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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를 진보라고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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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2. 1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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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를 진보라고 할 수 있나요?"
[인터뷰] '민간 싱크탱크' 사회적 창안운동 나선 박원순 변호사
텍스트만보기   장윤선(sunnijang) 기자   
▲ 박원순 변호사는 이 시대의 진보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묻고는 제대로 역할을 다 했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물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진보진영이 걱정이다. 이미 시대는 진보의 시대인데 컨텐츠의 위기를 겪고 있다. 언제까지 명분만 외칠 것인가. 진보의 비전과 컨텐츠가 이미 다 수용돼 살기 좋은 사회가 됐는가? 진보의 역할이 있음에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박원순(51) 변호사가 진보진영에 깊은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미 하드웨어는 진보의 세상이 됐지만, 내용상으로도 그러냐고 묻고 있다. 좀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진보진영이 최근 정체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내적 비판이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동원빌딩 4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박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이미 간이용 침대까지 들여놓고, 작심하고 일을 벌일 태세를 이미 끝냈다. 나눔과 공익을 넘는 차원에서 '민간 싱크탱크' 만들기에 돌입한 것이다.

"아이쿠, 이게 마지막이에요."

그는 늘 시작을 마지막에서 출발했다. 참여연대를 시작할 때도 이게 끝이라고 했고, 공익펀드 '아름다운 재단'과 재활용 가게 '아름다운 가게'의 문을 열 때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더는 새로운 게 없을 거라고 공언했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 '움직이는 아이디어 뱅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뭔가 쉼없이 추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공안정권 핵심이었던 사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춘흥에 못 이겨 시를 읊듯, 또 그렇게 된 거지요."

그가 새로운 일에 몰입하게 된 이유를 아주 싱겁게 읊조렸다. 한국사회를 주름잡을 정책전문집단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한바탕 파란을 일으키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겉으로는 별 것 아닌 체 한다. 춘흥에 못 이겼다니, 그건 진심이 아닐 것이다.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됐다고 사람들은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았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정책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진보라고 할 수 있나요? 지금은 한나라당이 잡으나, 열린우리당이 잡으나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정책과 비전이 없는데 무슨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습니까?"

그는 이미 오래된 고민도 털어놓았다. 197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하다 제적당했던 그는 "'당장 독재를 무너뜨려야 하는데, 무슨 정책?'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먹고살아야지, 무슨 정책?' 이렇게 하다보니 긴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볼 겨를이 없었다"며 "사회적 양극화로 갈등이 치닫는 지금 우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정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에 배속된 연구소에 한해 몇십억 원의 국고를 지원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정책을 국민들이 알기나 하느냐는 박 변호사는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아이디어와 지혜를 모아 새로운 정책적 비전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나섰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이 김기춘씨예요. 과거 공안정권의 핵심이었던 그에게 우리가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 박원순 변호사는 시민의 삶 속에 정책적 비전이 있다고 믿고 있다. 인권변호사 활동 이후 참여연대를 통한 참여민주주의 시민운동, 나눔과 공익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활동에 이어 그는 세번째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민간 싱크탱크가 그것이다. 그의 등 뒤에 보이는 간이침대가 '싱크탱크'운동에 돌입한 그의 마음가짐을 우회적으로 웅변하는 듯하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정책이 없는데 무슨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습니까?"

그는 자문자답하고 있었다. 그나마 정당에는 연구소라도 있어서 빛좋은 개살구일지언정 정책을 생산하고 하지만, 기초자치단체에는 아예 그런 것도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예산이 1년에 150억 원이지만 얼마나 정책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서울시민들이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피땀흘린 예산을 그런 식으로 써서는 안 되지요. 이제는 정말 100∼200년을 내다보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연구를 해야 합니다. 시민사회도 컨텐츠의 위기예요. 언론도 컨텐츠가 부족해요. 21세기에 언론이 불우이웃돕기 캠페인 수준의 컨텐츠만 갖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새로운 정책적 어젠다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실질적 차원의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추상적 담론논쟁이나 좌우갈등을 조장하는 이념논쟁은 그만 집어치우라고 그는 호되게 야단쳤다. 언론이 언제까지 끼여들어 싸움만 부채질할 것이냐는 문제제기였다. 정책을 갖고가면 보수든 진보든, 여든 야든, 싸울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2의 실학운동이 필요하다고 봐요. 민생에 주목하고 선진문명을 한국사회에 접목시켰듯 우리도 지금 지구촌 사회의 실증적 제도나 문물을 제대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학자나 이론가들의 머릿속에는 없는, 일반 사람들의 삶 속에 담긴 지혜를 발굴해 정책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게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터넷에 대해서도 짧게 지적했다.

