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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아무나 되나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6. 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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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아무나 되나


박 종 국


어떻게 늙고 싶은가? 아니, 어떤 얼굴로 나이들고 싶은가? 중년 이후 나잇살 하나 더할 때마다 되뇌여지는 물음이다. 더욱이 지천명 문턱을 지나치고 보니 하루 다르다. 팽팽하고, 보드랍고, 촉촉하고, 말랑말랑했던 피부는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중년은 피부에서 나이 듦을 절감한다.


샤워를 하다말고 거울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다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어도 그저 내 얼굴이거니 감사하며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새 이마 가득 가로로 제법 굵은 주름살이 잡혔다. 게다가 눈을 치켜뜨기라도 할라치면 눈썹과 눈썹, 양미간 사이에 세로 주름이 깊게 잡힌다. 아무리 무표정한 얼굴을 해봐도 흉터 같은 주름이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보다 눈 꼬리 주름살은 잡힌 지 오래여서 설핏 웃으면 볼만하다. 입가는 그런대로 괜찮다. 그래서 심술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눈길을 목으로 내리자 모르는 사이 자글자글한 주름살이 좀 더 굵게 패였다. 아직은 축 처지지 데가 없다. 그렇지만 이 또한 신경을 써야 할 주름살이다. 남여불문하고 눈 주위와 목살부터 늙는다는 말이 맞다.


주름살은 지난하게 살아온 세월이 새겨진 훈장이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주름살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근데, 막상 얼굴 가득한 내 주름살을 보니 솔직히 눈을 돌리고 싶다. 아니, 구체적으로 나잇살을 드러내는 얼굴에 마음이 편치 않다.


하루 다르게 나이가 더해지고, 탱글탱긍한 젊음과는 멀어지는 나, 그렇다면 어떤 얼굴로 늙어야 할까? 링컨은 남자나이 사십이면 제 얼굴에 책임지라고 했다. 그렇지만, 얼굴이야말로 한 사람의 삶과, 생활사고방식, 인생의 궤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니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내 얼굴에 담기는 그 무엇인가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사실에 용기와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도 요즘들어 '아, 나도 이제 늙었구나!'하고 느낄 때가 많아진다. 바로 까칠까칠한 피부와 흰머리카락이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매마르고, 탄력이 줄어들어 주름살이 생긴다. 피부 조직도 덩달아 쇠퇴한다. 흰머리카락, 늘어난 뱃살, 노안과 돋보기안경, 갈수록 심해지는 건망증, 입맛이 변하고, 자칫 잔소리가 많아지는 등등이 피할 수 없는 노년딱지다.


나잇살 지긋이 가진 어르신 가운데 반관상쟁이 분이 계신다. 이 분은 사람 얼굴을 척 보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였는지 대강은 짐작해 낸다. 툭툭 던지는 그 말씀이 별스럽게 들리지 않은 까닭은 살아온 세월만큼 사람을 꿰뚫어보는 능력도 충분히 터득하셨을 터다. 요즘들어 노인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내 눈에도 어르신들 얼굴을 한번 보면 그 성격 정도는 금방 알아챈다.


웃는 눈과 웃는 입이 아름다운 건 당연하다. 한데도 노인네들 중에는 부드럽게 웃는 눈매와 웃음기가 살짝 묻은 입술을 갖지는커녕, 화가 난 듯 눈꼬리가 치켜올라가고, 입술은 아래로 축 쳐저 볼살까지 따라 내려와 심술보가 붙었다. 나이가 들어도 눈가와 입가에 햇살 퍼지면 쭈글쭈글한 주름살보다 훨씬 보기 좋다.


햇살주름살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일상에 대한 감사와 베풂을 통해서 저절로 만들어진다. 어떻게 늙고 싶은가? 어떤 얼굴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 솔직히 아무리 잘 관리한다고 해도 나이 든 얼굴은 오십보백보다. 나이 들어 지니게 되는 얼굴은 어느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타고난 그 모습도 아니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난 잘 생긴 노년의 얼굴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누가 봐도 착한 얼굴, 깨끗한 얼굴로 나이들고 싶다. 내가 내 마음을 잘 다독이고, 타고난 성정을 잘 다스린 후에 얻는 얼굴이라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제는 얼굴 주름살 하나에도 나이 듦의 의미를 깨우친다. 아름다운 노년을 맛보기에 이 또한 새 힘을 얻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잘 늙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성공적인 노화다. 즉, 질병과 장애가 없고, 인지적 기능과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며, 인생 참여를 계속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질병과 장애 발생 위험을 최대한 낮추고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게 성공적인 노년이다.

한데, 노인은 아무나 되나? 농담이 아니다.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 동안 사고와 질병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아름다운 청년의 때가 선물듯이 노년 역시 값진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이 듦 자체가 엄숙하다. 꽃만 세상에 존재하는 건 아니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16년 39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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