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이 형이 달라졌어요
박 종 국
영춘이 형, 올해로 예순여섯. 회사 명퇴하고 고향언덕배기에 터 잡고 산 지 어언 십 년째. 형은 직장 다닐 때 빨간 날이면 으레 낚시를 우선했다. 그랬는데 이제 그 소원하던 낚시도 신물이 났다며 무료하다고 했다. 날마다 빈둥빈둥 노니까 곱살 맞던 아내도 반기지 않고, 리모컨 그만 잡았으면 하는 눈치란다. 그도 그럴 일이 아내는 아침 밥숟가락 놓자마자 대문 나서기 바쁘다.
아들딸 짝 맞춰 시집장가 보내고 나니, 거치적거리는 사람이라곤 달랑 형 혼자, 그러니 애써 눈치코치 봐가며 밖에 나가 점심저녁을 해결해야 할 처지다. 나잇살 어중간해서 노인당 신세지기는 이르고, 그렇다고 공원 볕 바라기 할 나이는 더더욱 아니다. 해서 신세타령하며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한창 양파마늘 돌보는 농사철이라 친구는 코빼기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당초 고향에 들어앉으면서 밭뙈기 하나 사서 농사지을 작정이었다. 숫제 귀농 흉내는 못 내더라도 푸성귀는 자급자족하리라 맘 먹었다. 그러나 손바닥만 한 텃밭도 오뉴월 잡초 땜에 내던져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푸성귀는 삽자루 호미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 그러니 청정야채를 심는다는 건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영춘이 형, 면내 갑장모임에 나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건 바로 친구들 중에 아직도 현역으로 제 구실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경찰, 교도관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하고 학교지킴이하는 친구, 아파트 경비, 건물관리인 하는 친구, 주차장 관리까지 젊었을 때는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소소한 일들에 친구들은 노년의 삶을 만끽하고들 살았다. 영춘이 형, 혼자서 고집스럽게 살았던 지난 십년 세월, 뼈저리게 후회했다. 참으로 가슴 턱턱 칠 일이었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그날 이후 형이 달라졌다. 우선 군내 독거노인 돌봄이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점심때마다 무료급식을 도왔다. 매일처럼 갈 곳이 없이 쩔쩔매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생활이었다. 그야말로 ‘우리 형이 달라졌어요!’깜짝 외칠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새 달포 가량 자원봉사도 했다.
무엇보다도 형의 마음가짐이 변했다. 그 좋아하던 낚싯대를 처분했다. 남을 주면 그 사람 또한 허튼 세월만 낚는다는 노파심에 아예 미련두지 않고 불태워버렸다. 함께 바둑판, 골프채를 내다버렸다. 나이가 들어가면 그에 걸맞은 소일거리를 가져야 한다. 그게 건강을 지키는 바로메타다. 한데 영춘이 형한테는 낚시도, 골프도, 바둑도, 당구는 더 이상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취미생활일 뿐이었다.
암튼 형은 자원봉사 그 하나로 만족하며 산다. 따지고 보면 그 동안 형은 대접만 받을 줄 알았지 베풀 줄은 몰랐다. 그 사실을 이번에 크게 깨달았다. 형이 그랬다. “같이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천사표가 아닌 사람들이 없다”,“세상을 참으로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그렇게 말하는 형의 얼굴에 갖은 너그러움과 여유가 활짝 폈다.
오늘도 형의 건강한 목소리를 들었다. “종국아, 나, 오늘부터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자격증 준비할거야. 이십년 충분하게 발발거리고 일할 거리 아닌가?”그 말을 듣다보니 노년의 삶은 단지 늙어가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익어가는 걸 자신해도 되겠다. 이제 나 역시 형의 무한한 건승을 기원한다.
/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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