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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에 갇혀 있던 봄이 드디어 다시 기지개를 폈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지났으니, 분명 봄은 봄인데 봄 같지 않은 날씨가 전국을 긴장시켰다. 지나간 계절과 다가오는 계절이 교차하는 환절기. 왜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된서리로 다시 깨어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봄이 아주 느릿느릿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해마다 새로운 절기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나를 기다리는 곳은 감귤농원의 일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감귤농원의 봄은 하루해가 짧을 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 가지치기, 비료 뿌리기, 잡초 뽑기 등의 잡다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봄이 너무 빠른 걸음으로 찾아와 버리면 나는 낭패를 본다. 봄이라는 계절동안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다음 절기를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한다고 한다. 만물, 그리고 소생. 감귤농원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만물 소생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감귤나무 밑에 돋아나는 잡초들이었다. 지난해 내린 폭설로 다 얼어죽은 줄로만 알았던 잡초는 계절을 어떻게 알았는지, 얼굴을 내밀고 3월의 짧은 해를 바라본다. "아이구, 이놈의 잡초. 조금만 더디 나오면 좋으련만…." 그러나 감귤나무 밑에 돋아난 풀을 뽑아내기엔 아직 그 싹이 여리다. "그래! 조금 더 자라라!" 사실 잡초를 뽑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지금 감귤나무 전지전정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촌지도소를 쫓아다니며 부지런히 터득했던 실력을 발휘할 순간이다.
"우리가 새들에게 너무 먹을 양식을 많이 남겨 놓았나 봐요." 나는 아직도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귤 열매를 보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도 군데군데 새들의 양식이 대롱대롱 달려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 적당한 수확량과 알맞은 크기. 질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고통만큼은 참아내야 한다. "얼마나 애써 가꾼 나무들인데…."
그런데 오늘따라 새들도 인기척이 없다. 농장 주인이 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찍 찍 찍 짹짹 짹' 거리며 울어내던 친구들이었는데 말이다.
수확할 때는 열매가 너무 작아 상품가치가 없다며, 다 따서 버렸던 열매들. 그런데 나무에 남겨 두었던 작은 감귤 열매가 주렁주렁 열매 자랑을 한다. 사실 지난해는 이 작은 열매들이 얼마나 애물단지였던가. 물론 열매관리를 잘 하지 못한 농장 주인의 책임도 크지만, 열매 솎기와 꽃 따기라도 제대로 해 주었으면 상품을 만들었을 텐데. 해마다 후회하면서도 해마다 일손 부족으로 허탕을 치고 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쉬움만이 남겨진다.
감귤농장의 끄트머리에는 봄에 수확하는 감귤이 탐스럽게 봄 마중을 왔다. 지난해 눈 피해를 막기 위해 검은 스타킹을 씌워놓았다. 검은 스타킹을 벗겨 보았더니 노랗게 익은 아주 탐스러운 감귤열매가 얼굴을 내밀었다.
내 살을 베어내는 아픔을 참으며 시작한 가지치기는 감귤꽃이 피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봄이 천천히 찾아왔으면 좋겠다. 비록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경영하는 감귤농원. 비료를 뿌리고 가지치기를 끝내고 잡초제거와 감귤농원 단장을 다 마무리 할 때까지 봄이 내 곁에서 머물러 줬으면 좋겠다. | ||||||||||||||||||||||||||||||||||||||||||||||||
2004/03/08 오후 5:11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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