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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다 죽겠어요 요새는 시골에서 일을 봅니다. 시골에서 무어 할 일이 있느냐고 여쭙는 분들도 많으나 시골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도시에서 바라보는 만큼 돈 되는 일은 아닐지라도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즐길 일이 많습니다. 더구나 푸른 하늘을 보고 아침놀과 저녁놀을 즐기며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마시는 즐거움은 그 어느 비싼 술과 안주를 즐기는 즐거움보다 큽니다. 지난주 금요일이던가요? 목요일이던가요? 참 큰눈이 내렸습니다. 그날 마침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었는데 자칫하면 시골에 갇힐 뻔했습니다. 눈이 좀 녹은 뒤 올라오려고 했는데, 그칠 듯한 눈이 아니라서 서둘러 버스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때 나오지 않았다면 고속도로에 꼼짝없이 갇혀서 하룻밤을 꼬박 새우거나 걸어서 서울로 갔어야 했겠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눈이 펑펑 오던 그날은 새벽부터 쌓인 눈을 치우느라 바빴습니다. 차도 다니지 못할 만큼 쌓인 눈이라 찻길에 쌓인 눈도 치우고 마당에 쌓인 눈도 치웁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겨우 산속에서 산밑으로 내려가던 길입니다. 시골 일을 보는 곳에서 제게 밥과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분이 한말씀 던집니다. "개구리들 다 죽겠어요." "네?" "경칩이라고 날이 풀려서 나온 개구리들이 다시 구멍 파고 들어갈 수 없으니까 다 죽겠다고요." "네에." "개구리가 구멍 파고 들어가는 거 본 적 있어요?" "아니요. 본 적 없는데요." "개구리가 발에 물갈퀴 있잖아요. 그런 발로 땅을 파는 데 얼마나 파겠어요?" 얘기를 듣다가 생각해 봅니다. 어, 진짜 그러네. 경칩이라고 나온 개구리들이 다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미칩니다. 다시 이야기를 듣습니다. "개구리들이 겨울잠을 자러 갈 때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아요? 잔뜩 먹어서 뚱뚱해진 몸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땅을 파기 힘드니까 볼에 물을 가득 머금어서 조금씩 뱉어 흙을 적셔서 파내요."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는 이야기는 늘 들었고, 땅 속 깊이 들어간 개구리 그림이나 사진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개구리가 어떻게 그곳까지 파고들어갔는지는 못 봤고, 생각도 안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을 뱉어 흙을 적셔서 조금씩 파내자면 시간도 참 오래 걸릴 텐데. 그러다 보니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홀쭉해서 힘도 못 쓸 테고, 갑자기 추워지면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는 터라 그만 얼어죽고 만답니다. 자연 생태계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제오늘 눈이 그치고 날이 풀려 산을 뒤덮던 눈도 많이 녹았습니다. 하지만 깊은 산속엔 눈이 아직 그대로예요. 나무를 덮던 눈도 다 녹아서 소나무 푸른잎이 그대로 보입니다. 그러나 눈에 짓눌려 허리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진 나무가 곳곳에 보입니다. 문화재라는 '정2품송'도 가지가 부러졌다지만, 전국 곳곳에 있는 소나무는 눈짐을 견디지 못하고 참 많이 부러졌습니다. 길이 막히고 비닐집이 주저앉아서 시골사람들은 피해를 많이 입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가 사는 자연 생태계도 눈에 참 많이 파묻혔습니다. 얼어죽는 개구리가 있어도 살아남는 개구리가 있을 테고, 부러진 소나무는 죽겠지만 자기 몸을 땅에 내맡겨 거름이 되어 새로운 소나무로 자라는 밑거름이 되겠죠. 우리가 이번 눈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저 '돈'으로만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겁니다. 더불어 차가 다닐 수 없고 길이 막히는 어려움도 어려움이겠으나, 도시 문명만을 중심에 놓고 보는 피해를 넘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자그마한 목숨붙이가 입은 피해와 어려움도 있음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큰눈에 갇힌 새와 사슴과 멧돼지와 산양은 먹을 거리가 없어서 쫄쫄 굶습니다. 사냥철이 지나가 겨우 숨을 돌린 들짐승은 갑작스런 큰눈 탓에 끼니 잇기도 어려워졌어요. 사람만 살 수 없는 자연이자 지구이며, 사람만 살려 한다면 모든 목숨붙이가 다 죽고마는 자연이자 지구입니다. 새봄이 다가오는 날에 내린 눈은 갑작스런 날씨였으나, 바로 우리들 사람 때문에 날씨가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자동차가 굴러다니며 내뿜는 배기가스와, 소비중심 도시문명을 이어가고자 돌아가는 공장에서 내놓는 쓰레기와 폐수, 전기를 얻고자 일으키는 숱한 공해를 헤아려 보아요. 봄눈을 봄눈으로 느끼며 즐기지 못하고 봄개구리가 봄개구리답게 살아가지 못하여, 봄을 알리고 여름을 맞이하는 개구리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 사람 삶은 얼마나 살아갈 만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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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0 오후 3:33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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