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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이 프랑스인이면 그들도 프랑스인이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1. 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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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이 프랑스인이면 그들도 프랑스인이다
[분석] 두 청년의 죽음으로 촉발 된 프랑스 소요사태
텍스트만보기   손영우(ywson) 기자   
▲ 정부의 강제적 퇴거 항의하는 시위
ⓒ2005 주거권단체사이트(DAL)
지난 10월 말부터 프랑스 파리 외곽지역에서만 일어났던 소요 사태가 지난 6일 새벽, 드디어 파리시내까지 번졌다. 하룻밤에만 파리시 3구에 최소 4대, 17구에서 6대의 자동차가 불에 탔다. 프랑스의 일간신문 <르 몽드>에 의하면, 새벽동안 프랑스 전국을 통틀어 300여 곳에서 1295대의 자동차가 불에 탔으며 312명이 체포됐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파리교외인 클리시 수 부아에 거주하고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해 도망가다 감전사 한 것으로 촉발된 이 소요사태는 7일 현재 프랑스 전역은 물로 유럽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소요에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체포 된 소요 참가자들은 대부분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으로 이민 2, 3세들이며 가난한 가정에 학업에도 실패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방화를 통해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하며 직접적인 경찰과의 대치에서의 승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일반인들에 대한 폭력과 약탈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방화의 대상 역시 보험으로 통해 일정정도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자동차, 불평등한 공공서비스의 대상으로 일컬어지는 대중교통, 다른 지역에 비해 빈약한 투자로 시설이 낡은 학교, 체육관을 비롯한 관공서, 낙후된 지역에 세워 많은 세금혜택을 챙기면서도 이 동네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인색했던 대기업상점 등으로 나름대로의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

프랑스의 불기둥은 이미 예견된 일

이 사건의 발단은 비록 경찰의 검문을 피하고자 변전소 담을 넘다 감전사 한 두 소년의 죽음이었고 프랑스 경찰이 이슬람교 성전에 최루탄을 발포하면서 심화됐지만 이런 사태는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던 것이다.

2002년 대선을 통해 들어선 프랑스 우파정부는 이전 조스팽 정부의 이민자, 도시빈민자에 대한 포용적 정책을 급선회 해 배제적 정책을 세웠다. 먼저 라파랭 정부는 2003년 '학교 내 종교 상징 착용금지 법안'을 제출하였다. 이 법안은 이슬람교를 믿는 학생들에겐 치명적이었다. 가톨릭의 경우 십자가를 항상 가슴에 지니고 다니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지만 이슬람의 경우는 다르다. 이슬람의 경우 집 밖에선 항상 이슬람 스카프를 착용하는 것을 교리로 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가톨릭 기준으로 형성된 비종교적 교육제도에 이슬람 문화를 통합시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법안이 제출 된 뒤 프랑스 일각에서는 문화적 말살정책, 강제적인 문화통합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예민한 시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정부정책은 반항심 혹은 적개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비 위생 건물에 거주하는 빈민 퇴출 정책'이다. 2005년 9월 1일자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파리 영세민 주택논쟁을 다루고 있다.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은 안전상의 이유로 파리에서 빈집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영세민 세입자들에게 퇴거를 명령했고 공권력을 이용해 거주자들을 강제로 퇴거시켰다.
공교롭게도 강제집행이 되던 날은 초·중·고등학교 개학일 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등교 준비를 하던 아이들과 그의 가족들은 취재열기로 몰려든 방송국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거리로 쫓겨났다.

영세민 주택, 파리전체주택의 12%에 불과

이러한 공권력을 이용한 강제 집행은 지난 4월 이해 영세민 주택 화재로 인해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른 것인데 주거권시민단체는 이러한 영세민 주거문제의 원인은 2000년에 조스팽정부에 제정된 '도시신개발과 연대 관련 법(la loi de la solidarité et du renouvellement urbain, SRU)'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SRU 법안은 프랑스 모든 행정도시(communes)에 영세민주택을 20%이상 지을 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다. 영세민주택을 건설함으로써 많은 유색인종들이 도시에 유입되는 것을 걱정하고 영세민들의 유입에 따른 주택가격의 하락을 바라지 않는 유권자들을 지닌 도시는 이 법을 어기고 벌금을 내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좌파시장이 재임해 있는 파리시는 해마다 4000호의 영세민주택을 건설하고 있으나, 현재 영세민 주택은 파리전체주택의 12%에 머무를 뿐이다.

