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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왜 '강철중 검사'가 없나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8. 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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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왜 '강철중 검사'가 없나
[정혜신 칼럼] 검사들이여, 직업적 본능에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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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앞에서 옛 안기부 도청테이프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범인을 잡기위해 밤거리를 내달리는 형사의 달음박질은 필사적이다. 이때 형사를 죽기살기로 뛰게 만드는 건 초과근무 수당 같은 보상욕구가 아니다. 과중한 업무환경이나 박봉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뛰는 속도를 늦추지도 못한다.

범인을 보는 순간, 자리에서 튕겨 일어서는 것은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의 '직업적 본능'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와일드카드>같은 형사영화의 추격신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영화적 요소가 가미된 탓도 있겠지만 그들의 직업적 본능은 가위 야수적이다.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안기부 불법도청 X파일'의 최초 입수자인 < MBC> 이상호 기자를 보며 기자의 직업적 본능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이 사건을 여기까지 밀고 온 결정적 힘은 누가 뭐래도 이상호의, 기자로서의 '야수적 본능'이다. 제보를 받았을 당시 이상호 기자와 데스크는 '함께 구속당할 각오를 해야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단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삼성이라는 재벌, 중앙언론사주, 검찰의 유착관계에 있다. 정치권력-경제권력-언론권력-검찰권력의 유착이 사건의 핵심이다. 그렇게 전 방위적인 연관성을 가진 사안이라서 < MBC>는 도청테이프를 입수하고도 반년이 넘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회적 파장과 소송에 대한 부담 등으로 몸을 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보도불가 결정을 철회하고 내용을 전면공개 한 후 전사적 차원에서 언론의 정도를 되새김질하는 < MBC>의 구성원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직업적 본능을 발휘한 것일 테지만 나는 그들이 고맙다. 국민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적 본능에 충실한 이들을 갈구한다. 그래서 이상호 기자의 야수적 본능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직업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적인 기자를 보고 싶다

한 시사주간지는 '편집장의 편지'에서 자신들이 부끄럽다며 "자본권력에 '지하드(성전)'를 선포한 듯한 이상호 기자에게 응원"을 보낸다고 썼다. 하지만 언론계 일부 종사자들은 이상호 기자를 향해 '확실히 한 건 했네, 완전히 떴구나' 따위의 습관적 품평을 떠벌린다. 한술 더 떠 '이상호 X파일'의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한 삼성측 변호사는 이상호를 '개인적 공명심'에 사로잡힌 기자쯤으로 매도한다.

이상호에게 단 한 점의 명예욕이나 기자로서의 공명심마저 없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X파일'을 입수하고 지난 8개월 동안 이상호 기자가 오롯이 감내했을 개인적 불안과 두려움, 간절한 소망과 뼈저린 외로움, 좌절 등에 대해서 단 한번만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런 류의 천박한 말들을 쉽게 입에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기자로서의 과거 행적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더 그럴 것이다.

어느 원로 언론인의 말처럼 기자는 외로운 직업이다. 교제범위가 가장 넓은 직종인데도 막상 자기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려면 깊은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자들의 본성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주의 작가 발자크는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라는 책에서 일부 저널리스트들을 향해 "생각이 없을수록 출세한다"고 풍자한 적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 어떤 손익이 있을까를 치밀하게 계산한 후에 보도의 톤을 결정하는 식의 전략적 사고에 익숙한 기자가 아니라 기자로서의 직업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적인 기자를 보고 싶다.

전쟁터의 의사는 피 흘리는 부상병을 보는 순간 적군이라 할지라도 자동적으로 응급처치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그것이 의사의 직업적 본능일 것이다. 직업적 본능이란 최소한의 직업적 윤리와 같은 말이다. 본능이 인간을 구성하는 최소의 조건이듯이.

'검찰은 기계적 법률적용 집단', 이런 비아냥이 왜 나왔을까?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앞 검찰 깃발.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불법도청 테이프를 통해 '떡값'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찰 간부 10여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은 '원칙대로, 규정대로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단다.

현실적으로 검사에게 수사지휘를 받는 경찰이 검찰간부를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일과성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일단 고발장이 접수되면 경찰은 수사에 착수할 의무가 있다'는 복무규정에 충실한 어떤 경찰이 이상호처럼 직업적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면 '예외적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검사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또한 그들의 직업적 본능에 충실하기를 바라고 있다. '통신보호비밀법'이라는 실정법 위반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않는 듯한 태도는, 아무리 법의 보수성을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불법 수집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어서 그것을 토대로 수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거나 'X파일 사건'의 이상호 기자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도청된 자료가 언론에 공개되면 면죄부를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 줄까봐 아직도 고민 중이라는 검찰의 모습은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보인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거나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앞선 걱정, 혹은 쓸데없는 걱정이다. 상식 선에서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도 그런 이들에겐 복잡한 미적분 공식이 되는 것이다.

