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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맛 봄나물 향기 씹는 봄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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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맛 봄나물 향기 씹는 봄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52]된장, 고추장으로 둘둘 비벼 만든 봄 맛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규환(kgh17) 기자   
▲ 쑥국 달래장 취나물 두릅 한상
ⓒ2004 김규환
엄마 손엔 마력이 붙었던 걸까. 마늘 몇 쪽 넣고 재료에 따라 주섬주섬 간장, 고추장, 된장 대충 풀고 주물럭주물럭 조물조물 애처롭고 투박한 손에 양념을 묻혀가며 둘둘 무치면 모든 나물이 반찬이 되어 뚝딱 상에 차려졌다.

과하여 풋내 나지도 않고 덜하여 밋밋하지도 않다. 푸성귀와 남새, 나물 고유 맛을 살릴 대로 살린다. 너무 쓰다 싶으면 된장 조금, 고추장 더 하면 된다. 질겨서 뻣뻣하면 식초 한 방울 떨어뜨려 보드랍게 한다. 참깨 꼬습게 씹히고 참기름 입안 맴돌아 네모난 젓가락 자꾸 움직이게 했다.

골똘히 쳐다보던 소년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가 무치던 손으로 한 움큼 입에 넣어 주면 상큼한 반찬을 매운 줄도 모르고, 잘도 받아먹었다. 한 두번 더 먹어보고 뒤로 물러섰다가 밥을 기다리는 모양은 마치 제비 새끼 입을 쫙쫙 벌려 지지배배 지저귀며 어미 재촉하는 거나 뭐가 달랐던가.

▲ 된장 으깨고 고추장 조금 섞어서 둘둘 버무리면 간단히 끝나는 돌나물무침
ⓒ2004 김규환
잔인한 봄이다. 삼사월 식탁이 왜 잔인한고 하니 그건 묵은 반찬에 대한 식상함과 새봄나물에 대한 간절함이 교차하는 시기임을 몸이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가고 모든 새로운 싹들만 남은 향긋한 봄이다. 그 안에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우린 비타민, 새 풀 달라며 나른함 한꺼번에 몰아낼 즐거운 혀끝의 애달픈 독촉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자 그 향연에 기꺼이 내 몸을 맡기고자 함이다.

대바구니 하나 들고 산으로 들로 어머니 만나러 떠나볼까. 채반도 좋으리라. 그 들녘엔 나물 캐던 누이마저 없지만 아내를 졸라, 아이들 손잡고 달려가고 싶다. 다시 30년을 풀쩍 뛰어넘어 엄마 손맛 찾아 떠나는 맛 여행은 늘 즐겁기만 하다.

"아빠 이 거 뭐야?"
"응 나물이야, 봄이니까 다시 살아서 나오는 거야. 이거 캐다가 아빠가 맛있게 무쳐 줄게."
"아빠!"
"돌부리에 넘어졌구나. 조심히 다녀야지."
"여보 뭘 캐야 돼요?"
"아무 거나 캐면 됩니다."

▲ 나물캐러 아장아장 들로 나가고 싶다
ⓒ2004 김규환
언덕 올라 밭에 머물고 오솔길 따라 골짜기에 접어들어도 죄다 먹을 것뿐이다. 새싹이라고 나는 모든 풀과 나뭇잎-진달래, 민들레, 다래, 달래, 돌나물, 냉이, 부추, 두릅, 개두릅, 머위, 원추리, 참취, 곰취, 수리취, 벌개미취, 쑥부쟁이, 씀바귀, 고들빼기, 잔대, 더덕과 도라지, 쑥뿐이던가. 냇가로 가면 돌미나리 즐비하다. 봄동에서부터 부추, 파, 상추, 풋마늘이 움츠렸던 몸 일깨우는 나물이요, 바닥 기는 실 같은 작은 풀도 나물이다.

▲ 냉이를 살짝 데쳐서 된장 고추장 섞고 무 채 썰어서 손으로 "주물주물" 냉이무침
ⓒ2004 김규환
겨우내 된바람 빙설이기고 생명을 보존한 파릇파릇한 '봄동'으로 간신히 봄을 맞이하였다면 이젠 염려할 일이 못된다. '솔'이라 했던 부추에 어머니는 미리 재를 뿌려 잘 자라게 다독여 놓고 곡우(穀雨) 한번 맞히고 땅기운을 가득 품게 하여 <부추전>을 만들어내셨다. 아버지는 옆에서 막걸리 한잔 꼴깍꼴깍 들이키셨다.

달콤한 뿌리와 향기 가득한 잎 모두 먹는 냉이로는 무 구덩이 파헤쳐 몇 개 안 남은 무 착착 엇비슷하게 쳐서 '냉이된장국' 푸짐하게 끓이시고 반쪽 남은 걸로 채 썰어 '냉이생채'로 입 안에 향이 가득 돌게 하셨다.

▲ 풋마늘의 그 매콤함
ⓒ2004 김규환
이제 된장과 고추장의 향연이 펼쳐진다. 된장 으깨고, 고추장 절반 섞어 땅바닥 주름잡은 돌나물 줄기 째 쭉쭉 뜯어 와서는 나물 반 양념 반 '돌나물무침' 보드랍게 해주시고, 하도 써서 정신 바짝 들게 하는 볼그족족하고 푸르뎅뎅한 머위를 뿌리 밑까지 뜯어 '머위무침' 올리시니 아지랑이마저 손짓한다.

