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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풍경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9. 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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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풍경


박 종 국


  달포 전 어느 백일장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갔었다. 모 단체에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비가 줄줄 내렸지만 참가자가 많았다. 흔히 백일장이라면 초중고 학생을 모아놓고 시제 하나로 생색을 내는 자리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여느 백일장과 달랐다. 일반 부문 참가자도 많았다. 아마 단체에서 여는 자리라 참가자의 면면이 한몫했으리라.


  또 하나 특이했던 일은 이번 백일장에서는 시제를 발표하기에 앞서 심사위원을 소개했다. 심사위원을 소개하는 건 다른 백일장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주체측은 참가자들이 편안하게 글을 쓰도록 하려는 작은 배려였다고 했다. 그 때문에 시제를 발표하고 나서부터는 심사위원들은 전체 참가자들의 글 쓰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니 이번 백일장 참가자들의 열의가 유달랐다. 간혹 권위를 내세우는 백일장에 가 보면 좀 낯뜨거운 풍경이 눈이 띈다.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 곁에 담당선생님인 듯 학원 선생님인 듯한 분들이 아이들의 글쓰기 첨삭지도에 열심이다. 아예 대필을 해주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한 백일장에서는 심사 자체도 여간 힘 드는 게 아니다. 자잘한 자갈밭에서 옥석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단지 백일장을 학교나 학원의 이름을 내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한다면 낭패다. 그런 참가자가 많을수록 문학 판은 줏대가 서지 않는다. 설령 대필해주고 짜깁기를 해 준 작품이 장원을 하고 대상을 받는다고 해서 무슨 의밀까. 정말 그렇게 한다면 순수한 문학 지망생인 아이의 싹을 송두리째 짓밟는 행위다. 또한 그런 아이가 장원을 한들 더 이상 문학에 진중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더 이상 좋은 글이 쓰이어지지 않는다.  


  백일장은 여타 다른 문예공모와 달리 90분 이내의 한정된 시간에 시제를 좇아 글을 써야한다. 그러니 개적으로 이런 저런 생각가지를 많이 늘어놓을 겨를이 없다. 한정된 시간 내에 기발한 문학적 착상과 재기(才氣)가 발현되어야 한다. 물론 많은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어느 시제가 주어져도 당장에 그에 걸맞은 화제를 잡아 줄줄 써내려간다. 하지만, 하릴없이 연필만 돌돌 굴리고 앉은 참가자들을 지켜보면 안타깝다.


  한데 이번 백일장은 시종일관 정갈스런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마감시간을 훨씬 넘기고도 원고지를 붙들고 앉은 참가자가 많았다. 하지만 내치지 못하고 끝까지 작품을 받았다. 심사대에 소중한 작품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매번 작품심사를 했지만, 이때가 정말 가슴 떨리는 순간이다. 심사 작품이 나뉘어졌을 때 사뭇 긴장된다. 과연 어떤 작품이 돋보일까, 대상작품은 하나, 어느 작품이 모든 심사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동하게 할까.


  심사는 예심부터 꼼꼼하게 진행됐다. 먼저, 글쓰기의 기본 태도부터 따지고 들었다. 맞춤법과 오탈자, 상황(시제, 문장호응)에 맞지 않은 작품들을 솎음했다. 애어른 티가 나는 작품도 더러 보였다. 사뭇 작품의 기본 틀을 배워서 기계적으로 문장을 나열하거나, 기성문인 흉내를 내는 작품도 많았다. 그들은 작품은 거의 내용만 채워 넣기에 급급했다. 백일장은 기존의 빵틀에 찍어내는 작품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생생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정말 자신의 혼이 흠뻑 배인 글 솜씨가 드러나야 수작으로 뽑힌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수준차가 컸다. 겨우 글을 읊조리는 말더듬이 작품에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하게 그려내는 작품도 많았다. 해서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우열의 차를 가늠하는 데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 했었다. 그러나 공감하는 작품은 도드라지게 마련이었다. 수많은 작품을 빠짐없이 읽어 준 심사위원들께 손 모아 감사드린다. 덕분에 일반부문 참가자들과 학생들의 글 솜씨를 충분히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어린 문사들이 더 나은 글을 쓰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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