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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과 6일 충청도 지방에 폭설이 내리자 내가 사는 이곳 안면도에도 하룻밤 새 20㎝ 이상의 폭설이 내렸다. 다행히 우리 마을엔 큰 피해는 없었으나 농가의 부실한 비닐하우스 몇 동이 무너지는 약간의 눈 피해가 있었다. 그런데 마을 한 가운데를 지나는 중심도로 언덕배기의 큰 소나무가지가 쌓인 눈 무게에 눌려 길가로 떨어졌다. 어른 허벅지보다 큰 나뭇가지가 길을 가로막아 큰 트럭도 서로 비켜가던 큰 길이 작은 차만이 간신히 빠져나가게 되었다. 길 가운데를 막고 있는 큰 나뭇가지 때문에 오가는 차들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할 수 없이 양보심이 많은 차가 서서 기다리다 비켜 갈 수밖에 없다. 나도 하루에 몇 차례 이 길을 오가기에 차에서 내려 나뭇가지를 끌어내려 했으나 나뭇가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기운 센 사람이 있다면 옮길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로 되지 않아 누군가 치워놓겠지 기대하고 나도 그냥 여러 차례 지나쳐 다녔다. 이렇게 하루, 이틀, 사흘……. 벌써 여러 날이 지나도 나뭇가지를 치우는 사람이 없어 큰 차들은 길 아래 밭둑을 밟고 지나다녔다. 이곳 우리 마을은 해수욕장이 세 군데나 있어 외지 관광객도 이 길을 많이 지나다닌다. 그런가 하면 이 도로는 이웃 여러 마을을 잇는 길목이라서 많은 차들이 오간다. 얼마 전 마을 양식장 문제와 새로운 이장 선출 문제로 마을회관에서 주민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 그때 보니 마을을 아끼고, 마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람이 우리 마을에 꽤나 많은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마을 길 한 가운데를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치울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라를 잃은 설움에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까지 바친 유관순 열사도 있고, 안중근 열사도 있건만 우리 마을엔 제 앞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 하나를 치울 사람이 없단 말인가? 너무나 한심해 중학교 동창인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할까하다가 참았다. 그리고 내 자신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나도 엄연히 이곳 고향 마을의 주민인데 누구에게 이 일을 떠넘긴단 말인가. 나는 오늘 아침 날이 밝자 그 큰 나뭇가지를 톱으로 여러 토막을 내서 길 언덕 아래로 끌어내렸다. 길을 터 놓으니 아침부터 내 가슴이 다 시원해졌다. 겨우 도로를 막는 나뭇가지 하나 치운 일이지만 나도 마을을 위해 큰 일을 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서울생활 30여 년 만에 귀향을 하니 시골 인심도 너무나 변하고, 시대가 바뀌어 이웃을 아끼던 순수한 정서도 아랑곳없는 현실을 나무랄 수 없다. 자기 집 뜰 안의 눈은 치워도 대문 밖 눈은 치우지 않는 게 요즘 시골 인심이다. 하물며 마을 안 길에 쓰러진 나뭇가지를 치우기를 바란 나의 기대는 허사가 되었다. 지난 번 마을회관에서 마을을 위해 헌신 봉사하겠다던 이곳 열성 주민들의 속내를 이제야 꿰뚫어 보니 한심스럽다. 입으로는 애국애족을 외치며 뒷전에선 돈 보따리나 챙기는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도 있으려니 그까짓 사소한 일은 마을 주민도 관심 밖이다. 오늘 점심 때 풍물 연습 모임이 있어 '누가 그 길에 쓰러진 나뭇가지를 치웠던데 아는 사람 없어?' 하고 내가 농담을 했더니 그 중에 한 젊은 친구가 말하기를, '그걸 치울 사람이 누구겠어요? 내가 오늘 새벽에 그것 치우느라 똥 쌌어요'라고 응답했다. 물론 그 친구가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세상이 우스워 지다보니 정말 자신이 치웠다고 헛소리할 친구도 있을 법하다. | ||||||||||||
2004/03/10 오후 5:28 ⓒ 2004 Oh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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