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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을 살리기 위해 제주부터 서울까지 걸어올라오는 '소달구지 대장정'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된 '쌀협상 비준동의안'은 농민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박인자 한국생협연합회 진주생협 이사장이 '우리쌀 살리기'에 소비자가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
'나이 먹어야 철이 든다'는 말에 '하루에 먹은 밥그릇 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순진하게도 그 때는 나이에다가 세 끼 밥그릇을 곱해가며 누가 더 철이 들었는지 따지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 들어 몇 번이나 그 말을 되새기게 됩니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는 동안 내가 먹은 밥그릇이 얼마인지, 밥 먹은 값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결혼을 준비할 때 가장 두려운 일 중 하나가 밥을 해서 먹는 일이었습니다. 천방지축으로 자라며 쌀을 씻어 밥을 해 먹어본 적 없이 살다가 하루 세 끼를 내 손으로 해서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여야 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 땐 온통 머릿속을 걱정스럽게 한 일이었습니다. 철없던 걱정은 약한 아이를 기르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먹는 대로 간다'는 어른들의 말은 우리 세대에도 정말 맞는 말이지만, 그 본뜻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뭐든지 잘 먹고 많이 먹는 아이가 튼튼하다'는 말이 이제는 '안전하지 못한 음식을 먹은 아이들이 아토피나 소아비만 등 질병으로 고생한다'는 말이 된 것입니다. 안전한 음식을 먹은 아이가 튼튼하다 '모성만큼 강한 것이 없다'고들 하는데 철없는 엄마들이라고 해서 아이들의 고통을 무심하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들은 생협을 통해 안전한 먹거리로 밥상을 바꾸고, 식품안전법은 어떻게 돼야 하는지 공부도 하고, 농산물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고생하시는 농부들의 터전도 찾아다니며 우리 아이가 아프고 세상이 온통 썩어들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의 고통이 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깨달음도 이미 늦었다는 듯이 올해는 WTO(세계무역기구) 쌀 협상이 합의됐고 10년 넘게 싸워온 농민들은 어느 해보다도 처절하고 아득한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땅을 살리는 건 고사하고 남의 나라 쌀을 사먹기 위해 그동안 지켜온 곡식들을 포기하게 하는 상황, 참으로 안타깝다 못해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생협 조합원들은 아이들과 함께 계절마다 자연을 체험하고 사라져가는 이웃을 느껴보는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볕좋은 봄에는 바구니 들고 쑥을 캐러 가고, 여름이면 캠프를 열어 아이들 스스로 바른 음식을 찾는 훈련도 하며, 날씨가 시원해지면 가을걷이하는 생산자들과 손발을 맞춰 어설픈 수확의 기쁨도 누려봅니다. 그런데 올 가을엔 풍년을 기뻐할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합니다. 쌀의 위기는 길거리에서 싸우는 농민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소비자와 국민의 위기이기 때문이지요. 안전한 밥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땅과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소비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쌀이 무너지면 우리 땅에서 나는 다른 모든 농작물도 위태로워진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쌀을 제외하면 우리 농산물의 자급율은 5%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우리 농산물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당연해졌고 우리 것을 찾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 됐습니다. 정말 소비자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시골 구석구석까지 중국산·칠레산·미국산 농산물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우리 농산물 찾기 어렵다. 쌀마저 사라진다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밥상은 값싼 외국 농산물 투성이로 변했지만 농민들은 우리 것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의 소비자들도 의지를 모으자는 의미에서 10월 30일 여의도에서 소비자 1만인대회가 열립니다. 이미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행사가 성사되기를 바라며 추수할 논밭을 두고 소달구지를 끌고 국토순례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땅끝 해남에서 여의도까지 1000리 넘는 길을 걸으며 '우리 쌀을 지키자'고 국민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시작은 생산자 분들이 했지만 지금은 순례단이 지나가는 지역에서 소비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걷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따라 달구지를 따라 걷는 아이들은 그저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며 무슨 축제라도 하는 줄 압니다. 그러다가 발이 터지도록 걷고 또 걷는 순례단에게 묻습니다. '우리 쌀을 지키려면 밥을 많이 먹으면 되지, 다리 아프게 자꾸 왜 걷기만 하느냐'구요. 함께 걷는 소비자들은 그간 막연하게 지니고 있던 불안감을 한 걸음씩 내딛는 동안 가슴 아프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풍년이 든 들녘은 넉넉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데 우리가 걷는 이유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절규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쌀을 먹이고 싶어도 없어서 못 먹일 앞날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순례단은 지난 15일 경북 성주에서 중간보고 행사를 했습니다. 농민들과 소비자들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현실을 잠시 잊은 채 수확 농산물 전시회도 하고 비빔밥도 같이 먹고 소달구지와 사진도 찍으며 막걸리 한 잔에 노래도 불렀습니다. 행사를 마치기 전 생산자 자격으로 참석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일어서시려다 말고 다시 무릎을 꿇고 앉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순례단과 소비자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셨습니다. 농촌을 지키려고 소비자와 순례단이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시면서. 눈물이 나서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이라도 미약한 소비자들의 힘을 모아 우리 쌀을 지켜내야 합니다. 농업의 미래는 곧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기 때문이지요. 할아버지와 마주한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쌀이 생명이자 주권이라면 쌀을 지켜내는 일에는 누가 먼저라고 할 순서가 없습니다. 소달구지가 가는 길마다 쌀을 지키려는 국민들의 마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는 30일 1만인대회가 우리 땅을 지키려고 싸워온 농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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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을 살리기 위해 제주부터 서울까지 걸어올라오는 '소달구지 대장정'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된 '쌀협상 비준동의안'은 농민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조열제 (사)한국생협연대 가공 생산자 대표가 '소달구지 대장정'의 대전~공주 구간을 함께 한 뒤 '우리쌀 살리기'에 소비자가 나설 것을 촉구하는 소감문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
