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낯짝 붉힌다
출근길에 보면 맞춤한 시간에 집을 나서는 사람이 많다. 생활리듬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월요일은 차가 밀린다. 그래서 집 나서는 시간이 늦지 않은데도 마음이 바빠진다. 앞서 가던 차가 꾸물댄다.
“아니, 초보야 뭐야. 도로 전세 냈나!”
불쑥 한 마디 내뱉는다. 그렇다고 빨리 가는 형편도 아니다. 안달한다.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여유가 없는 탓이다. 차마 낯짝 뜨거운 일이다.
큰 도로로 나간다. 차들로 빼곡하다. 신호를 무시한 채 냅다 달리는 차들이 많다.
“왜 신호를 위반하고 달려!”
다들 형편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 역시도 그런 부류다. 새치기운전을 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어쩌다 오늘은 양심편에 섰다. 한달에도 몇번 날아드는 범칙금 딱지로 아내는 야단이다.
좋은 일도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가.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신호를 기다리다 말고 나도 슬쩍 차를 몰고 달린다. 사람은 생각이 다 다르다.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정말 다른 생각을 한다. 길가는 사람은 신호등 체계가 운전자 중심으로 되었다고 투덜댄다. 횡단보도를 건너기에 시간이 짧고, 신호간격도 너무 길단다. 그런데 건널목은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만들었는가. 괜히 짜증이 난다. 눈치를 살피다가 순간 도로를 가로질러버린다. 나만 편하면 그만이다.
흔히 운전대만 잡으면 두 얼굴을 가진 헐크가 된다. 바삐 가야하는데 웬 신호등이 그렇게 많은가. 게다가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은 왜 그렇게 길지. 운전대를 몇 번이나 바꿔 그러쥔다. 하물며 오늘은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나 느린지 속이 부글거린다. 순간, 욕지거리가 쉬쉬 불거진다. “세금 거뒀다가 뭐하는 거야. 이런 데 육교나 설치는 안하고.”
자못 속이 뒤틀린다. 그러다 신호가 떨어지면 마치 경주용 자동차처럼 쏜살같이 내뺀다. 그게 지금 우리네 저화상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짝 마른 세상이다. 조그만 일 하나도 네 덕이기 보다 남을 먼저 탓한다. 다들 잘 되면 내가 잘한 덕이고, 못되면 남이 잘못이라 덤터기 한다. 주변 사람이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남이 잘 되면 실실 배가 아프다. 다들 속에 도둑심보를 지녔다.
식당에서도 팍팍대는 처신머리를 가만두지 못한다. 먼저 자리를 잡았는데도 뒤늦게 온 사람이 일찍 대접을 받으면 목소리를 돋운다.
“아줌마,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거기부터 갖다 주는 거요?”
식당 안 사람들의 시선이 와락 쏠린다. 그래도 씩씩대는 성깔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급기야 식당 주인이 나서서 미안사레를 한다.
“죄송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이닥치다 보니 순서를 잊었네요.”
사과를 받아도 치켜뜬 눈을 내리지 않는다. 맛 나는 음식이 나왔는데 영 모래알 씹는 기분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면 안다. 그러면 내가 하는 행동이 바뀐다.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남도 꺼린다. 때문에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남에게 해 줄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다른 사람을 세워줌으로써 스스로도 선다. 배려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주변에 힘든 사람이 많다. 사는 일이 너무 팍팍하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는가? 여느 사람처럼 나 또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탓할 처지가 못 된다.
어쨌거나 우리는 끊임없이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런 까닭에 조금이라도 대접이 소홀하면 눈을 부라리며 흘겨댄다. 나 자신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인색하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너무 크게 바랬다. 하루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순간이라도 입장 바꿔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면 얼굴빛이 달라진다. 게다가 쓸데없는 데 분칠하는 일이 덜하다.
일찌기 장자는 산책하듯 살라고 일렀다.
_박종국또바기글
미래 직업 뜨는 직업 (0) | 2018.02.19 |
---|---|
자기만의 장점을 살려라 (0) | 2018.02.13 |
반짝세일 (0) | 2018.02.13 |
우리 세상 살만 합니다 (0) | 2018.02.12 |
평창의 기운이 새롭다 (0) | 2018.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