과로, 경제인 또한 자기만의 경영마인드를 일괄하는 데만 급급하다. 하다못해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도 제 목소리를 낸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그저 깡소주만 거푸 들이켰다.
말끝마다 세상 참 더럽게 돌아간다는 푸념을 해댄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삶에 대한 불성실함의 극치다. 손바닥으로 낯짝을 가리는 꼬락서니인데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빙충이들 중의 하나다. 오십보백보니까.
누구는 정부 정책을 탓하며 꼬집었고, 당리당략에 눈먼 정치인들을 되씹었다. 누구는 나라 경제가 지리멸렬하다고, 사회정의가 도륙해야 할 만큼 산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누구는 교육마저 밑바닥을 보였다고 다그쳤다. 그러나 누구 하나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여 서로 만만하게 대놓고 넋두리만 되풀이했다. 원래 술자리 이야기는 젬병이어서 판돌이다. 결국 이 놈 저 놈하며 얼굴 붉히다 서로 민망했다. 제 뒤가 구린 것을 모르고 남만 탓한 것이다. 앓던 이 빼는 게 낫지 말 많은 사람들 달가운 실행이 있을 리 만무하다.
불콰한 술잔 위에 친구의 얼굴이 떠 왔다. 그렇게도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며, 배려했는데도 나는 걸핏하면 그 친구의 속을 들끓게 했었다. 현재 친구는 잡다한 일들로 나보다 더한 나락에 처해 있다. 부자가 망하면 삼년은 간다고 했는데, 요즘세상 기업가는 회사 문 닫으면 그 즉시 쪽박신세다.
벌써 가랑이가 찢어질 대로 찢어졌는데 친구는 아직도 의연하다. 다만 친구가 처절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챙겨주지 못하는 내 처지가 그저 청맹과니다.
방금 그가 전화를 했다. 푹 젖은 목소리였다. 언제 막걸리나 한 잔 하잖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마는 그가 미덥다. 그의 격한 삶에 동참하며 세상 단단히 살아야겠다. 아무리 솟아날 굶이 없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인적 끊긴 시간까지 그렇게 막소주를 마셨건만 안주는 그대로 남았다. 빙충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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