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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의 아픔, 새순을 기다리며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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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봄은 감귤농원 가지치기부터 시작됐다
가지치기의 아픔, 새순을 기다리며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강임(kki0421) 기자   
겨울 속에 갇혀 있던 봄이 드디어 다시 기지개를 폈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지났으니, 분명 봄은 봄인데 봄 같지 않은 날씨가 전국을 긴장시켰다.

지나간 계절과 다가오는 계절이 교차하는 환절기. 왜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된서리로 다시 깨어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 폭설의 흔적인가?
ⓒ2004 김강임
모든 것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디 온다고 했던가? 많은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봄은 꽃 소식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나의 봄은 감귤농원의 가지치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봄이 아주 느릿느릿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해마다 새로운 절기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나를 기다리는 곳은 감귤농원의 일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감귤농원의 봄은 하루해가 짧을 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

가지치기, 비료 뿌리기, 잡초 뽑기 등의 잡다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봄이 너무 빠른 걸음으로 찾아와 버리면 나는 낭패를 본다. 봄이라는 계절동안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다음 절기를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 돌틈에 돋아나는 '만물소생'
ⓒ2004 김강임
평소 남편과 나는 서로가 각자의 직업에 열중하다가도, 휴일만 되면 더욱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주 작은 자투리 시간이라도 버리지 말고 달려가야 할 곳, 감귤농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한다고 한다. 만물, 그리고 소생. 감귤농원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만물 소생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감귤나무 밑에 돋아나는 잡초들이었다. 지난해 내린 폭설로 다 얼어죽은 줄로만 알았던 잡초는 계절을 어떻게 알았는지, 얼굴을 내밀고 3월의 짧은 해를 바라본다.

"아이구, 이놈의 잡초. 조금만 더디 나오면 좋으련만…."

그러나 감귤나무 밑에 돋아난 풀을 뽑아내기엔 아직 그 싹이 여리다.

"그래! 조금 더 자라라!"

사실 잡초를 뽑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지금 감귤나무 전지전정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촌지도소를 쫓아다니며 부지런히 터득했던 실력을 발휘할 순간이다.

▲ 아직 새밥이 남아 있었다
ⓒ2004 김강임
지난해 새 밥으로 남겨 둔 감귤열매는 아직도 새들이 먹이를 다 먹지 못했나 보다.

"우리가 새들에게 너무 먹을 양식을 많이 남겨 놓았나 봐요."

나는 아직도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귤 열매를 보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도 군데군데 새들의 양식이 대롱대롱 달려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기도 했다.

▲ 톱으로 자르고
ⓒ2004 김강임
우선 가지가 너무 많은 감귤나무들을 제거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톱으로 자르고 가위로 잘라내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내 몸같이 아끼고 아끼던 감귤나무가지가 하나 둘 잘려나가는 순간, 내 마음은 살을 베어내는 아픔처럼 아파 왔다. 그러나 그 아픔이 새순으로 돋아나길 기대하며 다시 수확의 계절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다음 해에 적당한 수확량과 알맞은 크기. 질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고통만큼은 참아내야 한다.

"얼마나 애써 가꾼 나무들인데…."

▲ 잘려나간 감귤나무
ⓒ2004 김강임
그러나 이 잘려 나간 나무보다 더 아픈 상처는 감귤나무를 베어낸 흔적이었다. 언제쯤 이 아픈 상처가 아물게 될지. 사실 내 살덩어리는 상처가 조금만 나도 약을 바르고 호호 불며 며칠씩이나 엄살을 부리는데 말이다. 이렇게 잔인하게 톱으로 베어냈으니 감귤나무는 얼마나 그 상처가 깊어질까?

그런데 오늘따라 새들도 인기척이 없다. 농장 주인이 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찍 찍 찍 짹짹 짹' 거리며 울어내던 친구들이었는데 말이다.

▲ 애물단지 감귤도 효자노릇
ⓒ2004 김강임
지난해 일손 부족으로 다 수확하지 못한 애물단지 감귤은 꼭 이맘때가 되면 효자 노릇을 한다. 농장일을 하다가 하나씩 툭 따먹으면 그 맛은 기가 막힌다.

수확할 때는 열매가 너무 작아 상품가치가 없다며, 다 따서 버렸던 열매들. 그런데 나무에 남겨 두었던 작은 감귤 열매가 주렁주렁 열매 자랑을 한다.

사실 지난해는 이 작은 열매들이 얼마나 애물단지였던가. 물론 열매관리를 잘 하지 못한 농장 주인의 책임도 크지만, 열매 솎기와 꽃 따기라도 제대로 해 주었으면 상품을 만들었을 텐데. 해마다 후회하면서도 해마다 일손 부족으로 허탕을 치고 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쉬움만이 남겨진다.

▲ 따서 모으니 한바구니
ⓒ2004 김강임
애물단지 감귤 열매를 바구니에 따서 모으니 제법 많았다. 물론 눈과 겨울바람을 다 이겨냈으니 그 맛도 일품이었다. 겨우내 폭설과 추위에도 잘 견뎌 준 작은 감귤열매를 보며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감귤농장의 끄트머리에는 봄에 수확하는 감귤이 탐스럽게 봄 마중을 왔다. 지난해 눈 피해를 막기 위해 검은 스타킹을 씌워놓았다. 검은 스타킹을 벗겨 보았더니 노랗게 익은 아주 탐스러운 감귤열매가 얼굴을 내밀었다.

▲ 검은 스타킹에... 봄철에 수확하는 품종
ⓒ2004 김강임
사실, 주말을 이용해 감귤농장에 오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감귤나무 관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나무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이렇게나마 잘 자라주고 있으니 이 보다 더 고마울 데가 어디 있으랴.

내 살을 베어내는 아픔을 참으며 시작한 가지치기는 감귤꽃이 피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봄이 천천히 찾아왔으면 좋겠다.

비록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경영하는 감귤농원. 비료를 뿌리고 가지치기를 끝내고 잡초제거와 감귤농원 단장을 다 마무리 할 때까지 봄이 내 곁에서 머물러 줬으면 좋겠다.

2004/03/08 오후 5:11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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