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관 시인 '시민문화예술인장'으로 치른다 ![]() | ||||||||||||||||||||||||||||||||||||
이선관 시인 별세...마산의료원 조문 행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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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우 기자 jwkang@dominilbo.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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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보(14일 저녁 10시30분)=이선관 시인의 장례가 지역의 문화 예술인,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시민문화예술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14일 오후 8시부터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마산의료원 장례식장에 모인 마산의 문화 예술인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이 같은 뜻을 정했다. 공동장례위원장에는 경남도민일보 허정도 사장, 마산문화방송 박진해 사장, 경남예총 이상용 회장, 경남민예총 고승하 회장, 마산문협 김복근 회장이 맡기로 했으며,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경남문화진흥원의 윤치원 부원장이 맡는다. 장례위원회는 고인의 뜻대로 화장을 하고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기로 했으며 향후 구체적인 장례일정은 논의를 거쳐 정하기로 했다.
마산의료원측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께 간경화로 인한 위장 출혈이 심해졌고 이 피가 기도로 넘어가면서 마비 정상이 왔으며 오전 7시 5분부터 한시간이 넘도록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의식을 차리지 못했으며 끝내 사망했다고 전했다. 장례는 기독교 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발인은 16일 오전, 장지는 마산 인곡 공원묘지에서 화장 한 후 납골당에 안치할 예정이다. 처남인 홍원표씨는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유언도 받지 못했다” 며 “기독교 식으로 장례를 치룰 것”이라고 밝혔다. /강진우 기자 속보(14일 오전 9시40분)=‘마산의 문화재’ 이선관시인이 14일 오전 8시 4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4세. 빈소는 마산의료원 3분향실. (055)249-1463. |
시인 이선관의 삶과 죽음 | ||||||||||||||||||||||||||||||||||||||||||
급히 고쳐 쓴 이성모 교수의 애도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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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필진 webmaster@idomin.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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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관 시인이 영면하셨다. 지난 13일 '이선관 시인의 쾌유를 기원하며'라는 글을 경남도민일보 ‘열린아침 곧은소리’란에 싣기 위해 보냈는데, 오늘 고쳐 쓴다. 하루 밤 모진 겨울바람에 시인은 파리한 꽃잎 같은 눈시울을 기어이 접어버리고 말았다.
“빛이 / 어둠을 사르는 / 새벽이었다. // 문틈에선가 / 창틈에선가 / 벽틈에선가 / 나의 침실 깊숙이 파고드는 // 동포여 ! / 하는 소리에 매력을 느끼다가 /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들어보니 // 똥퍼여 ? / 라는 소리라 / 나는 두 번째 깊은 잠에 취해버렸다. ” (<애국자>) 똥 같은 사이비 애국자가 판을 치는 조국의 현실에서 스스로 사이비를 고집했던 시인이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같은 동포일 터이지만 속은 다르다는 것. 다르다는 그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은 실로 다양하다. 이를테면 ‘삼류시인’(<삼류시인>), ‘넝마주의’(<넝마주의>), ‘보통시민’(<보통시민>), ‘거지’(<거지론>), ‘바보’(<바보>), ‘창동 허새비’(<마산, 그 창동의 허새비>)등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백일해 치료를 위해 먹은 한약이 잘못 되어 그는 “소생할 가망이 없다가 / 다시 깨어난 저는 / 자라면서부터 / 목을 잘 가누지 못했고 / 말을 잘 하지 못했고 / 걸음을 잘 걷지 못했지요.”(<어머니∙3>)가 되었다. 그의 첫 시집 <기형의 노래>는 인간의 본꼴과 생김새가 비정상적으로 된 자신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구조와 나아가야 할 길이 비틀리고 그릇된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며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을 전하고 악을 징계하는 사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寄淵兒(기연아)>)라는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인용하면서 “그러한 생각으로 나는 글을 써왔습니다”(<창동허새비의 꿈>책머리에)라고 하였다. 시집 <인간선언>과 <보통시민>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어둠과 소시민의 양심과 애환을 노래하였고, 시 <독수대>를 시작으로 하여 수많은 환경생태시를 써왔고, 시 <지금 마산은>을 비롯하여 민주화의 성지 마산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이야기해왔을 뿐 아니라, 시정의 부조리한 일에서부터 역행하는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마이클 잭슨에서부터 부박한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질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시대와 역사에 조우한 민족 현실과 모든 정황에 아파했던 그가 이제 더 이상의 아픔이 없는 세계로 떠났다. 그의 시에 대한 평가는 제쳐두고, 많은 이들이 시인으로서 그를 보는 시선은 그 자신이 말했듯이 “술도 많이 마시고 가난하고 데카당한 이 시대에서 낙후된 존재”였다. 그때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고독하다. 우리는 가난하다. 우리는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무엇이 있는가 보고 다시금 올라와야 한다.” (이선관, <시인의 평가절하>) 그런 그가 다시금 올라오기에 힘겨워 하다가, 결국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문득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누트 함순의 첫 소설 <굶기> 여기저기에 있는 핵심 구절이 떠오른다. “한 젊은 남자가 어느 도시에 들어선다. 그에게는 이름도, 집도, 직업도 없다. 그는 그 도시에 글을 쓰러 온 것이다. 그는 글을 쓴다. 아니 좀더 정확히, 그는 쓰지 않는다. 그는 굶어 죽을 지경이다. 굶주림의 미로, 그는 거의 미쳐간다. 그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도 그는 쓴다. 이따금씩 그는 용케 글을 팔아 궁핍으로부터 일시적인 집행 유예를 받는다.” 이제 그에게 집행유예를 언도할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없다. “살아있되,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살았던” 삶의 치열성이 문학적 위대함으로 승화된 그의 문학이 고호의 노오란 해바라기 그림의 종이꽃처럼 언제까지라도 우리에게 스며들기를 바란다. 재세(在世) 이성모 묵도(默禱). /이성모(문학평론가∙마산대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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