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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도 김일성에 선물을?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9. 2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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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도 김일성에 선물을?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 참가기(18) 국제친선전람관에서 배신감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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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친선전람관 어귀
ⓒ2005 박도
고급대리석과 샹들리에로 장식

향산 호텔에서 엎어지면 무릎이 닿을 거리에 국제친선전람관이 있었다. 이곳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각국 지도자들과 요인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보관 전시하는 곳이었다. 우리 일행을 굳이 묘향산까지 안내한 것은 묘향산을 관람시켜주는 것보다 이곳 참관이 주목적인 듯한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이 국제친선전람관은 1978년에 개관하였다는데 조선식 합각지붕에 올린 청기와에 곱게 단청한 바깥기둥머리와 서까래로, 나무를 쓰지 않았지만 얼핏 보면 나무로 지은 것 같이 보였다. 이곳 안내원은 일년 열두 달 빛과 온도 습도를 자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최신의 전시관이라고 자랑했다.

국제친선전람관 정문 앞에는 군인들이 착검한 채 경비를 서고 있었다. 육중한 전람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부는 온통 고급대리석에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이곳은 궁한 티는커녕, 초호화판이라 어리둥절했다. 관람객의 카메라도, 모자도 보관소에 맡기게 하고 덧신을 신게 하였다. 각 조마다 안내원이 붙었다. 우리 5조는 김일성 대학 역사학부 출신인 오윤희(33)씨로 매우 곰살갑고 해설이 아주 유창했다. 아마도 북녘에서 최고의 엘리트를 배치하였나 보다.

국제친선전람관은 두 곳으로 2005년 7월 현재로 김일성 주석 15만여 점, 김정일 국방위원장 5만여 점 등 178개의 방에 219천여 점의 각국 원수 및 방문객들의 선물로 가득 찼다는데, 너무 많아 ‘수박겉핥기’로 훑을 수밖에 없었다. 안내원은 신명이 나서 세계 각국에서 보내준 인사들의 이름과 선물 내용을 유창하게 설명하였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서부터 우간다 캄보디아 등 제3세계의 지도자들은 거의 빠짐이 없는 듯하였다. 우리 일행이 취재수첩에 메모하면서 경청하자 안내원은 더욱 진지하게 설명하였다.

▲ 국제친선전람관 앞, 우리 조원들과 북녘 안내원 오윤희씨(가운데 붉은 한복입은 이)
ⓒ2005 박도
지난 삶이 속아서 산 기분

“이 법륭사 5층탑(모형)은 조선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의 아들 우쓰노미야 도쿠마가 우리 수령님에게 그의 아버지 죄를 사죄하면서 바친 겁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 침략의 원흉이지만 아들은 사회주의 신봉자로 우리 수령님을 존경하였습니다.”

선물의 크기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스탈린이 보냈다는 자동차나 열차 전망실이 있는가하면 자그마한 귀금속 목걸이나 반지도 있었다. 남측 인사들이 보낸 선물도 전시돼 있었다. 가장 많이 보낸 이는 대북사업의 선두주자 현대의 고 정주영 회장으로 현대의 새 차들도 전시돼 있었다. 에이스침대에서는 침대와 응접세트를, 동아일보에서는 보천보 전투를 보도한 동판을, 김한길 전 문광부장관은 도자기를 선물한 게 눈에 띄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낸 선물도 전시돼 있었다. 순간 나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국가원수끼리 외교 관례상 주고받은 선물이라고 이해하고도 싶지만, 특히 군사정권 시절 백성들은 '평화통일'만 부르짖어도 사상범으로 때려잡았던, 서로 상종도 안 할 사이로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선물까지 갖다 바친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였는데 부대 구석구석마다 “때려잡자 ㅇㅇㅇ” “먼저 보고 먼저 쏘자!” 이런 구호에 젖어 살았고 날마다 하는 주된 일이 야간 경계근무였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근무하는 올빼미 생활로, 야간 근무 나가기 전에는 얼굴을 숯덩이로 칠하고 밤새워 덮개도 없는 잠복호에서 병사들은 뜬 눈으로 지새웠다.

