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00만이 꿈이던 시절, 극장 전면에 가득 찬 화려한 채색의 극장 간판은 행인들을 환상과 모험 세상으로 이끌었다. 영화가 끝난 뒤 다시 한번 극장 간판을 바라보면서 영화의 감동을 가슴에 새기기도 했다. 그 당시 극장 간판은 극장의 얼굴이었고 홍보의 전부였다. 1천만 관객이 현실이 된 지금, 요즘의 복합상영관에는 그 자리를 디지털 실사 사진들이 대신하고 있지만, 예전의 간판만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 여럿이 바쁘게 움직이던 작업장. 이젠 혼자서 작업하는 공간이 휑하게 보인다. |
영화산업의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속에서 아랑곳없이 30년간 극장 간판을 그려온 서울 신촌 그랜드극장의 이찬영(52) 미술부장.
“80년대가 극장 간판의 전성기였죠. 개봉일이면 영화 관계자들이 올라가는 간판을 보며 흥행이 잘 되길 빌고, 주연 배우들은 간판의 자기 얼굴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이젠 볼 수 없는 풍경이죠.”
극장 간판이 실사 사진으로 교체되면서 극장 미술가들 중 대부분은 수출 그림을 제작하는 서울 삼각지로 자리를 옮겼다. 1주일에 2~3편씩 극장 간판을 그리는 이 부장은 그림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없다고 한다.
빠르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실사 사진을 사용하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수작업한 간판과 비교가 되겠는가. 디지털이 효율성은 높을지라도 아날로그의 감성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 관객이 줄어드는 영화는 내려지고 다음 개봉작의 간판이 올라가고 있다(왼쪽). 흔히 페인트로 극장 간판을 그리는 줄 알지만, 사실은 선명한 인쇄용 오프셋 잉크를 사용한다. |
△ 데생을 하기 위해 원화를 베껴내고 있다(왼쪽). 수백번의 붓질을 거쳐 미세한 주름과 섬세한 표정을 그려낸다. |
△ 원화에서 베껴낸 그림을 환등기에 비춰 데생을 한다. |
△ 내려진 간판은 작업실 한쪽에 놓여 있다가 다음 영화로 덧칠해진다. |
사진 · 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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