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씨암탉 맛이 묵직한 이유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3. 20:37

본문

728x90
씨암탉 맛이 묵직한 이유
[맛있는 추억] 밥상에 오른 처갓집 마당 풍경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은식(punctum) 기자   
오랜만에 처갓집엘 다녀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직장 일에 몸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돌볼 짬이 없어 데려다 놓은 지 삼주 만이었다. 아내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고, 나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퇴근을 하는 대로 차를 몰았다. 퇴근길을 헤치고 고속도로를 달려 가는 충남 서천까지는 짧지 않은 길이었다. 오늘 안으로나 간신히 떨어질 거라고 알렸고, 아내는 자지 않고 기다리마고 했다. 염치없는 걸음에 빈손으로 들어설 자신이 없어 길에서 피자 한 판과 훈제 닭 한 마리를 샀다. 좋아하실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그저 평소에 못 보던 맛이나 보시라는 뜻이었다.

서울길에 비하면 평일 밤의 고속도로는 참 시원했다. 충분치 못한 잠에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괜히 급한 마음에 가끔씩 과속을 하다가 어두운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카메라에 당황하기도 하면서 내달린 길은 생각보다 빨리 그 끝을 내보이고 있었다. 길 끝나기 전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한 것은 열한 시 무렵이었다.

삼사십 분만 더 가면 도착하겠거니 하면서 거른 끼니에 공복감이 확 끼쳐왔고, 그냥 들어가면 배 꼬르륵거리며 억지 잠을 자거나, 민망한 장모님 밥상 받을 일 생기겠다 싶었다. 나는 휴게소에 들어가서 이제 장사를 걷으려는 호두과자와 우유 한 병을 집어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배는 채워야겠고, 길은 바빴다. 아마도 장인 장모님은 선잠에 들고 나며, 또 아내는 졸음을 쫒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되도록 빨리 도착해서 편한 잠을 주무시게 해야 했다.

다시 삼십 분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조등 불빛도 줄여가며 처갓집에 들어섰을 때, 처갓집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제일 먼저 장모님이 마당으로 내려섰다.

“저 왔습니다. 주무시지 않구요.”
“응, 그려, 고생은 안했는가?”
“예, 평일이라 길은 좋군요.”

아내가 장모님 어깨 넘어 고개를 내밀었고, 낮에 동네 젊은이들이 강권한 약주 몇 잔에 일찍 누우셨던 장인도 방문을 넘어서는 바람결에 깨어 앉으셨다. 절을 올리고 마주 앉았다. 반갑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자리였다.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해온 것이 아니었던가. 들고 온 보따리를 풀었다.
“이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는데요, 피자하고 닭입니다.”

“으응? 닭?”
장모님이 눈을 크게 뜨셨다.
“아이고, 여그도 닭을 한 마리 끓여 놨는데….”

장모님은 내가 사들고 간 것을 헤집어 보고는, 식기 전에 먹어야 맛이 있겠다며 먼저 먹자고 하셨다. 꺼내서 접시에 늘어놓으니 닭고기는 제법 먹음직했다. 숯불에 잘 그을린 노릇노릇한 살에다가 냄새도 그럴 듯 했다.

아내가 한 입 거들었고, 장인어른도 썩 내키지는 않는대로 다리 하나를 잡으셨다. 피자는 별로 인기가 없었지만, 그런대로 훈제 닭 밤참은 성공적이었다. 아무래도 제일 배가 고팠던 것은 나였기에 사들고 간 손으로 다시 절반 넘게 먹어치운 것도 나이긴 했다. 어쨌건 그렇게 한 마리를 대충 치우고는 피로와 긴장과 시장기가 뜨끈한 아랫목에서 한꺼번에 녹아내리며 나는 곧장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다음 아침, 나는 늦잠을 자고 말았다. 한 상에 식사는 해야겠는데, 곤히 자는 사위 깨우기도 미안했던 두 어른이 시장기를 참으며 해가 중천에 뜨도록 기다렸고, 시골 밥시간으로 한참 늦은 아홉 시나 되어 밥상을 받았다. 바다 근방이라 생선만 해도 두세 가지에 나물 서너 가지, 국에 지짐으로, 정성이 넘치는 밥상을 뚝딱 해치우고는 귀경길을 재촉했다.

