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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상 살만 합니다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8. 2. 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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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상 살만 합니다

 

"여보! 내 휴대폰 못봤어요?"

"갑자기 무슨 휴대폰 타령이고?"

"방금 미순이 친구한테 전화 받고나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없네요. 어쩌나?"

"맞나? 둘레길 벗어난지 얼마 안 된다아이가? 되돌아가보면 떨어졌을끼다. 걱정말거레이."

 

그랬습니다. 차가운 날씨 탓, 감기몸살에 발목잡혀 두어달만에 함께 나선 산행. 무학산 둘레길 초입부터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말썽을 피던 아내 휴대폰, 어렵사리 노트8로 갈아탔습니다. 그런데, 그만 산행 중에 잃어버렸습니다. 평소에도 아내 등산복 윗주머니가 얕아서 걱정이었는데, 결국 일이 생겼습니다.

일순간에 황당해 하는 아내 겨우 다독여주고 내친 걸음으로 오던 길 되돌아가 보았습니다. 허나, 아무리 눈 부릅뜨고 찾아봐도 흔적 없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힘들어할끼고?'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 좋겠노?'

'하필이면 아내 휴대폰이 사라지삔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타박타박 돌아서는데, 저만치서 아내가 낭패스런 얼굴을 하고 섰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차마 제 마음은 더 애달았으나 꾹 참고 아내 마음 먼저 달랬습니다.

 

"걱정하지 말거레이. 주어 간 사람한테서 연락올끼데이. 사람을 믿어야 하는 기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거 보면 찾기 어렵겠어요."

"아이다. 기다려보제이. 꼭 전화올끼다."

 

그렇게 말했지만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그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새로 휴대폰을 장만하려면 통신사를 바꾸고, 등록한 정보를 다시 수습해야 하는 등 부수적인 일 때문에 아내는 머릿속이 새까매졌습니다. 경험자로서 그 일을 감당하기에는 커다란 고충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금 아내를 추스르며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십번을 번갈아가며 간절하게 통화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받지않고 통화음이 끊겠습니다. 아내 표정이 점점 무거웠습니다. 갑자기 골바람도 세차게 불었습니다. 동행한 행자, 무슨 일이냐는 듯 꼬리만 잘래잘래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숨막힌다는 표헌이 이때 딱 들어맞습니다. 점점 안타까워하며 자학하는 아내, 그저 지켜보는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 잘못을 탓할 일이 아니어서 애써 느긋하게 맘 먹었습니다. 한데, 그때 제 휴대폰 전화가 울렸습니다. 낯선 전화번호가 떴습니다. 대뜸 받았더니 연만하신 분의 걱정스런 목소리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하산길에 휴대폰을 줬는데, 당최 사용할 줄 몰라서 여태꺼정 통기를 못했다아입니꺼. 많이 걱정했지예?"

"예, 그랬심더. 어른신예? 지금 어디 계십니꺼?"

"나요? 회원신협 옆에 사니까네 싸게 찾아오소."

"예예, 고맙슴니더. 쪽바로 갈께예."

 

이런 일도 만납니다. 아내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산행길, 먼저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한참이 지난 뒤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만나보니 칠순에 몸도 불편하신 분이었습니다. 아내는 와락 고마움에 사례를 한다고 근처 슈퍼마켓으로 향하고, 저는 노익장의 손을 꼭 그러쥐었습니다. 따스운 온기가 온몸 가득 전해졌습니다.

 

"좀 일찍 전화할낀데 폴더 밖에 안 써봤으니 최신형 전화기는 받지도 못했다아입니꺼. 그래서 이웃집 젊은이한테 부탁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냈꾸마. 근데 이쁜야시가 누고?"

"제 아냅니더. 고맙심더 어르신."

"저 분이 아내가? 아따 이뿌기도 하데이. 이기 무신 대단한 일이라꼬. 마, 주인 찾아서만 된기라."

 

슈퍼에 다녀온 아내는 상기된 얼굴로 고맙다는 말씀을 거듭 전했습니다. 준비한 음료수를 꾸러미를 한사코 마다하시는 어르신, 겨우 챙겨보냈습니다. 참 살맛나는 일입니다,

 

이만하면 우리 세상 살만하지요?

 

_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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