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집 이력
박 종 국
어느새 지천명의 문턱을 넘어섰다. 딴은 오달지게 살았다고 자신한다. 그렇지만, 멋모르게 보냈던 십대, 분기충천했던 이십대를 거쳐 삼십대는 벌충이 필요했다. 자중감이 컸던 사십대, 그보다 지금의 오십대는 내 자리가 오롯하다. 모든 삶의 과정에서 맛보았던 애린이 컸던 덕분이다.
흔히 마흔 나잇살이면 제 얼굴에 책임지라고 했다. 그렇듯이 오십이면 어딜 가나 반겨주는 단골집을 두게 마련이다. 취미가 단아하면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을 테고, 여행을 좋아하면 낯선 데 향수가 많을 거다. 게다가 식도락이라면 유명 음식점 네댓 곳은 단골로 나달나달 문지방 닳았을 테다. 그만큼 나잇살은 여유와, 사색과, 명상과 경청과, 공감의 여력을 넓혀준다.
원래 단골집은 가족 중에 누가 병이 들거나 집안에 재앙이 생기면 굿을 하기 위한 집으로, 무당을 당골 또는 단골이라 불렀다. 늘 정해 놓고 거래하는 집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단골집(House of call)'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단골(regular customer)은 늘 정해 놓고 다니거나 거래하는 집이다. 퇴근 무렵 일상을 마감 짓고 그곳에 가면 얼큰한 국물에 소주 두어 잔 곱빼기로 들이킨다. 때문에 오래된 단골집은 쉽게 바꿀 수가 없다.
내가 바라는 단골집은 아담하고 소소한 공간이다. 벽지는 헤어져서 나달하고, 식탁은 모양새보다 쓸모를 생각해서 만들어 뭉툭하다. 곳곳에 담뱃불로 검게 짓눌렸고, 긁힘 자국도 뚜렷하다. 의자는 땟국에 절어 반들반들 윤이 난다. 차림판도 없다. 그냥 느긋하게 술과 밥을 즐기기에 편하면 그만이다. 그런 자리라면 혼자서도 돼지국밥 순대국밥으로 소주 두어 병 비운다. 그게 단골집 매력이다. 나이 들수록 이런 단골집국밥을 꼭 먹어줘야 든든하다.
근데, 나의 단골집 이력은 특이하다. 우선 나는 술집을 찾을 때 인테리어나 메뉴보다는 주인장의 응대와 종업원의 분위기를 먼저 본다. 왜냐? 결국 종업원들의 얼굴 표정과 재바른 움직임이 음식 맛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 집 주인은 뚱뚱해야 한다. 단골집 주인이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지면 음식 맛이 반감된다. 머리 손질은커녕 기름 바른 일 없어도 인심 좋은 얼굴이면 딴죽 걸 까닭이 없다. 덤으로 깨끗지 못한 손은 쇠소댕이만하고, 신발은 슬리퍼를 질질 끌어야 좋다.
나름 깔끔하게 꾸몄다는 가게를 들리면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태도에 얼떨떨해진다. 가게 분위기와 사람이 겉돈다. 더군다나 주문받는 종업원의 얼굴이 죽을상이다. 그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피곤하다는 표정이다. 그냥 봐도 힘들어 보인다. 대체 이런 가게에서 내 돈 내고 다시 음식을 주문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내가 단골로 정한 가게의 분위기는 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주인이나 종업원 얼굴이 생글생글하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반긴다. 차림판도 내놓지 않고 냉큼 오늘 요리를 권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뭔가 대접받는 기분이다. 연방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종업원들의 활기찬 움직임을 보면 그저 식욕이 살아난다.
단골은 분위기, 사람 사는 때깔이 먼저다. 똑같은 음식, 비슷한 가격이라면 어느 가게를 단골로 정할까. 종잡아 하나의 춤사위로 손님 대하는 가게가 훨씬 더 많은 단골 잡이를 하지 않을까. 굳이 손님몰이 푯대를 내지 않아도 그런 집은 손님이 줄을 선다.
단골집 장수의 비결은 변함없는 손맛이다. 지난 30년 내 단골집 주인장은 언제나 환한 얼굴로 손님을 대하고, 아낌없이 퍼 담아 준다. 언제나 똑같은 안주에다 막소주 달랑시켜도 눈치 빠르게 우거짓국 한 사발 안주 덤으로 내놓고, 입가심 과일까지 슬쩍 담아낸다. 자칫 쥔장이 남을 게 없다 싶어 걱정이지만, 후한 안주 인심덕에 뭇 사내들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런 인심 하나만은 어느 가게에 비견할 수 없는 집, 특별난 안줏감 고르기 쉽다는 장점 아닌 장점을 지닌 집, 자랑삼아 내는 얼갈이배추김치, 한 보시기만 해도 따로 말이 필요 없는 집이 진정한 단골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