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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 속에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던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는 이같은 문구가 등장했다. 사학법 개정안 상정에 반발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든 팻말에서다. 팻말의 문구는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이 당 소속 교육위원들과 상의한 뒤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덕'에 한나라당이 그간 여당의 개방형 이사제에 반대하며 '사학이 투명적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그와 함께 자율성도 보장해야 한다'고 내세웠던 논리는 자취를 감췄다. 그날 밤 박근혜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이념' 문제를 끄집어냈다. 여당의 사학법 개정안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면 '친 전교조 인사'들이 개방형 이사로 사학에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전교조의 친북·반미 이념이 학생들에게 주입된다는 연결고리다. 박 대표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사학법을 거부한 것은 목적과 의도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라며 "그들의 목적은 사학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친북·반미의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사학법 개정안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우리 체제를 뒤흔드는 법안"이라며 "지금부터 저와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학법 반대투쟁을 시작한다"고 '색깔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의원들, '대여투쟁'에는 동의해도 '색깔공세'엔 갸우뚱
이성권 의원은 "이렇게 가다간 또다시 '이념 공방'이 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 의원은 여당의 일방적인 사학법 개정안 강행 통과에 대한 비판은 별론으로 하자고 전제한 뒤 "'사학법 개정을 곧 '전교조의 사학 경영권 침해→친북·반미 이념 주입 강화'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접근이자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난 9일 본회의장에서의 팻말 문구를 보고도 다소 당황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전에는 당에서 사학법과 관련해 토론이 벌어질 때는 사학운영의 독자성이 보장돼야한다는 논리가 주가 됐는데, 이념문제가 튀어나온 것은 그 때가 처음인 것 같다"고 떠올렸다. 익명을 전제로 한 또다른 의원은 "당의 대응이 사학단체의 논리를 대변하는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지금 당에서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공학만 남았다"며 "여당이 단초를 제공하니 곧장 내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져 교육 문제가 또 이념 공방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더 나아가 개혁 성향의 고진화 의원은 "사학법 개정은 교육 혁신의 첫 걸음인데 이념문제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고 의원은 "사학법 개정을 전교조의 세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며 "이러다간 한나라당이 일부 부패사학이나 사학단체를 감싸고 도는 것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고 걱정했다. 또다시 꺼내든 '색깔 깃발'이 한나라당에 결코 유리한 전선을 구축해주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벌써부터 열린우리당은 기다렸다는 듯 박 대표의 색깔론을 공세적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받아치는 우리당 "전교조가 장악? 뜬금없고 근거없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당의장 겸 원내대표는 1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왜곡' '망언' '작태' 등의 표현을 써가며 박근혜 대표를 비난했다. 정 의장은 "사학법 개정을 이념 공세로 몰고 가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로, 이런 작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12일 열린우리당은 구체적인 반박 근거와 수치를 들이대며 한나라당의 주장에 반격을 가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유기홍 의원은 이날 오전 당 비상집행위원회의에서 사학법 개정으로 전교조가 사학을 장악하게 되리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 의원은 "전교조 소속 교사가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비율은 14% 뿐이고, 나머지는 한국교총 소속"이라며 "한나라당의 주장은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몰아부쳤다.
유 의원은 "지난 2년 동안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도 사학법 개정을 두고 '친북·반미' 얘기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며 "박 대표의 주장은 뜬금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도 이같은 반론에 힘을 보탰다. 김 부총리는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학교운영위의 경우 교사 출신이 30~40%이고 전체 교사 중 전교조 교사는 22%에 불과하기 때문에 4명을 추천할 경우 전교조 출신은 1명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한나라 '나홀로 투쟁'?... 민노 "개혁법안 처리하자" 여당에 '러브콜' 한나라당의 임시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이 결국엔 '나홀로 투쟁'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이 때를 기회삼아 "열린우리당이 원칙을 갖고 나가길 바란다, 민주노동당도 개혁과 민생으로 가는 길에는 적극 협력할 것"(심상정 의원단수석부대표)이라며 열린우리당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학법 처리에 대한 부당성 제기는 국회 운영에 참여하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의 '복귀'를 촉구했다. 김성희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의 반박 논리는 결국 위헌론과 색깔론 외에는 없는 것 아니냐"며 "마치 '위헌 노이로제' '색깔 노이로제'에 걸린 듯 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김 부대변인은 "부패 사학의 주장을 대변해 임시국회 일정까지 거부한다는 국민들의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한나라당은 새겨야 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구태정치로 민생법안의 처리를 가로막는다면 민주노동당으로서는 개혁법안 처리에 언제든 여당과 함께 할 수 있다, 결국 한나라당이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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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 직권상정을 놓고 아수라장이 된 지난 9일 오후 3시 국회 본회의장. "정부여당 사학법! 