사회당의 피에르 에덴바움(Pierre Aidenbaum) 제3구 시장에 의하면, 8월 29일 파리 3구에서 7명의 사망자를 낸 화재 역시 수년 전 외국 이민자에 의해 스쾃(불법점거)된 화재건물은 8달 전 파리시에서 재구입, 영세민 주택으로 전환되어 이들에게 임대, 불법거주자들에게 체류증(정식거주 증명이 있어야 체류증을 얻을 수 있음)을 얻을 수 있게 하였으며 다시 재보수를 앞두고 있던 차에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고가 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의회에서 법을 준수한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며 다른 도시들의 영세민주택 건설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한편 불법거주자들에 대해 일방적인 퇴거를 명령한 니콜라 사르코지가 시장으로 있었던 뇌이이(Neuilly)는 영세민 주택율이 3%밖에 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인종차별 증대시킨 사회안전유지 정책변화가 직접적인 계기

▲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여행객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경찰
ⓒ2005 프랑스경찰청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정책으로 이들이 소요를 벌이는 것일까? 소요 가담자들이 현 정부, 특히 사르코지에게 강한 적개심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사회안전정책의 변화 때문이다.

사르코지 장관은 우파 정부 초기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사회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조스팽 정부시기의 '친근한 경찰'에서 '심문하는 경찰(la police d'interpellation)'로 경찰근무체제를 변경하였다. 파리근교 주민은 이러한 경찰체계의 변화에 대해, "이전에 자전거로 순찰 돌면서 아침마다 서로 인사하던 경찰에서, 도심 한가운데 상주하는 특수기동대(CRS)차량으로 바뀌었다"며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경찰의 체계가 변하면서 방리유에 설치되어 있던 파출소는 사라지고 경찰서 별로 순찰차를 이용해 전방위로 순찰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 경찰들은 이동하면서 심문을 하고 일부는 긴급 상황 발생 시 즉각 출동할 수 있게 대기를 한다.

이제 프랑스에서는 롤러블레이를 타고 순찰을 하며 대로에서 여행객에게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는 경찰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다만 밤마다 순찰차를 타고 지나가며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검문할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방리유(도시외곽, banlieu)에 사는 일부 청년들에겐 적개심과 차별감을 불러일으켰다.

방리유 청년실업률, 일반 청년실업률에 2배

▲ 심문을 진행중인 특수기동대(CRS)
ⓒ2005 CRS 사이트
이와 관련 UNSA소속 경찰노동조합의 조아귀앙 마사네 대표는 <누벨 옵세르바퇴르>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친근한 경찰정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더라도 현 정부가 이것을 폐지한 것은 실수였으며 빈민동네에 파출소를 남겨두었어야 했다"며 "왜 이 지역엔 공공서비스가 없어야 하는가? 이곳 주민들도 (부촌인) 파리의 16구와 뇌이이(Neuilly)와 동일한 안전을 제공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반드시 주민과 경찰 간에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한다"며 " 경찰이 대중들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실업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방리유 청년실업률은 일반 청년실업률 2배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비숙련 노동자들이기에 구조적 실업에 아무런 보호망 없이 노출되기 쉽다.

조스팽 정부에선 비숙련 노동자의 자활을 위해 많은 시민단체와 함께 직업교육과 취업 대책을 세우고 이들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취업은 범죄 감소와도 직결되기도 하는데 자활단체 활동가에 의하면 우파정부는 집권과 함께 이들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30%이상 감축했다고 한다.

물론 조스팽 정부의 정책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이러한 최소한의 생활 보호망이 우파정부에 의해 사라진 것이다.

지단이 프랑스인이라면 그들도 프랑스인이다

한편, 장 마리 르펜의 노쇠와 더불어 영향력이 줄어들던 극우세력은 이번 소요사태를 기회로 삼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극우정당 중 하나인 '프랑스를 위한 운동' 대표 필립 드 빌리에는 7일 수상에게 방리유의 질서를 다시 잡기 위해 군대 파견을 요청하면서, 소요에 참가하는 아이들을 가진 가족에 대해 정부보조금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8일을 기해 우파정부는 야간통행금지를 시의 필요에 따라 허가하고 경찰에게도 더욱 강력한 진압을 허락하며 사법기관에 체포자에 대한 즉각적인 판결을 요구하는 등 더욱 강경한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공산당, 노엘 마메르(녹색당 국회의원)와 사회당 의원 일부는 사르코지의 사퇴를 주장한 것에 이어 공산당은 '친근한 경찰정책' 재도입을 주장하고 녹색당은 어려움에 빠져있는 이곳 사회단체를 위한 사회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공산당은 드 빌팽 정부의 야간통행금지 정책에 반대하는 등 강경진압책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정부에 실업, 교육 등 종합대책 등의 포용정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소요에는 이민자, 빈민, 종교, 치안, 실업, 세대, 교육 등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소요가 잦아든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지금 프랑스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그들을 프랑스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업과 빈곤, 인종적 편견에서 허덕이고 있는 그들을 감싸 안아야 할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이민 2,3세들만이 프랑스인이 아니라, 파리도시외곽에서 일자리 없이 하루 종일 방황하는 이민 2,3세 역시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강압적이고 배제적인 방법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2005-11-09 13:37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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