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학교가 사라진다
박 종 국
필자는 1983년 3월 1일, 경남 거제군 둔덕면 학산초등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학산리, 아사리, 골마을 등 3개리에서 백 명 남짓한 조그만 학교였다. 첫해 6학년을 맡았다. 모두 열여덟 명. 당시만 해도 학생 수가 적은 학교였는데, 결국 이듬해 인근 오량초등학교 분교장으로 통합되었다.
연초 거제도를 들렀을 때 가보니 폐교로, 어느 이가 모형배 공방을 차렸으나, 이십여 년 전 도색이 희끗 내비쳐 그나마 운영이 시원찮았다. 폐호지(閉戶地)에 서서 옛 추억을 더듬어 보니 마음 찹찹했다.
그 시절 학교는 마을축제장소이자, 한 공동체 형성의 장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고, 교정의 수령 삼백년 아름드리 팽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명증하는 지킴이였다. 그늘은 여름철 모든 마을 사람들의 쉼터였다. 자연 학교는 동네의 크고 작은 일을 치루는 장소가 되었다. 때문에 학교는 마을 사람들의 기억의 중심이면서 지역문화의 발화지기이도 했다.
특히 벽촌 오지에서 학교는 선생님이 계시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렇기에 작은 마을에서 교사의 존재는 마을 일에 대한 ‘상담자’였고, 아이들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투사하는 ‘이상형’이기도 했다. 해서 마을의 학교는 동네의 일부이며, 동네 사람들의 삶과 구체적으로 얽힌 특별한 위치를 가졌다. 그래서 작은 학교가 참 아름다웠다.
작은 학교가 폐교되어 가는 현실 상황은 결코 녹녹치 않다. 물론 요즘 도심공동화로 인해 대도시에도 폐교가 되는 학교가 생겨난다고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폐교는 대부분 농어촌과 산간 오지에만 해당된다. 그 동안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그런데도 일단 한번 폐교가 결정된 학교가 다시 살아났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간혹 지역이 공업화되면서 갑작스런 인구유입에 의해서 학교가 되살아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다.
정부나 교육부가 작은 학교를 통폐합하려는 정당성은 무엇일까.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은 입버릇처럼 되풀이하곤 한다. 과소규모 학교 학생들은 학습의욕이 없고, 문제해결능력과 목표달성 의지가 낮으며, 성격이나 정서교육이 배제되거나 열악하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작은 학교라 해서 감성과 수월성을 제대로 배우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폐단이 생겼다면 그 폐단을 줄이고 운영의 묘를 살리면 오히려 약이 된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단견적인 시각으로, 경제성의 잣대로만 작은 학교를 들여다본다.
그 동안 학교 통폐합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학교라 해도 폐교는 안 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주민의 여론을 호도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농어촌오지 학교를 통폐합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학교 통폐합 그 자체는 교육적이지 못하다. 너무나 많은 문제를 노정한다. 지금 학교 통폐합 문제는 문제는, 단지 경제적 잣대 때문이지 그 덩치가 작아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1960년대 이후 우리 교육정책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과밀학급과 거대학교를 해소하나 였다. 더욱이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사회로 전환되는 현 상황에서 미래사회에 적응하며, 자신의 삶을 펼쳐야할 신세대들을 위한 교육은 단순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과 창의성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우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에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 이하로 줄이도록 정책을 마련했다(현재 우리나라 초등학교 25.5명, 중학교 33명, 일반계 고등학교 34.7명이다. 그러나 이미 선진국에서는 학급당 학생 수를 대체로 한 학급에 15명 정도의 학생을 두는 것을 이상적이라 말한다). 이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학급 규모나 학교 규모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해묵은 얘기지만 일본에 학생이 1명뿐인 학교가 소개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학생 1명만 재학하더라도 학교를 유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학생이 졸업하여 학생이 한 사람도 없게 되어도 폐교하지 않고 휴교하였다가 단 한 명의 학생이도 학교에 입학하면 학교를 다시 연다. 이렇듯 경제논리로만 따져 학교 존폐 할 게 아니다. 학생 수가 너무 작아서 교육활동에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학생 수가 너무 많은 도회지 학교에 비교되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건 당장에 학생 수가 적더라도 학교를 폐교할 게 아니라 어려움을 헤치고,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학교 통폐합에 대한 학부모의 분노는 정당하다. 당시 필자가 근무했던 거제 학산국민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왜냐? 폐교 대상이 된 학교의 학부모 중에 다수는 그들이 학교를 세운 주역들이거나 학교를 세운 과정을 다 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 없는 돈을 내고, 땅을 내놓기도 했으며, 심지어 문중 땅을 내놓아 땀 흘려 학교를 세웠다. 학교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빤히 아는 사람들이다.
학교를 폐교하기는 쉬우나 학교를 다시 세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학생이 한 사람도 없어도 학교를 폐교하지 않고 휴교인 상태로 둔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학부모가 정부의 폐교 방침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의견수렴과정이 결여되었거나 차단되어 기 지역 학교의 폐교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맹점 때문이다.
정부는 단 한 학생이 재학한다면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교사를 보내야 한다. 학교 통폐합에 따른 정부의 논리도 정당하고 타당하다. 국가 재정의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그렇지만 획일적으로 학생 수 기준으로 통폐합한다는 논리는 교육문제로 떠나가는 농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때문에 앞으로 추진될 정부의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은 또 다른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악순환만 되풀이하는 잘못된 정책은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소규모학교가 속출하는 원인은 비단 교육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규모학교가 양산되는 근본 원인은, 농어촌 인구의 노령화와 젊은층의 부족 현상, 농업경제의 붕괴와 소득 불균형, 도시집중과 지역발전의 불균형 등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분명 소규모학교의 통폐합 문제는 총체적 난제다.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이 당장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은 적어도 1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해야 한다. 작은 학교 하나가 벽촌 오지의 마을공동체 형성을 가능케 한다.
올해도 벌써부터 작은 학교 통폐합의 전언이 들린다. 농산어촌 학부모의 작은 학교를 지켜내려는 교육적 열망은 크다. 그런데도 정부와 교육부는 왜 작은 학교통폐합잣대를 놓지 않는가? 방만한 교육예산을 그곳에서 땜질하고, 벌충하려는 꼼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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