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드는 일
박 종 국
하루 일상에서 나누는 고마운 일이 많다. 아침을 챙겨주는 아내, 엄마가 고맙고, 잘 다녀오라는 가족 인사가 사랑스럽다. 양손 가득 짐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살포시 웃으며 대신 버턴을 눌러주는 사람이 고맙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차량들로 꼬리를 문 출근길에서 먼저 가라는 손짓, 차선을 양보하는 운전자의 배려에 기분 좋아진다. 이쯤이면 아무리 답답한 일이 생겨도 허허대며 절로 웃음 나온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어느 아가씨가 하이힐로에 밟았을 때 얼굴 부라리기보다 “아가씨, 밟혀서 죄송합니다!”고 너스레를 떨어보라.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던 아가씨가 얼마나 고마워하겠는가. 아내가 차량사고를 냈을 때 냅다 “정신 어디다 누고 사고를 내느냐?”고 호통을 치기보다 “여보,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난 차보다 당신이 더 소중하다”는 아량을 베풀어보라. 아내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한다.
엳아홉 살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다짜고짜로 꾸중하기보다는 “그래, 네만 할 때는 그렇게 실수를 하지”라고 당연한 듯이 눈감아 보라. 아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근데도 우리는 어떤가. 언제나 자기 자신한테는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인색하다. 잘잘못을 따질 때는 더욱 그러하다. 어떠한 언행도 손찌검으로는 바로 잡히지 않는다. 그냥 반항심만 키울 뿐이다. 세상일 모두 네 덕이요 내 탓이다.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은 하나같이 어렸을 때 낙오자로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그들의 천재성을 일깨운 사람은 어머니였고, 그 따뜻한 부추김 말이었다. “넌 최고란다”는 인정, “난 널 믿는다”는 격려가 평생을 두고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게 한 든든한 응원이었다. 칭찬과 격려는 아이를 최고로 키우는 사랑의 묘약이다.
흔히 마음 조급한 부모는 아이를 그냥 지켜보지 못한다. 그래서 학교 교육을 믿지 못하고 아이를 학원과외로 내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아이만 뒤쳐진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아이도 부모 못지않게 바쁘다. 모든 일을 부모 잣대로만 재단하면 아이는 답답해진다. 부모와 아이세대는 세상판짜기가 다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시대는 기본 범주부터 별개다. 장차 아이의 삶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이것 하라 저것 하라”며 윽박지르지 않아야 한다. 그것만으로 아이는 부모를 고맙게 생각한다.
아이들, 잘 놀아야 잘 크듯이 제 하고픈 일을 할 때 즐겁다. 그래서 아이의 행복한 삶을 영유토록 이끌고 싶다면 먼저 간섭을 내던져야 한다. 게다가 지나친 관심도 떨쳐야 한다. 아이 스스로 잘 해내는 일도 하나같이 다 챙겨주어야 곱살 맞은 사랑이라고 자신한다면 그것은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들 예닐곱 살만 되어도 제가 하고 싶은 일 싫은 일 다 가려낸다. 그쯤이면 부모는 아이가 조금 더뎌가더라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도우미로서 지지해주는 느긋함을 가져야 한다. 그게 훗날 아들딸이 부모를 감사하게 여길 얘깃거리다.
숫제 하는 말로, ‘시집장가 잘 갔다’, ‘참 좋은 부모 두었다’, ‘친구 잘 만났다’는 치사는 서로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했을 때 가능한 얘기다. 어디 낯짝 붉히고, 목소리 찢어져 봐라 그런 이야기가 가능한 지.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 해도 등 돌리고 나면 그 마음에 바늘 하나 꽂을 데가 없다. 먼저 내 스스로가 감사함을 나누지 않으면 그 누구도 고마운 훈기를 보내지 않는다. 살면서 무시로 되풀이해야 할 말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는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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