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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여 풋내 나지도 않고 덜하여 밋밋하지도 않다. 푸성귀와 남새, 나물 고유 맛을 살릴 대로 살린다. 너무 쓰다 싶으면 된장 조금, 고추장 더 하면 된다. 질겨서 뻣뻣하면 식초 한 방울 떨어뜨려 보드랍게 한다. 참깨 꼬습게 씹히고 참기름 입안 맴돌아 네모난 젓가락 자꾸 움직이게 했다. 골똘히 쳐다보던 소년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가 무치던 손으로 한 움큼 입에 넣어 주면 상큼한 반찬을 매운 줄도 모르고, 잘도 받아먹었다. 한 두번 더 먹어보고 뒤로 물러섰다가 밥을 기다리는 모양은 마치 제비 새끼 입을 쫙쫙 벌려 지지배배 지저귀며 어미 재촉하는 거나 뭐가 달랐던가.
대바구니 하나 들고 산으로 들로 어머니 만나러 떠나볼까. 채반도 좋으리라. 그 들녘엔 나물 캐던 누이마저 없지만 아내를 졸라, 아이들 손잡고 달려가고 싶다. 다시 30년을 풀쩍 뛰어넘어 엄마 손맛 찾아 떠나는 맛 여행은 늘 즐겁기만 하다. "아빠 이 거 뭐야?" "응 나물이야, 봄이니까 다시 살아서 나오는 거야. 이거 캐다가 아빠가 맛있게 무쳐 줄게." "아빠!" "돌부리에 넘어졌구나. 조심히 다녀야지." "여보 뭘 캐야 돼요?" "아무 거나 캐면 됩니다."
달콤한 뿌리와 향기 가득한 잎 모두 먹는 냉이로는 무 구덩이 파헤쳐 몇 개 안 남은 무 착착 엇비슷하게 쳐서 '냉이된장국' 푸짐하게 끓이시고 반쪽 남은 걸로 채 썰어 '냉이생채'로 입 안에 향이 가득 돌게 하셨다.
꽃 대궐 이 화려한 철에 들녘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렀다. 시간 날 때마다 보리밭 몇 바퀴 돌고 오라시던 어른들 말씀 따라 걸었더니 뒷다리 부어오른다. 보리 몇 줌 캐다가 '보릿국'으로 봄을 방 안에까지 모셔왔다.
양지바른 밭에선 땅 속에 숨어 있다가 서릿발 이겨내 쏙쏙쏙 퇴비 비집고 마늘 싹 기어 나오면 한 줌만 쪽쪽 뽑아다가 고추장만 넣고 빙초산 한 방울 떨어뜨려 둘둘둘 비벼서 무쳐 놓으면 알알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에 흠뻑 빠져 몰골이 가관이다. 세상에 간편한 음식이 '풋마늘무침'이다.
무지개 빛 도는 줄기도 좋지만 뿌리까지 다치지 않게 캐려면 온갖 공력이 다 들어가는데 돌 하나 꺼내 밀치고, 두 개 들어내 바늘같이 가녀린 허리 거쳐 더 파들어가면 동글동글한 작은 뿌리 뒤엉켜 있거나 달랑 하나 숨어 있다. 이삼십 뿌리 캐도 한 손에 차지 않지만 풋풋한 향내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와 물에 담갔다가 쫑쫑쫑 썰어 종지에 넣고 간장 붓고 고추장 풀어 휘젓고 깨소금 반 숟갈에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리면 '달래장'이 된다. 반찬 없어도 한 술 떠서 밥 세 번에 나눠 비벼 먹으면 온 세상 다 준대도 바꾸지 않았다.
머릿속 피마저 돌게 하는 '파김치' 매콤하게 담가 길게 늘여 야금야금 씹어 먹고 사이다 조금 섞어 시큼한 초고추장에 봄 향기 가득 담아 두릅 순 몇 개 따다 '땅두릅', '두릅나물' 베어 물면 지난 겨울 세상 시름 과거지사로다. '더덕' 그 찐한 향에 빠져도 좋으리라.
맛 고향에 살았던들 어버이 아니 계시고 사랑하는 형제 한곳에 모여 오붓하게 질겅질겅 씹을 일 없다 해도 어머니 맛이 최고였다. 아무 날이고 된장, 고추장에 마늘 몇 쪽 들고 소풍 한번 떠나보자. 이도 저도 귀찮으면 아무 거나 넣고 둘둘 비벼 먹으면 산나물 비빔밥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자연의 선물 봄나물! 절대 미각의 경지! 이걸 죄다 먹은들 살찌기는 글렀으되 입맛 버릴 일만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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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7 오후 3:28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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