꽃 대궐 이 화려한 철에 들녘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렀다. 시간 날 때마다 보리밭 몇 바퀴 돌고 오라시던 어른들 말씀 따라 걸었더니 뒷다리 부어오른다. 보리 몇 줌 캐다가 '보릿국'으로 봄을 방 안에까지 모셔왔다.

▲ 머위는 살짝 데치거나 그냥 생으로 해도 쌉싸래한 맛이 끝내줍니다. 졸음까지 달아나도록 기분이 좋아지죠. 뿌리가 불그스름한 걸 고르세요.
ⓒ2004 김규환
소쩍새 '솥쩍다'고 울어 예 피를 토하면 쑥 천지인데 새기 전 야들야들한 걸 검부저기와 함께 캐다가 된장 풀어 '쑥국' 끓이고, '쑥범벅' 갖고 놀고, 봄나들이 다가오면 시퍼렇게 쑥물 들여 팥 소 넣고 '반달떡' 만들어 막내아들 손잡고 비가오던 화창하던 간에 소풍을 함께 떠나셨다.

양지바른 밭에선 땅 속에 숨어 있다가 서릿발 이겨내 쏙쏙쏙 퇴비 비집고 마늘 싹 기어 나오면 한 줌만 쪽쪽 뽑아다가 고추장만 넣고 빙초산 한 방울 떨어뜨려 둘둘둘 비벼서 무쳐 놓으면 알알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에 흠뻑 빠져 몰골이 가관이다. 세상에 간편한 음식이 '풋마늘무침'이다.

▲ 달래장은 가지런히 씻어 잘록하게 썰고 조선간장과 양조간장을 조금 섞고 참기름에 참깨 넣고 고춧가루 조금 풀면 됩니다. 단맛을 좋아하면 설탕 반 숟가락만 넣어 주세요.
ⓒ2004 김규환
달래는 웬만해서는 찾기 힘들다. 언덕배기 돌무지 옹색한 곳을 찾아 눈 씻고 파랑 실타래 군데군데 풀려 있다. 시리도록 한동안 쳐다보면 무리 지어 있는 곳만 있는 게 달룽개 또는 달래다. 실파 굵기 1할도 못되니 거미줄에 가깝다.

무지개 빛 도는 줄기도 좋지만 뿌리까지 다치지 않게 캐려면 온갖 공력이 다 들어가는데 돌 하나 꺼내 밀치고, 두 개 들어내 바늘같이 가녀린 허리 거쳐 더 파들어가면 동글동글한 작은 뿌리 뒤엉켜 있거나 달랑 하나 숨어 있다.

이삼십 뿌리 캐도 한 손에 차지 않지만 풋풋한 향내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와 물에 담갔다가 쫑쫑쫑 썰어 종지에 넣고 간장 붓고 고추장 풀어 휘젓고 깨소금 반 숟갈에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리면 '달래장'이 된다. 반찬 없어도 한 술 떠서 밥 세 번에 나눠 비벼 먹으면 온 세상 다 준대도 바꾸지 않았다.

▲ 홍고추를 얇게 썰어 색감이 살아난 취나물
ⓒ2004 김규환
바야흐로 봄이다. 허름한 시골집이었기로 집 주변에 지천이 봄나물이었다. 득득 긁어 상추씨 듬뿍 뿌리고 낙엽으로 보온해주면 이왕 오는 잠 푹 더 자라는 건지 쌉싸름한 <상추겉절이> 대령이다.

머릿속 피마저 돌게 하는 '파김치' 매콤하게 담가 길게 늘여 야금야금 씹어 먹고 사이다 조금 섞어 시큼한 초고추장에 봄 향기 가득 담아 두릅 순 몇 개 따다 '땅두릅', '두릅나물' 베어 물면 지난 겨울 세상 시름 과거지사로다. '더덕' 그 찐한 향에 빠져도 좋으리라.

▲ 달래장을 한숟갈 푹 떠서 둘둘 비벼 세번 먹으면 한 그릇 뚝딱. 다른 반찬이 필요없답니다.
ⓒ2004 김규환
무릇 들국화 취나물이요, 취나물은 들국화니 돋아나는 싹마다 고이 모셔 와서 버무리고, 무치고, 뒤적이고, 데치면 축제 한마당이다. 눈으로 먼저 먹고, 코로 향기 맡고, 혀로 오미(五味) 느끼다 보면 어느새 내 생의 봄날은 저만치 가 있을지 모른다.

맛 고향에 살았던들 어버이 아니 계시고 사랑하는 형제 한곳에 모여 오붓하게 질겅질겅 씹을 일 없다 해도 어머니 맛이 최고였다. 아무 날이고 된장, 고추장에 마늘 몇 쪽 들고 소풍 한번 떠나보자.

이도 저도 귀찮으면 아무 거나 넣고 둘둘 비벼 먹으면 산나물 비빔밥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자연의 선물 봄나물! 절대 미각의 경지! 이걸 죄다 먹은들 살찌기는 글렀으되 입맛 버릴 일만 남으리라.

▲ 또 나물 한상 올립지요. 가까운 시장으로 먼저 달려가 보세요.
ⓒ2004 김규환
이 기사는 월간 <해피데이스> 4월 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04/03/07 오후 3:2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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