처갓집을 나설 때마다 하나라도 더 실어 보내려는 장모님과, 가져가 봐야 다 먹지도 못한다며 손사래 치는 우리 내외의 실랑이를 한참은 겪어야 한다. 그렇게 찹쌀과 들기름과 겉절이, 이런저런 야채들로 트렁크와 뒷자리를 그득그득 채우고서야 그 날도 실랑이는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장모님 분대로 실어 담자면 화물차를 몰고 와도 남는 공간이 없을지 모른다.

이제 나서려는 순간에 장모님이 잠시 잊었다는 듯이 부엌으로 뛰어들어가시더니, 조그만 냄비 하나를 들고 나와 내밀었다. 어제 끓이셨다던 닭이었다.
“이거, 자네 먹으라고 끓였는데, 어제 닭을 먹었으니 그냥 가져 가서 저녁에나 먹어.”
“그냥 두고 드시지요.”
“아니여, 자네 먹으라고 끓였는디….”

냄비에 담고, 다시 비닐로 엮은 닭 한 마리를 안고 길을 나섰다. 그득한 속으로 나선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배가 출출해질 시간을 지나며 차 안에 돌던 구수한 닭냄새가 코에 와 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는 대로 그것을 데워 밥상에 올려놓았다.

처음으로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본 닭. 혹시 오리가 아닐까 싶게, 치킨 집에서 파는 놈들 배는 됨직한 커다란 놈이 들어앉아 있었다. 게다가 뒤집어서 배를 들여다보니, 알집에 올망졸망 맺혀있는 달걀들. 다름 아니라 이 놈은 바로 마당에서 벌레를 쪼며 돌아다니다가 장인어른 몸보신용 알을 낳아주던 ‘씨암탉’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사위 오는 날 잡아 주는 것이 씨암탉이라지만, 여봐란 듯이 사지를 펼치고 ‘내가 바로 그 씨암탉이다’ 하고 버티고 있는 찜닭. 아, 그건 정말 간단치 않은 광경이었다.

애초에 만 원짜리 한 장 이상의 무게로 느껴본 적이 없는 닭 한 마리였다. 그런데 도대체 장모님은 어쩌자고 익숙해진 마당 풍경의 한 조각이며, 새벽소리의 한 구석, 또 오랜 간식거리의 하나를 뚝 떼어 내 밥상에 올려버린 것인가 말이다. 그제서야 아내가 있는동안 댓 번도 더 했다는 장모님 말씀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김서방은 다 좋은데, 많이 좀 먹었으면 좋겄어.”

혹 볼 때마다 가늘어지는 부실한 사위가 까닭 없이 눈에 밟히는 막내딸 걱정 덜기에는 모자랐는지, 그래서 부실한 몸으로 내려와 삼주일씩이나 신세를 지다 올라가는 딸 뒷걸음에 눌러 던져두고 싶은 뒷바라지였는지.

마당을 얼마나 돌아다녔던지, 그저 고깃감으로 길러진 닭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단단한 씨암탉의 다리근육을 곱씹으며 이 놈을 길거리 닭집 만 원짜리 훈제치킨과 같은 무게로 비교했던 내 경박한 마음 씀씀이와, 반대로 간단치 않은 장모님의 마음을 새긴다.

사위사랑 절반은 딸 걱정일 터라, 보답도 어느 만큼은 아내 사랑이겠지만, 그러고도 남는 마음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닭 맛이 묵직했다.
"솔직해지기 위해서, 모른 체 눈감고 살기를 좋아하는 제 머리와 싸운 흔적을 글로 남기고 있으며, 그렇게 쓴 글은 개인홈페이지 '솔직해지기 위한 투쟁'(www.kes.pe.kr)에 모으고 있습니다. 2002년 5월부터 11월까지 '맛있는 추억'을 연재해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에 선정되었으며, 그 글은 동명의 산문집으로 엮여지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추억", 자인刊)"

2004/03/03 오전 10:25
ⓒ 2004 Ohmynews

'요리조리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아이들과 요리실습합니다  (0) 2004.03.06
[맛]제철에 먹는 다양한 생선요리  (0) 2004.03.03
맛난 부침개를 만드는 열가지 방법  (0) 2004.02.28
맛내기 열 가지  (0) 2004.02.28
야채 손질하기  (0) 2004.02.2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