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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다시 살아납니다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4. 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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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다시 살아납니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인정'과 '칭찬'과 '사랑' 

 
 박종국 (jongkuk600) 


오늘은 더 재미있게 공부를 하러 가고 싶은 날이다.
왜 그런가하면 학교에는 나를 많이 칭찬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선생님, 더 재미있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부곡초 3학년 장채영

 

오늘 수업을 마치면서 선생님이 우리를 웃겼다.
선생님이 오늘 숙제는 텔레비전 많이 보기와 실컷 잠자고 놀기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엄마아빠께 이야기하였더니 그냥 웃기만 했다.
숙제는 숙제인데 정말 재미나는 말이었다.
-부곡초 3학년 박해준

 


연 이틀 단비가 흠뻑 내려 겨울 가뭄에 겨웠던 땅거죽이 생기를 되찾았다. 덩달아 봄 채비에 부산스러웠던 풀씨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켰다. 꽃나무들도 마찬가지다. 바쁘다. 이쯤이면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도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깊은 산중 잔설 녹아 계곡물 시원스레 흐르리라.

 

하지만 강풍에 휩싸여 온 꽃샘추위는 교정의 목련꽃잎을 치받더니 이내 갓 입학한 아이들 속을 헤집고 다녔다. 새내기들 종종 걸음으로 달달 떨었다. 그 모습이 쉬 물러나지 않겠다는 동장군의 넉살보다 더 밉상스럽고 앙증스러웠다.

 

새 학년을 맞은 학교는 아이들의 부푼 기대로 다시 살아난다. 아이들과 무시로 부대꼈던 선생님들도 더러 학교를 떠나고 또 오셨다. 졸업한 아이들의 빈자리를 새로운 아이들이 냉큼 차지했다. 그래서 학교는 3월이면 잘 여문 알밤처럼 속이 토실토실해진다.

 

나도 올해는 학교를 옮겼다. 부곡 온천지구에 위치한 부곡초등학교다. 지역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루는데 비하면 여덟 학급으로 그냥 아담하다. 개학 첫날 만난 아이들은 차돌맹이보다 더 야무지고 당찼다.

  

스물다섯 해 교직생활 동안 거의 6학년만을 담임했다. 그러나 이번 학기는 3학년 꼬맹이들을 만났다. 난감했다. 그렇지만 불과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과 깔깔대며 친근해졌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스스럼없는 부대낌이 좋았다. 개구쟁이들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아예 손발이 따로 놀았다.

 

수업시간인데도 아무렇게나 나다니는가 하면, 다짜고짜로 앞뒤 친구를 괴롭혔다. 무언가 제 하고픈 일에 골몰한 아이, 잔뜩 불만이 쌓여 씩씩거리며 양 볼을 샐룩거린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심사이다. 그야말로 교실풍경은 천태만상이다.

 

그러나 희망적이다. 아이들이 다 다른 몸짓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이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거나 판박이 같은 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건 까마득한 일로 낭패다. 그 속에서 무슨 바람이 일어나겠는가.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 제멋대로 행동해도 내숭을 떨거나 애늙은이 하나도 없어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참 좋은 만난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사랑이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일이라고 하지만, 아이들 만큼은 어른들이 사는 방편의 틀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반드시 자기 정체감을 가진 교육철학을 가져야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을 바로 가르친다.

 

그런 교사라면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과 하는 일마다 그들과 눈높이를 나란히 한다. 서로 같은 위치에서 세상을 들여다보면 게 같아진다. 관심을 가지면 달라진다.

 

그 동안 우리 교육현장의 무소불위의 권위주의적인 관행이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지시일변도의 보수적 성향이 제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섰으며, 결코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빚어진다. 체벌과 인격 모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는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억지로 재단하고, 아이들 입장에서 귀 기울이지 않는 교육 청맹과니들 때문이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교육은 크게 달라져야 한다. 천진난만한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만나니 칭찬만큼 더 나은 묘약은 없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크게 키우는 데는 다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칭찬으로 한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억지 춘향 하듯 의도적인 교육의 틀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출처 : 학교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2007.03.06 08:36 ㅣ최종 업데이트 07.03.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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