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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어? 신기하다” 이 곳에만 가면 이런 중얼거림이 한 번쯤은 나올 만한 곳, 바로 은평구 진관외동 기자촌이다. 항아리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70년대 드라마에서 봤음직한 나지막한 집들과 텃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154번 버스를 타고 졸다가 깨길 반복하는 찰나, 운전기사가 ‘종점’이라며 하차를 재촉하는 곳이 바로 기자촌이다. 시멘트도 바르지 않은 주차장과 산허리를 돌면서 만들어진 가파른 골목길, 집보다 넓은 공터와 텃밭들, 눈높이만큼 낮은 담과 아예 담도 울도 없는 집들. 그 옛날 공을 줍기 위해 올라갔다 지붕을 깬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슬레이트 지붕들이 눈에 들어오는 게 이 동네 풍경들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안녕 UFO>의 배경도 바로 이 곳. 154번 버스 운전사 박상현(이범수)과 최경우(이은주)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 속에서 기자촌은 좁은 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집들로 보여졌다.
기자촌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내집 마련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집단거주지다. 알고 나니 뒷맛이 씁쓸하다. 독재정부라는 원성이 높아가던 시절, 기자들에게 싼값의 주택을 내준 것은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당근’과도 같기 때문이다.
30년 이상을 서울 속 섬처럼 조용하게 지내왔던 이 마을에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은평 뉴타운 개발이 그것인데, 현재 이 곳 주민들 70%는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시가 대규모로 주택단지를 조성, 지금까지 누려왔던 생활 공간을 뺐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울시에게 그린벨트만 해제하고, 이후의 개발은 주민들에게 자체적으로 맡겨 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주민들에게 자체적으로 개발을 맡길 경우 난개발이 우려되고, 충분한 도시기반시설 확보가 힘들며, 체계적인 개발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서울시의 태도에 대해 주민들은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자발적으로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며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왔고, 이미 충분한 소방도로와 주차시설까지 만들어진 상태에서 기반시설 부족 운운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주택조합 입구에 있는 ‘공영개발 반대’ 플래카드가 갈갈이 찢겨져 있다. 개발 열풍이 순박한 주민들의 마음마저 찢어 놓은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쓰리다. ‘우리 이대로 살게 해주세요’ 154번 버스 종점에 내리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플래카드의 내용이다. 과연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또 도시 개발로 이 동네가 흔적조차 사라진다면, 도시 속에서 우리 옛 정취를 담고자 하는 영화인은 또 어디를 찾아 헤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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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6 오전 9:13 ⓒ 2004 Ohmyn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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