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에 든 학인(學人)의 하루는 어떨까? 실제로 겪어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신심이 돈독한 학인의 하루는 분, 초를 다툴 만큼 엄격하게 지켜진다. 3시에 도량석과 함께 시작된 아침 예불이 끝나면, 한 시간 조금 못 되는 동안 저마다 처소에서 입선(入禪 : 강원에서는 ‘간경看經’의 뜻으로 쓰이는 말)에 들고, 다시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동안 경을 읽는다.
저녁 예불 뒤에는 밤 9시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그 시간 전까지 강원의 전통 학습 방법인 논강과 다음날 학습을 위한 예습 시간을 갖는다. 따져보니 경상(經床)에 앉는 시간은 하루에 여섯 시간 남짓이다. 가을걷이로 한창 바쁠 때에는 울력이 다섯 시간이 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청도 운문사는 갈 때마다 오롯이 살아움직이는 생산적 수행으로 다른 절집과는 구별되는 단아함이 묻어난다.
운문사는 웅크린 범(虎踞)이 굽어보는 도량이 아름다운 절인데, 공부하는 학인의 수효가 250명이 넘는다. 운문사는 전국의 대여섯 비구니 강원뿐만 아니라, 비구 강원을 포함시켜도 그 규모가 첫손에 꼽힌다.
더구나 경내를 들어설 즈음 만나게 되는 몇 백 년 묵은 처진 소나무를 만나는 일은 여간 신명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운문사를 즐겨 찾는 이유는, 먹빛 한 가지로 절을 다스리며, 서른 채가 넘는 당우가 비좁도록 활기찬 수행 도량, 그 도량을 채우는 학인 스님 때문이다.
“땅에 거름을 주고 이랑을 쌓으며, 씨 뿌리고 싹을 틔우며, 물을 주고 김매는 일은 모두 모름지기 때를 맞춰라.”
스스로 분별력을 크게 갖지 못해도 하루를 사는데 마땅한 철칙을 가져야하고, 자신을 올바르게 경영하는 철칙을 지녀야한다. 어쭙잖은 일로 어제 하루를 온통 날려 버렸다는 데 새삼 자괴감이 든다. 살면서 굳이 스스로를 몰아칠 필요야 없겠지만, 같잖은 언쟁 뒤끝으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상사가 배배꼬인다면 적잖은 문제다. 보다 좋은 됨을 위하여 자중(自重)하고 자해(自解)하여야겠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건강한 노동성을 일깨우는 일침이다. 때문에 하릴없이 내게서 밀어져 간 하루가 몹시 애달프다. 다시는 그러한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고 마음 크게 다졌다. 날 잡아 운문사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