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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람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12. 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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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람

박종국

저는 조그만 소읍에서도 멀찍이 비켜난 시골에 삽니다. 그래도 농촌에서는 커다란 아파트단지입니다. 십삼년째 터잡고 사는데, 그때나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평소 딸깍발이로 살아 돈버는 재주는 타고나지 못해 그냥 만족하고 삽니다.
전체 420세대가 사는데, 마치 시골동네처럼 입주민이 하나같이 친숙하고 정감스럽습니다. 다들 인근 마산창원을 떠나 자연의 품을 찾아든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아파트도 아트막한 산 중턱에 위치했습니다.


일례로 제가 사는 아파트는 24시간 현관문을 열어젖혀놓아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한번은 연사흘 동안 외지에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보니 현관문을 열어두고 떠났습니다. 아뿔싸 하고 집안을 훑어보았지만 컴퓨터와 노트북을 비롯한 소소한 물건이 그대로 놓였습니다. 여타 물건도 다 제자리를 지켰습니다. 물론 집안에 가져갈만한 물건도 없을 뿐더러 그만큼 서로 믿고 삽니다. 우리네 삶에서 사람이 사람을 믿는 일만큼 아름다운 건 또 없습니다.

차가운 날일수록 저는 도서관을 찾습니다. 방학을 하면 거의 날마다 도서관에 가서 똬리를 틉니다. 천성적으로 집안에서 배 깔고 뒹굴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고약한 생활준칙을 고수하는 탓에 몸을 혹사하는지 모릅니다. 2018년 유월, 중병을 겪고 병상에서 자리를 털고일어난 이후는 더 부지런해졌습니다. 가뜩이나 인생을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니 살아숨쉰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하루를 열흘같이 살 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번 사지(死地)를 겪어본 사람은 절절하게 느낍니다.

혹자는 저를 두고 주의주장이 강하다느니, 제 하고픈 일은 하고야마는 강단을 가졌다고 걱정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저는 허릿하게 처신하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삶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밖에 나면 다시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를 아는 분은 함께하는 게 힘들다고 지청구를 해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같은 제 삶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재물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치만 저는 과감하게 사람도 잃습니다. 좋잖은 일에 마음 아파하기보다 그 일을 포기하는 게 낫고, 인간정리가 맞지 않는 사람 누더기 기우듯 애써 다가설 까닭이 없습니다. 어짜피 인생은 혼자 가야만하는 기나긴 항로입니다. 설핏 산들바람이 분다고해서 좋아할 일도 아니요, 천둥번개태풍이 휘몰아친다고해서 물러설 일이 아닙니다. 다만 처연하게 가던 길 계속 가야합니다.

아침에 보니 저만치에서 경비원아저씨가 빗질을 했습니다. 추운 날씨인데 그냥 갈까하다가 다가가보았더니 글쎄, 음식찌꺼기가 잔뜩 눌어붙은 흔적을 치우는 중이었습니다. 간밤에 누군가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뒷정리를 하지않은 겁니다. 그러니 길고양이가 해작질을 마다않고 했을 테고, 급기야 잡동사니한 쓰레기가 널브러졌던 상황이었습니다. 경비원이 그것을 치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아닙니다. 연만하신 분이 야간경비로 무척 피곤하실 텐데, 팥죽같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도맡았습니다. 순간, 제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연방 미안하다며 자리떴습니다.

또하나, 경비원아저씨가 들었던 청소통에는 생활쓰레기보다 담배꽁초가 가득했습니다. 저도 5년전까지만해도 '용고뚜리'였습니다. 들어보셨나요? '지나치게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입니다. 한자어 '용귀돌(龍貴乭)'이 어원이며, '골초(골草)'라 표현하는데, 영어로는 '헤비 스모커(heavy smoker)'라 합니다. 또, '철록어미'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담배를 쉬지 않고 연달아서 피우는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잇따라 계속 피우는 담배'라는 뜻으로 '줄담배'로, '체인 스모커(chain smoker)'라 합니다.
 


오죽했으면 담배하나를 두고 '철록어미냐 용귀돌이냐 담배도 잘 먹는다'라는 속담이 다 등장을 했을까요. 시쳇말로 담배 끝판왕에 해당합니다. 그런 용고뚜리와 철록어미를 뺨칠 만치 담배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지인 한 분이 육십 평생을 여여하게 삽니다. 오로지 담배로 늙은 그를 두고 제발 담배 좀 끊으라는 가족의 끈질긴 성화에도 꿈쩍 않고 주야장천 피워대자, 얼마 전 가족이 대책을 세웠답니다.
 
최종 병기이자, 필살기이며, 최후통첩과도 같은 비장의 무기 하나를 꺼내들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금품 살포 작전이었답니다. 그 내용인즉슨 만약 아버지가 담배를 끊으신다면 통 크게 거금 5,000만 원을 드리겠다고 자식이 약속을 했다는데, 자신 인생 여정에 다시는 없을 뭉칫돈 거머쥘 절호의 기회인데도 그는 자신이 없다고 마다했답니다. 독하게 마음 먹고, 눈 한 번 지끈 감고 끊어버리면 될 일을 그는 영 담배를 끊을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담배를 피다가 끊어보니 그게 얼마나 어렵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담배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청소통에 한 가득 담긴 담배꽁초는 뭘 의미하는 걸까요? 요즘같이 아파트 실내에서는 못피우니까 야밤에 내려와서는 삼삼오오 얘기하며 담배를 피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예전에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버린 담배꽁초가 급기야 쓰레기더미를 만듭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정해졌다고 하면 참 슬픈 일입니다. 손까딱만 하면 지척에 쓰레기통이 입 벌리고 섰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하찮은 넋두리가 길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곰삭여볼만한 얘기였습니다. 더구나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사회 전반에는 아직도 '갑질'이 몸에 밴 사람이 많습니다.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왕이 하찮은 거미 한 마리 땜에 목숨을 구한 일화는 많은 걸 생각케 합니다.

'내려놓아라. 다 내려놓아라.'
어쨌거나 끊임없는 하심(下心)이 명답입니다.
오늘도 더불어, 함께 행복하세요.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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