"걸어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잠정적 피의자로 보인다"는 한 특수부 검사의 말처럼 검사의 막강한 권한을 이런 일에 잘못 휘두를까 걱정이다. '(검찰은) 기계적 법률적용 집단'이라는 비아냥에 벌컥 화만 낼 게 아니라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따져 보아야 엘리트를 자처하는 검사답다.

강철중 검사에게 박수 보낸 검사여, 직업적 본능에 충실하라

▲ 지난 2003년 3월 8일 서울지검에서 열린 '전국평검사회의' 모습.
ⓒ2003 권우성
지난 해 검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공공의 적2>의 특별시사회가 대검찰청에서 있었는 데 영화를 보고 난 검사들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단다. 그들에게 감동을 안긴 주인공 강철중 검사(설경구)는 '법으로 끝을 내자'는 동료검사들의 충고를 뒤로 한 채, 법망을 지능적으로 빠져나가는 재단이사장인 '나쁜 놈'을 잡는 일에 수단과 방법을 안가린다.

고위층이 동원된 전방위 로비에 의해 수사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 되자 강철중 검사는 옷을 벗더라도 나쁜 놈을 직접 처치하겠다며 주먹도 모자라 총까지 들고나선다. 실정법 위반에 대해 누구보다도 밝은 검사들이 불법적 수사를 자행하는 영화 속의 강 검사에게 집단적으로 박수갈채까지 보냈다. 단지 영화 속 이야기라서? 아닐 것이다.

자신의 직업적 본능에 충실한 한 검사의 순정함이 주는 깊은 울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능은 핵심을 놓치지 않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본능이란 정교하고 미세한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존재이유' 그 자체에 의해 움직이는 힘이다.

검사와 기자의 세계를 다룬 비슷한 제목의 책 두 권이 있다. <당신, 검사 맞아?>와 <당신 기자 맞아?>이다. 하나는 법조기자들이 쓴 검찰수사 비록이고 또 하나는 전 중앙일보 기자 오동명이 한국언론에 대한 반성문의 성격으로 쓴 책이다. 내게는 그 제목들이 기자와 검사라는 특별한 개인들에게 직업적 본능을 묻는 말처럼 들린다.

지난 5일 이상호 기자는 검찰에 소환되어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 조사가 완전히 끝났는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검찰만이 알뿐이다. 검찰은, 공익적 차원에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기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기자를 소환했다. 이번처럼 기자가 직무상 보도행위로 수사기관에 소환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추악할 유착관계 밝힐 검찰의 또 다른 이상호를 기대한다

'언론개혁 국민운동'은 이상호 기자의 소환은 검찰의 언론탄압이라며 "언론인들은 사회비판 기능이란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법률적 부담을 스스로 떠 안았다. 검찰은 언론이 떠안은 그 부담을 발판삼아 수사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라고 주장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실정법과 진실 추구가 부딪칠 때 기자들은 진실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이상기 기자협회장의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호 기자는 기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사법처리도 각오했고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서의 심각한 갈등도 감내했다. 당연한 일을 한 것이었지만 그 동안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결과로 이상호 기자는 자신의 '튀는' 태도를 문제삼는 수많은 눈초리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 결과 국민들은 헌법에 보장된 '알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한 법조기자는 검찰조직을 '엄격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와 조직을 보호하는 충성심,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수사체계'로 설명한다. 그런 곳이라고 해서 '이상호'가 없으리란 법이 있는가.

'통제할 수 없는 검사'라는 꼬리표가 붙은 검사들을 우리는 검찰 역사에서 적지 않게 목격했다. 그들에 의해 시대의 물줄기가 바뀐 적도 적지 않았다. 정치권력-경제권력-언론권력-검찰권력의 거대한 4각 동맹에 맞서 그들의 추악한 유착관계를 밝혀야 할 지금이 또 한번 그런 시점이다.

'X파일' 사건과 관련하여 검찰의 또 다른 '이상호'를 기대한다. 직업적 본능을 잃지 않는 특별한 몇몇 사람들이 사회를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국민적 본능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검찰을 향해 영화 속 강철중 검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박수갈채를 보낼 준비는 이미 끝나 있다. 앞으로 걸어나오기만 하면 된다.
2005-08-08 09:33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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