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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단정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12. 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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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단정


얼마 전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외모단정'이라는 채용조건 때문에 선뜻 입사원서 한번 들이밀지 못했다는 여(女)제자로부터 볼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초중고 시절은 물론, 대학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그렇기에 당연히 커리어우먼으로서 당찬 꿈에 부풀었다.


제자는 경제사정이 아무리 어렵하더라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직장을 갖는데 확신에 찼었다. 그런데, 유독 자기가 입사하고자 하는 기업 비서실의 그 채용조건에 '신장 165cm 이상'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렸다고 했다. 세상에, 업무 특성상 그런 게 필요하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외모단정'에다 '신장조건'까지 고집한다는 건 참 애매하기 짝이 없다.


명색이 면접을 보러간다는 사람이 머리를 산발한 채,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가겠는가. 더구나 퀭한 눈을 하거나 입을 이죽거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외모단정'이라는 조건을 버젓이 내놓는 걸 보면 '단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걸 전제한다. 꼬집어 얘기하면 '못생긴 사람은 오지 말라'는 경고다. 외모지상주의로 회사를 경영하겠다는 사측도 몰이해다. 


사실 우리 사회의 '외모강박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성운동가든, 그냥 좀 깬 정도의 여성이든,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든,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화두다. 어느 때보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데, 어찌된 판국인지 여성의 '몸'에 대한 '집착'은 날이 갈수록 도가 더한다. 그러니 헬스클럽이다 뭐다 해서 '몸 만들기'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는다.


세상이 예쁘고 날씬한 여자를 원한다는데 어떡하면 좀더 예쁘고, 젊고, 날씬하고, 팽팽하게 유지할까 싶어 별의별 노력을 다 기울인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몸을 다듬어서 날씬함에도 만족 못한다. 급기야 만족스러울 때까지 깎고, 다듬고, 필요 없는 살을 잘라내고, 삽입물로 몸을 변형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페미니즘이 여태껏 이뤄놓은 여성의 지위향상과는 역행이다. 남의 시선을 고려하는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로 부끄러운 짓이다.


자신의 모습에 결코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많은 날들을 힘겹게 살아야한다. 배웠건 못 배웠건,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그저 '예쁜 게 최고'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커다란 비극을 가져다 줄 뿐입이. '여자라면 당연히 예뻐야 한다'는 말, '남자라면 누구라도 남자다워야 한다'고 여기는 그릇된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불식시켜야 한다.


아무리 평가의 기준이 외모로 통한다지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천박한 생각이다. 물론 외모나 학벌, 가정배경을 따져 속물로 사는 섦을 배척할 일은 아니자. 그래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학벌이나 외모가 곧 사회적 능력일 수는 없다. 한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으로 재단할 수 없듯이.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길거리에 인형같이 예쁘게 조각된 '인조인간'들이 넘쳐난다.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기에 바쁘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의 병이 깊다. 그렇더라도 외모지상주의·외모차별주의 '루키즘(lookism)'에 편승하여 성형수술을 하거나 다이어트 열풍에 휩싸이는 사회풍조는 바로잡아야 한다. 예쁘고, 날씬하며, 풍만한 것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 차이가 차별을 낳는 사회문화, 우리 딸들을 서구미인으로 만들게 하는 문화 식민지성을 반대해야 한다. 유능한 젊은 여성을 천박한 소비문화에 절게 함으로써 건강한 노동력을 잃게 하는 황폐함에 반대해야 한다. 보다 더 예쁘게 만드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하는 싸구려 자본주의를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왔더라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결혼 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았더라도 역시 외모 때문에 번번이 면접에서 탈락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아야 한다. 제자 녀석도 이제는 그 무엇보다도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성형수술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여 자신의 외모를 뜯어고치려고 마음 잡은 모양이다. 슬픈 현실이다.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다. 외모지상주의에 의해 조장된 얼룩진 사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겉이 아닌 속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야겠다. 단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들이 부끄러워 하는 사회로 나아가야겠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모지상주의로 얼룩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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