오늘(22일)도 새벽 미명부터 걷고 계실 소달구지 행렬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히 아파옵니다. 마치 부정맥을 앓는 환자처럼 말입니다. 하루 반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오늘 오전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이부자리에서 뒤척였습니다. 군에서 행군을 한 뒤 처음 걷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속도가 무려 시속 7~8km 정도라니 건강한 남정네도 쉽지 않았습니다. 같이 걷던 아들 녀석은 힘들면 소달구지나 얻어 탈 요량으로 참가했다가 '아버지에게 속았다'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답니다. 순례단 일행을 이끌고 계신 박종권 단장님과 소영석 총간사님은 이 길을 22일째 걷고 계십니다. 저를 포함해 일행의 대부분은 숙소에 도착할 저녁 무렵이면 파김치가 돼 밥 먹기 무섭게 눕기에 바쁩니다. 그렇지만 총단장님과 총간사님은 하루 평가회와 다음날 일정 준비 상황을 확인하고 지역 농민회 관계자, 생산자 방문을 접견하며 일행을 위로하는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 자리에 주무셨습니다. 21일 밤 저는 몸이 극도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저분들은 무슨 힘으로 저렇게 걷고 있을까? 왜 걸어야 하는 걸까? 걷기만 하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소달구지 행사를 시작할 때부터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들인데 그 밤에 반짝이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22일전 해남에서 발대식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제주 출정식을 하고 다음날 발대식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동지들은 해남의 땅끝 마을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리 쌀순이도 도착했고 보급간사 곽해상님은 소를 지키기 위해 풍찬노숙을 했습니다. 물론 추위를 이겨야 한다는 명목으로 소주도 엄청 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소달구지는 30분만에 쌀순이의 무릎 관절염 때문에 사람이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기계로 농사를 짓는 요즘 시대에 달구지를 끄는 소도 드물 뿐더러 걸을 일도 별로 없었을 소의 형편을 생각하면 아스팔트를 걷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던 듯합니다. 이 일로 많은 분들이 과연 소달구지로 800km 대장정을 마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염려는 소달구지 행사를 넘어 현재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중첩됐습니다.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와 신자유주의 파고 속에서 이미 국제 경쟁력을 잃어버린 우리 농업을 살리자는 외침이 비교우위론에 젖어 있는 관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차를 타면 6시간이면 도착할 서울길을 30일에 걸쳐 소달구지와 함께 걷는 것이 저들에게 얼마나 무모하게 보일까. 속도와 성장과 국제 경쟁력에 사로잡힌 경제 관료들에게 우리의 행진은 얼마나 비경제적으로 보일 것인가." "안타까운 눈물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대전 행사장에서 충남 생산자 대표 양선규님은 이렇게 울먹이며 호소했습니다.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어유, 소달구지 행렬을 보니 눈물이 나유." 해남 땅에서 밤새 소를 지키며 여물을 챙기시던 이 분의 눈물이 제겐 잘 걷지 못하던 쌀순이의 눈물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 생산자들 불쌍해유, 소비자 여러분이 지켜 주셔야 해유." 그리고 눈물만 주룩 주룩 흘리셨습니다. 그렇지만 흐르는 눈물에 비관만 담겨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남 땅을 출발한 소달구지 일행은 충남 공주를 지나 서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걱정과 불안을 안고 출발했던 소달구지 일행은 지금 한국 농업 희망의 쌀부대를 싣고 홍천, 과천을 지나 서울 여의도에 입성하기 위해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1000만 소비자 여러분, 그동안 400km에 걸친 대장정을 하느라 발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져 버리고, 발톱이 너덜거리고, 티눈에 물집이 겹쳐 너덜너덜해진 소달구지 일행들을 구합시다. 전국 농민의 탄식과 바램을 싣고 온 소달구지를 소비자 여러분이 구해 주셔야 합니다. 소달구지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한국 농업의 상징입니다. 소달구지는 농촌의 희망을 싣고 여의도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한국 농업의 희망은 우리 민족과 자손의 터전입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격려와 위로, 염원이 함께 담긴다면 경천동지할 함성이 울려 퍼져 비관과 불안과 비교 우위론, 패배주의가 단숨에 물러갈 것입니다. 저는 울보가 됐습니다. 양선규님의 말씀에서, 총단장님과 총간사님의 지문 없는 발바닥에서, 낙오할 것 같았지만 구간을 끝까지 완주했던 아들을 보며, 대전~공주 구간 걷기에 참여한 연로하신 진경희 회장님의 걸음을 보면서 바보같이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앞으로는 안타까운 눈물이 아니라 소비자 여러분의 참여와 격려로 인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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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을 살리기 위해 제주부터 서울까지 걸어올라오는 '소달구지 대장정'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된 '쌀협상 비준동의안'은 농민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이 글은 릴레이기고 세번째로 허선주 한국생협연합회 편집위원장이 보내왔다. <편집자 주> |
남편이 지방근무를 가게 되자 아들 녀석과 저, 단 둘뿐인 저희 가족의 살림살이는 너무도 간편해졌습니다. 빨래, 집안청소, 밥상 차림까지
일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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