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되는 게 없는기라예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12. 16. 12:19

본문

되는 게 없는기라예

박종국

김정현(남, 56세, 가명)씨는 실업자다. 좋게 말해서 3년전 희망퇴직하고, 분식집, 치킨집, 편의점까지 거쳐 이제는 거리에 나앉은 노숙자다. 내가 그를 만난 건 마산역 대합실에서였다. 그는 내 고교후배다. 재학시절 그는 동기생 중 출중했으며, 서울4대문, 그것도 명문대학 공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거뜬하게 합격한 수재였다.
당연히 졸업 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했고, 신입사원 꼬리표를 떼지마자 대리 과장 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그가 3년 전에 희망조기퇴직했다며 낙향했다. 다들 뭔 일인가싶어 위로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던 우리들이야 지방, 고향언저리에 살며 할 수 없이 만족해야만 했다.
모교 같은 문학동아리 회원이었던 그는 언제나 우리의 화두였다. 한때 들리는 바로 그는 머잖아 회사 중역(임원)으로서 재계 한 자리 차지한다고 들었다.
그런 그가 낙향하더니 시내 분식점을 내어 김밥을 만다는 소식을 듣고 못내 찾아가보지 않았다. 분식점하는 게 뭐 허튼 일이냐마는 적어도 뭉개져버린 그의 자존심을 건더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공부머리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남달랐다. 비록 전공과 달리 아내랑 분식점을 운영하옇지만, 풍문으로 들리는 그가 미더웠다.
남은 대기업에 근무하고나면 지방에 조그만 업체 하나는 맡는 게 다반사라했지만, 그는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모든 걸 떨쳐버리고 분식점하며 소시민으로 살았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코로나19로 분식점운영도 여의치 못했다. 코로나19는 음식점 운영에 직격탄이었다. 불과 2년만에 분식점을 접었다.
이어서 그가 새롭게 차린 가게는 치킨집이었다.  인수하는 가맹점 점주의 말로는 하루 육칠십 마리는 쉽게 튀긴다고 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양 계약을 했다.
얼떨결에 생면부지의 일을 선뜻 도맡아 본사에 불려가서 치킨을 튀기고, 점포운영 전반에 걸쳐   교육을 받았다. 전공과 무관한 일이지만 그에거는 딱 맞는 일이었다. 마치 산적같은 그의 몸집이 치킨가게를 건사하기에 충분했다.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날개돋힌 듯 치킨주문이 많았다. 덩달아 매장뿐만 아니라 배달도 줄을 이었다. 근 1년을 거의 쉬는 날 없다시피 닭을 튀겼다. 그에 비례해서 수입도 쏠쏠했다.
웬걸 그 좋았던 호시절도 봄날처럼 쉬 끝날줄이야 그는 그 단말마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척에 동업 대형 프렌차이즈 매장이 오픈하자마자 그의 가게 고객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 그곳으로 쏠려가버렸다. 전례없이 매상이 뚝 떨어져버렸다. 급기야 매장직원을 다 내보내고 부부가 운영하다 또 문을 닫았다.
누구나 퇴직하고나면 쉽게 다가드는 게 치킨가게다. 하지만 성공해서 살아남기는 열 곳 중 한둘도 안 된다. 그만큼 치킨집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도 필살기로 사전오기를 투합해서 목 좋은 곳에 편의점을 낸 게 그의 마지막 도전기였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사투하듯 남은 퇴직금 전부를 가맹비와 점포임대와 물건 사들이는데 투여해서 부랴부랴 편의점을 열었다.
사거리라 나름 손님이 많았다. 한데 재수없는 놈은 마른 날 벼락을 맞는다고. 하필이면 소방도로 개설로 가게가 헐린다는 통보를 받고, 그는 가게를 연 지 불과 6개월만에 거의 빈털털리로 편의점을 접었다.
이게 역앞서 노숙자로 만난 김정현, 그의 인생2막이다. 비단 이같은 나락을 겪는 이가 그뿐이랴.

돼지국밥 한그릇을 앞에 두고 거푸 소줏잔을 들이키며 그가 말했다.

"행님예, 대기업다닌다고 뼈겼던 그때가 새삼스럽게 부끄럽심니더. 세상 잘못살았네예. 참 되는 게 없는기라예. 이제는 홈리스노릇도 지침니더. 우짤꼬예?"

|박종국 단소리쓴소리

'박종국에세이 > 박종국칼럼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타행(利他行)  (1) 2024.01.02
진정한 사람  (2) 2023.12.22
꿈을 훔치는 도둑  (1) 2023.12.15
인생은 전투라기보다 춤에 가깝다  (0) 2023.12.14
그저 베푸는 사랑  (1) 2023.12.1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