"인터넷을 켜면 지식이 아니라 쓰레기만 나옵니다. 처절한 고민 속에서 비롯된 컨텐츠가 정말 부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본에 저널리스트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평생 한 분야만 연구해서 글쓰고 강연하면서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우리도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indy researcher's club' 같은 것도 만들 생각이에요. 사회창안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10위권에 드는 잘 사는 나라가 됐지만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내적으로 풍성한 정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박 변호사의 지론이다. 지금까지는 타국을 모방하면서 버틸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모방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사회발전을 위한 새로운 사회창안운동이 없다면 우리도 슬슬 국제사회에서 도태될 지 모른다는 위기를 느낀다고 전했다.

"아래로부터의 정책적 아젠다, 가능하다"

▲ 박원순 변호사는 한번 일에 빠지면 중독된다. 점심도 도시락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그는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를 통해 지역 차원의 정책을 개발하고, 그 다음 국가적 차원의 비전과 정책개발, 대안 정책개발 등 3단계로 나눠 정책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상임연구원 15명을 채용하고, 그 외 여러 분야 연구를 위한 객원연구원 제도도 도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국 NGO들과 지식집단 파트너십도 맺을 계획이다.

"교수들만 연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만 공부하는 것도 아니지요. 사회적 연구분위기가 진작돼야 합니다. 오히려 학자들은 삶의 현장을 떠나있기 때문에 공허한 소리를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은 생생한 정책적 대안을 낼 수 있습니다. 현장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하지요."

그는 시민의 열정을 공공적 이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을 통해 죽어있는 기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사회발전을 위한 고민을 갖고 있지만 통로가 없어서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정책적 아젠다'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모범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정되면 그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도 하겠다고 나섰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세제 ▲실업 ▲통일 이후 정책비전 등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연구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내 나이 쉰하나인데 내 친구들 거의 놀아요. 장관, 차관 지내고도 노는 사람들 많아요. 요즘 산우회가 제일 잘 돼요. 이건 정말 문제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지요. 기업과 국가에서 일정한 역할을 마쳤더라도 아직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나이에 산이나 돌아다녀서 되겠냐고요. 이들에게도 객원연구원이라는 자리를 주고 사회발전을 위한 연구에 나서도록 독려할 계획입니다."

"군축, 예산, 평양, 세계도시 도서관, 그리고 또..."

박 변호사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이번 일은 '생물'이라고 했다. 조직적으로 사회발전을 고민할 수 있는 단위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사건' 아니냐며 향후 브루킹스연구소나 해리티지재단, 삼성경제연구소 정도의 하드웨어에 훨씬 외연을 넓힌 수준의 '민간 싱크탱크'를 만들겠다고 했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즈음,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쉴 새 없이 진동하는 그의 핸드폰만큼 그의 아이디어도 중단없이 쏟아졌다.

"군축문제도 관심 있어요. 한반도에 60만 대군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요. 절반으로 줄이고도 강병해질 대안이 있습니다. 또 쓸모없는 예산에도 관심이 많아요. 예산을 적절한 곳에 써야지 엉뚱한 데 쓰면 안 되겠죠. 통일 이후나 통일 이전 남북관계 속에서 개성이나 평양에 대한 연구도 필요해요. 남쪽처럼 무분별한 난개발이 판치게 할 수 없잖아요. 사회주의적 친환경생태도시로 만들기 위한 대안, 그런 것도 필요하겠죠? 또 세계도시 도서관, 인명사전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생각이에요. 또 …."
2005-12-12 18:34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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