경계근무에는 계절도 악천후도 없었고, 오히려 악천후에 대침투가 더 잦다고 상급부대에서는 늘 닦달하여 강추위에도 눈비를 맞으면서 근무했다. 돈도 백도 학벌도 없어서 최전방에 온 친구들은 고된 경계근무를 견디지 못하고 탈영을 하거나 자해소동을 벌이다가 청춘을 망치는 병사들도 더러 있었다.

말단 졸병들에게는 서로 총구를 겨누게 하고 자기들끼리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만나면 술잔을 부딪치고 심지어는 ‘총풍’이네 ‘간첩사건’이네를 조장하며 공포분위로 만들어 정권연장에 이용도 한 걸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이 나라 백성(인민)들은 무엇인가. 졸병들에게는 외제 총을 쥐어주고는 서로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는 원수로 만들어놓고 자기들은 권좌에서 산해진미 맛난 음식에다가 진귀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지낸 걸 생각하니 그들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지도자였는지 묻고 싶다. 그런 지도자 밑에 살아온 내 지난 삶이 온통 속아서 산 기분으로 억울했다.

우리 조를 뒤따르는 북녘의 한 다른 안내원은 내가 기록을 하기 위해 조금만 열에서 뒤떨어지거나 한눈을 팔면 짜증이 날 정도로 닦달을 하였다. 그들은 우리 일행에게 절도 있는 모범생이 되기를 은연중에 요구하였다.

▲ 국제친선전람관 추녀 밑에서 바라본 묘향산
ⓒ2005 박도
수령님께서 인민에게 바쳤습니다

- 이 선물들은 쓰라고 준 것인데 왜 이렇게 전시하고 있습니까?
“우리 공화국 수령님은 인민에게 모든 걸 바치고, 인민은 수령님께 모든 충성을 바칩니다. 이 모든 선물은 수령님께서 인민에게 바쳤습니다.”

안내원은 내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수령님은 인민에게 모든 걸 바쳤다고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식량난으로 죽어가는 어린 인민을 살리기 위해 이 선물들을 외국에다 내다팔아 양식을 사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 인민을 살리는 게 옳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가 뭐라고 답하겠는가? 애꿎은 그만 난처하게 하고 피차 불쌍한 백성과 인민끼리 서로 얼굴 붉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식으로서는 인민을 위한다는 말의 참뜻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비단 남북 어느 한편만이 아니다.

전람관 관람이 끝나자 안내원은 선심을 베풀 듯 어귀 보관소에 맡긴 카메라를 찾아줘서 휴게소 겸 선물판매소에서 언저리 묘향산을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은 뒤 선물판매소를 둘러보았다.

▲ 국제친선전람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묘향산 비료봉 계곡
ⓒ2005 박도
내가 해외에서 선물 사는 걸 극구 나무라는 아내지만 내 조국 북녘에서 산 것만은 이해하리라 싶어서 나무젓가락과 손수건, 손안마기 등을 몇 점 샀다. 지난해 미국에 갔을 때는 40여 일 머무를 동안 가족을 위한 단 1달러짜리 선물도 사지 않았다. 내 지갑 돈으로 산다고 해도 미국의 동포나 국내 친지들은 네티즌의 성금을 유용해서 산 걸로 오해한다는 아내의 극렬한 당부로 빈손으로 돌아왔다.

휴게소에서 오윤희 안내원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번 방북 길에는 빨래도 복무원에게 맡겼다고 하니까 그는 “선생님, 잘하셨습니다. 제 집에 왔는데 빨래를 내놓으셔야지요”라고 오누이같이 따뜻한 말을 건넸다.

순간 나는 그가 정말 내 누이 같은 감동으로 아무도 몰래 그의 손에다가 유로 화를 몇 푼 쥐어주면서 오라버니가 누이동생에게 주는 걸로 받으라고 하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통일이 된 다음에 꼭 다시 방문하여 그때 주십시오”하고서는 굳이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 국제친선전람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묘향산(1)
ⓒ2005 박도

▲ 국제친선전람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묘향산(2)
ⓒ2005 박도
2005-09-24 10:47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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