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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100년 안에 사라진다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9. 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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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100년 안에 사라진다



박 종 국


  지금 우리말의 현실은 어떤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동네 간판을 쳐다보아도 옮겨 쓸 우리말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제는 미국에 의해, 미국말에 의해서 한국어는 물론, 외래어조차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길거리마다 영어학원이 미워터지고, 전국 곳곳에 영어마을이 성업중이다. 수요가 생기면 공급도 따르 법. 이미 원어민 강사들이 대거 영입되었다.

 

  단지 잘못된 교육정책만을 탓할 게 아니다. 어차피 해방이후 반 백년을 반신불수로 살았고. 한글보다는 남의 나라 글공부시키는 데 더 혈안이었다. 그런 까닭에 누구나 학교에서 배운 외국어 중심으로 생활한다.

 

  몇 해 전 유네스코는 “한국어가 100년 안에 소멸된다”고 경고를 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부시지 않는데 남이 그냥 알아서 챙겨줄 까닭이 없다. 영국의 섹스피어와 독일의 괴테, 인도의 타고르를 봐라. 그들 모국어에 대한 자존심이다.

 

  또한 유려한 프랑스어와 인디언의 자연어를 보라. 민족고유어에 대한 그들의 애착심은 그 어떤 사회정치경제적인 이유보다 우선한다. 천박하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자본주의 잣대로 함부로 엉겨 붙지 않는다. 결코 버터 발린 말버릇에 현혹되지 않는다!

 

  불현듯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한 대목이 명치끝을 억누르듯이 생각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선생님은 교단에 올라서서

"여러분, 오늘은 나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베를린으로부터의 명령으로 내일부터는 알자스와 로렌의 학교에서는 독일말로만 가르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 하였다.

나는 그제야 선생님이 정장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학교의 교실 안에까지 들어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지 못했으나,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꾸짖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까지 내게 많은 꾸중을 들었지? 오늘의 공부를 내일로 연기하는 것이 라자스 어린이들의 가장 나쁜 버릇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만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님도 또 선생인 나도 나빴던 것이다."

선생님의 깨우침은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프랑스 말은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며 굳센 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들의 국어만 유지하고 있다면 자기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업이 끝나려고 할 무렵 프러시아 군의 나팔 소리가 울려 왔다. 그러자 선생님의 얼굴은 창백해지며 무척 아쉬운 듯이

"여러분, 여러분, 나는…나는…"

하고 할 뿐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프랑스라고 하는 하나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들을 억지로 주입시키는 게 아닌, 마음속에서 스스로 우러나게끔 하는 게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다.

 

  비단 토박이 우리말이 사라진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작 우리가 생활하는데 가장 밀착된 말이 토박이 말이요, 입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방송을 비롯한 매스콤 탓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낯붉어진다. 당장에 어른들이 그런 말을 쓰는 걸 꺼려하니까 모방본능이 강한 아이들이야 단박에 잊어버리고 만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평생 학교문턱을 드나들어 본 적이 없어셨던 필자의 외할머니께서도 가끔씩 왕림하셨을 때는 어찌나 유창하게 남의 나라말을 줄줄이 말씀하셨던 지 놀라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리코콘 어데 뒀노? 테레비 뉴스 좀 보구로. 근데 야는 와 이러카구 섰노. 젖은 머리는 드라이로 말리면 될낀데, 그리고 에미야, 믹스로 토마토 좀 갈아온나. 긴 글라스에 목이 긴 티 스푼도 하나 갖고 온나."

"저 탈란트 옷은 꼬라지 좀 보래이. 패션 스타일이 영 제로다. 요즘 아이들 눈이 얼매나 높나. 칼라가 맘에 안든다. 뭐라쿠노, 필이 안 꼽힌다아이가."

"허허허, 할머니도 신식이네요?"

"야가 뭐라카노?"

 

  그랬다. 외할머니는 숫제 한글 'ㄱㄴㄷ'은커녕 영어 알파벳 'ABC'로 모르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런 분이 입말은 온통 한글과 외래어, 영어로 비빔밥이었다! 실상이 이러한데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이 그냥 줏어듣는 말이 전부다 우리말처럼 즐겨쓰는 게 당연한 이치다.

 

  지구상에는 3000 여 가지의 말이 통용된다. 그러나 그중에 글자로 정착된 말은 불과 50 여 종에 불과하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바로 사라지진다. 그렇지만, 글자는 영영토록 남는다. 물론 입말도 구전 형태로 전승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온전한 전달을 할 수 없다. 입말도 글자를 가져야 생명감을 더한다. '마지막 수업'에서 보듯 자기 글자(언어)를 지킨다면 그것은 영어(囹圄)의 상태에서도 열쇠를 쥔 수형자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관할 까닭은 없다. 요즘 방송이나 인쇄매체에 보이는 한글 사용에 대한 성의나 거리의 간판을 보면 희망적이다. 다들 우리말을 아름답게 잘 살려쓰려고 애쓰는 흔적들이 역력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동아리 이름만 봐도 눈에 띠는 우리말 이름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이름도 '빛나' '하늘' 새미' 초롱'이 등으로 정답다.

 

  '한글, 100년 안에 사라진다!' 그냥 흘러들을 충고가 아니다. 항간에 인터넷 신조어나 축약어가 범람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방송을 비롯한 각종의 언론매체들이 일정 여과없이 사용하는 걸 지양해야겠다. 낙숫물에 커다란 바위가 구멍이 뚫리듯 조그만 일 하나하나가 모여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 무시로 사용하는 입말에 보다 애착을 가져야겠다. 그래야 한글은 영영토록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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