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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용철 소식 아세요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2. 1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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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 말고 다른 이도 살려야 합니다
[누리꾼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건희·전용철 소식 아세요?
텍스트만보기   이봉렬(solneum) 기자   
▲ 고 전용철 농민 사망사건 진상규명 촉구 촛불집회가 지난 11월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혹시 전용철씨를 아세요? 지난 11월 15일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머리를 다쳐 뇌수술을 받았으나 열흘을 채 못 견디고 숨진 충남의 한 농민입니다. 시위현장에서 쓰러져 실려 나가는 전용철씨의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 경찰은 전용철씨가 집 앞에서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다네요.

그 날 농민대회에서는 경찰이 휘두르는 방패에 참 많은 사람들이 다쳤답니다. 머리가 깨지고, 다리를 다치고 피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농민들의 탄식소리가 그 날 여의도 광장을 가득 채웠답니다. 전북에서 농사를 짓는 68세의 홍덕표 할아버지는 그 날 얼마나 험한 꼴을 당하셨는지 사지가 마비되어 지금도 병원에 누워 계신답니다.

모르셨다구요? 서울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했다는 소식은 들은 것 같은데, 성난 농민들이 수확한 벼를 태우고, 작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은 본 것 같은데, 경찰과 농민들 사이에 일상적인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딱 거기까지 같은데…. 내 삼촌 같은 분이 숨을 거두고, 내 아버지 같은 분이 사지가 마비되어 누워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본 것 같죠?

전용철씨를 모르고, 홍덕표 할아버지를 모르니 농민대회 참가 후 숨을 거두신 하신호(73·15일 사망) 할아버지, '쌀개방은 절대 안 된다', '농촌이 정말 어렵다'는 마지막 호소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오추옥(41·17일 사망)씨, 정용품(38·11일 사망)씨도 모르시겠군요?

전용철·하신호·오추옥·정용품... 이들을 아시나요?

▲ '고 전용철 농민 추모 및 쌀협상 국회비준 무효와 살인진압 규탄 전국농민대회'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님의 무관심을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언론에서 이야기를 해줘야 알지요. 텔레비전이, 신문이, 어디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가요? 기껏해야 서울에서 농민들의 시위가 벌어져서 교통이 많이 막힌다는 소식이나 전해 주지 않던가요?

그럼 혹시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서는 들어 보셨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그 법의 처리를 두고 민주노총이 왜 파업까지 해가며 막으려 드는지 아세요? 별로 궁금하지 않다구요? 대신 총파업이나 못하게 해서 경제나 좀 살렸으면 좋겠다구요?

잠깐만 생각해 볼까요? 지난 8월 기준으로 전제 임금근로자 중 63.4%만 정규직이랍니다. 나머지 37.6%는 비정규직이지요. 열 명 중 서너 명은 좋으나 싫으나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네요. 님이 여성이라면 문제가 좀 더 심각합니다. 여성 취업자 중 70%가 비정규직이랍니다.

비정규직이라도 취업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구요?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임금을 70.5% 밖에 못 받는답니다. 국민연금 가입율도 정규직의 절반(36.6%)밖에 안 되구요, 건강보험(37.7%), 고용보험(34.5%)도 마찬가지랍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나가야 하는 것도 다 비정규직 근로자이지요. 이래도 시켜주기만 하면 하실 건가요?

화제를 좀 바꿔 볼까요? 이건희 회장을 아세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벌 그룹의 회장이자, IOC 위원이고, 고려대학교 명예 철학박사인 이건희 회장은 잘 아시죠? 이 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이자, 시사저널이 조사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이건희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으니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 삼성의 주요 공장, 사업장을 돌며 삼성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자는 차원에서 조직된 삼성공장순례투쟁단이 지난 10월 24일 오전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출발하기 앞서 이건희 회장을 풍자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럼 이건희 회장이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를 통해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삼성 무노조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아세요? 주식증여를 통한 변칙상속으로 30대의 젊은 아들 이재용씨에게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넘긴 사실은요? 불법 대선 자금 제공 혐의로 이미 한 차례 재판을 받았고, 지난 대선 때에도 대선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요?

지금 이건희 회장이 어디 있는 지 아실 겁니다. 홍석현 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의 대화를 도청한 이른바 'X-파일'이 공개되자 '폐암 정밀진단'을 이유로 지난 9월 4일 미국으로 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지요. 벌써 세 달이 지났네요.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은 X-파일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있고, 언론들도 더 이상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기사를 쓰지 않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전용철씨도, 비정규직 문제도, 이건희 회장도 다 사라졌고, 대신 황우석 교수가 연일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황우석 교수의 연구 활동에 응원을 보내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황우석 교수 건으로 인해 묻혀지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고 하는 말이냐구요? 저도 알죠.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라 불치병을 치료 받을 희망을 갖게 될 수많은 장애인들을 생각하면 제게 없는 난자라도 갖다 드리고 싶을 정도랍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님은 절대로 농사지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님의 가족 중에는 농사를 짓는 분들이 단 한 분도 없나요? 불치병에 걸린 장애인 뿐만 아니라 농촌 문제도 곧 나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님은 사회에 진출할 때 36.7%의 확률을 피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하나요? 비정규직 문제가 과연 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이기만 할까요? 이 나라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는 대기업 총수가 불법을 저지르든 말든 그 회사에 취업만 할 수 있다면 마냥 좋기만 한 걸까요?

여러분도 36.7%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있습니다

▲ 지난 1일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에 돌입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맞아요. 이건 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농민이 죽어가고 있다고 해도 막히는 교통상황이 걱정되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려도 이 나라 경제가 걱정되는 이 우스운 상황을 두고 님만 탓할 수는 없죠. 재벌 총수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해서 벌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님이 원래부터 하고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명백한 사실을 제 입맛에 따라 비틀어 놓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 않는 언론이 문제지요. '국익'이라는 새로운 부적 앞에서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게 다 언론이 지속적으로 읊어 댄 주문 때문이라구요. 거기에 님도 분별없이 휘둘린 면도 없진 않지만 님을 탓할 생각은 없어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생각해 보세요. 신문 전체를 황우석 교수 이야기로 도배를 하고 있으면 누가 좋아할까요? 텔레비전 뉴스에서 노동자, 농민, 이건희가 사라지는 게 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제껏 소외 받은 자의 삶을 기록해 왔던 < PD수첩 >이 사라지면 누가 손해를 보게 될까요?

< PD수첩 >의 공격으로부터 황우석 교수를 구해 낸 님의 활약 눈부셨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황우석 교수도 오늘 퇴원해서 연구실로 돌아갔다고 하니, 이제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 다른 분들도 살려야죠. 기성언론들이 눈 감았다고 해서 님도 함께 눈을 감아서야 되겠습니까?

억울하게 죽은 전용철씨도 살리고, 벼랑으로 내 몰리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살려야죠. 잘못이 크긴 하지만, 그동안 해온 일들을 생각한다면 < PD 수첩 >도 살려야 할 겁니다. 무엇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할 수 있도록 이 땅에 정의를 되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는 더이상 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익명에 기대어 즉흥적이고 무책임하게 도발만 일삼는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전 님을 믿어요. 이제껏 님이 이루어 낸 역사들이 많잖아요.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를 온 국민의 가슴에 되살려 낸 게 바로 님이었잖아요. 세상이 외면하고, 언론이 외면하는 곳에서 진리와 정의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님이 아니면 누가 해 주겠어요?

그렇죠? 누리꾼님!
2005-12-12 14:42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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