전교조에게 모든 것을 내주자는 것!"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이 항의 표시로 들고 있던 노란색, 빨간색 바탕의 손 팻말 글귀다. '전교조'를 끌어들여 사학법이 '사악법'이라는 뜻을 의장에게 강하게 호소하려던 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김원기 의장은 이 글귀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김 의장 눈에는 글귀도 없는 하얀색 빈 팻말만 어지럽게 흔들렸다. 왜 그랬을까. 손 팻말을 든 대부분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장을 보고 섰지만, 글귀가 적힌 팻말은 의장 반대쪽을 향하는 진풍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의장보다 카메라 기자에 대한 눈물겨운 서비스를 우선했기 때문이었을까? 방송을 통해 이를 지켜본 한 교사는 "어차피 '정치는 쇼'라는 말도 있지만,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의 눈물겨운 쇼맨십이 애처롭기까지 했다"면서 혀를 찼다. 김원기 의장은 팻말을 읽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통과된 사학법이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전교조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것'이었을까? 그래서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기게 된 것일까? 개정 사학법을 보면 이사 7명 가운데 1/4을 학교운영위원회(대학평의회)가 추천하도록 했다. 이사장이 전체를 임명하던 이사들 가운데 두 명을 학교운영위원회가 따로 추천하도록 한 것이다. 그나마도 2배수를 추천하면 이사장이 최종 낙점을 하면 되는 체제다. 그럼 학교운영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될까? 이 기구는 학부모와 지역인사가 60~70%, 교장과 교감, 교사로 구성된 교원위원이 30~40%정도를 차지한다. 교원 위원은 교장은 저절로 되고 나머지는 교직원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뽑고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는 이것 또한 해당되지 않는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보면 사립학교 교원위원은 전체 교직원회의에서 추천한 자중 학교장이 임명토록 했기 때문이다. 김행수 전교조 사립위원회 사무국장은 "사립학교 교원위원은 교직원들이 적게는 2배수를 추천하거나 많게는 4배수 추천을 하면 학교장이 임명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공립학교에 있는 전교조 조합원은 교사 네 명에 한 명꼴. 사립학교는 열 명에 한 명꼴 밖에 되지 않는다. 사립학교에서 전교조 조합원이 교원 위원으로 들어가기는 무척 버겁다는 얘기다. 설령 교원위원으로 한두 명 진출하더라도 전교조가 추천한 개방형 이사를 추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 그리고 비 전교조 교원위원들이 부결시키면 그만이다. 만에 하나 추천하더라도 이사장이 낙점하지 않으면 이마저 물거품이 된다. 전교조 조합원 추천인사가 이사로 될 확률을 수치로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1/4(개방형이사 비율)×1/2(학교운영위원 중 교원위원 비율)×1/2(교직원회의 교원위원 추천 비율)×1/2(학교운영위원회에서 개방형이사 2배수 추천 비율)×1/10(교사 가운데 전교조 조합원 비율)인 것이다. 이를 환산하면 겨우 0.3%(1/320)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쯤되면 전교조가 사학재단 접수는커녕 이사 한 명 되는 것도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오히려 교원단체이면서도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한 한국교총 소속 회원은 학교별로 전교조 회원보다 두세 배 가량은 많다. 교원위원 당연직인 교장은 거의 이 단체 회원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팻말에 적은 주장은 설득력이 그리 높지 않다. 만약 '정부여당 사학법! 한국교총에게 모든 것을 내주자는 것!'이라고 적었다면, 그래도 더 봐줄 만하다는 얘기다. 전교조 교원이 이사 되려면 산 넘어 산 넘어 산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인사를 추천하는 게 전교조가 학교를 접수하는 것이라면, 학교운영위원들이 뽑은 16개 시도교육감은 다 '전교조 앞잡이'여야 한다. 아울러 학교운영위원회가 사학 이사회 구실을 하는 국공립학교는 이미 전교조 세상이 되었어야 한다. 하버드·예일·프린스턴·와세다·게이오·버킹검대학 등 미국, 영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유수 사립대학 상당수가 동문 또는 교원, 학생도 이사를 뽑는 과정에 참여해 법인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도 모두 교원노조 세상이 된 것일까? 사정이 이런데도 한나라당과 사학재단이 자꾸 전교조를 끌어들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의 불만은 쟁점으로 떠오른 개방형 이사제보다는 속뜻이 다른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2년만 지나면 복귀할 수 있는 비리재단의 복귀 시한이 5년으로 늘었다. 개방형 감사제도가 함께 도입됐다. 감사 가운데 한 명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추천하도록 했다. 일부 이사장이 주변 인사를 감사로 임명하던 관행이 더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친인척 이사수를 1/4 이하로 막았고,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이 교장을 맡을 수 없도록 했다. 족벌체제를 완화시킨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회계의 투명성과 족벌 체제 완화 조치를 못마땅하게 여긴 속뜻이 '전교조 왕국화'라는 선동으로 치달은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지난 7일 조용기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은 사학·종교 관련 단체 기자회견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개방형이사제는 단 1명만 엉뚱한 사람이 이사회에 들어와도 이사회에서 논의되는 주요 사안들의 보안유지가 어렵게 되며, 건학이념의 유지 및 계승이 불가능하게 된다." 사립학교법을 반대하는 속내
경실련, 전교조, 학벌없는사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흥사단 등 44개 교육시민단체가 모인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9일 성명에서 다음처럼 주장했다. "색깔론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마타도어로 일관한 한나라당에 우리는 '한나라당에게 이 나라의 정치를 맡길 수 없다'는 말을 돌려주려 한다. 이번에 부패사학을 지키기 위하여 보여준 한나라당의 육탄방어를 보면서 왜 그들이 '부패사학 옹호당'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는지 확실하게 증명했다." 뒤집어 든 한나라당 의원들의 손 팻말 홍보전은 그래도 정치 쇼에 부응하려는 프로의식의 발로라고 좋게 봐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들었던 팻말의 내용이다. 팻말은 뒤집어 들더라도 국민이 보는 글귀의 내용만큼은 제대로 적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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