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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목욕을 해보셨나요?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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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목욕을 해보셨나요?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순희(sinchoon07) 기자   
▲ 그때의 가마솥입니다. 지금은 좀 작아보이죠?
ⓒ2004 김순희
조금씩 날씨가 풀립니다. 예전의 봄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지 포근함도 느껴지고 왠지 묵은 때를 벗겨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그런 날들이 다가왔습니다.

지난 주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자고 나면 하루가 가고, 또 시작하는 하루는 어느새 날짜가 저 만치 달려가고 있는 그런 날이 삼월인 것 같습니다.

괜히 분주하고 피곤함이 쌓이는 정신없는 날들을 제치고, 주말엔 딸아이와 목욕탕에 갔습니다. 딸아이가 제일 좋아는 게 목욕탕 가는 일입니다. 얼른 가자고 성화입니다.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 되었습니다. 아직 저의 등을 밀어줄 수는 없어도 옆에서 심심하지 않게, 어색하지 않게 도와주니 꼭 모시고(?) 가야할 저의 형편입니다.

목욕탕에는 주말이라 딸들과 함께 나온 엄마들이 많았습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묵은 때를 밀어버릴 준비를 했습니다.

옆에서 마냥 재미있게 놀고 있는 딸아이를 보니 어릴 적, 처음 목욕탕에 갔을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했던 그 마음이 간간히 전해지는 듯해 혼자 웃었습니다.

제가 살던 고향에선 읍내로 나갈 수 있는 일은 장날이외엔 드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필요한 것들은 집이나 동네에서 마련해야 했지요.

특히 목욕은 요즘처럼 늘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못되어 그야말로 일년에 몇 번이 고작이었습니다. 여름은 밤늦은 시간, 우물가에서 했거나 아니면 동네 아주머니와 언니들을 따라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빨래터에서 등목을 하곤 했습니다.

그 외의 계절은 사실, 집에서 날을 잡아 했습니다. 저 역시 그 몇 번 안 되는 목욕을 하려면 어머니와의 한바탕 전쟁 같은 피할 수 없는 벽을 넘어야 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정해주는 순번에 따라해야 했으며, 그것도 외양간 한 모퉁이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가마솥에 들어가서 했지요.

해가 어스름 저물 무렵, 소죽을 끓이고 난 후 어머니는 가마솥을 깨끗이 몇 번을 헹구어 씻어내셨습니다. 그리곤 수돗가에서 물을 길어다 가마솥 뚜껑을 닫고 아버지가 손수 장만해둔 장작으로 한참 불을 지폈습니다.

가마솥에서 눈물이 나고 나면, 아궁이 불을 적당히 조절해 놓으시고는 저녁준비를 하셨고,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가 끝나는 대로 언니와 저를 불러 모았습니다. 이미 날은 어둑해져 소외양간 안에 하나 달랑 매달린 백열전구에 의존해 가마솥 뚜껑은 개봉이 되었습니다.

▲ 누렁이 소가 쳐다보면 무서웠어요. 그것도 깜깜한 밤에...
ⓒ2004 김순희
아무 것도 모르는 누렁이 소는 여물을 씹으며, 그 큰 눈을 끔벅끔벅 쳐다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기분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요.

그런 어린 저의 마음을 알리 없는 어머니는 묵은 때를 벗겨내느라 땀을 흘리며 고생하셨고, 매운 어머니의 손을 이리저리 피하다 등짝 한번 맞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습니다.

아궁이의 불은 장작이 타다만 것이라지만 그 열은 너무 뜨거웠고, 발바닥이 금방이라도 대일 것 같아 폴짝폴짝 뛰기라도 하면 어느새 어머니의 손은 등짝을 내리칩니다. 그때의 가마솥 목욕법은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누렁이 소 옆에 가마솥이 그대로 있습니다. 가마솥 위에서 발바닥이 뜨거워,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어린 아이 옆으로 고개를 쑥 내밀던 그때의 누렁이는 아니지만 그 모습은 그대로 있어 한번씩 생각나게 합니다.

그렇게 가마솥 목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은 큰언니가 객지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들어와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살림을 살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큰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손가방 작은 것 하나 들고 읍내에 나가곤 했습니다. 뭐 하러 가나 싶어 물어보기도 했지만 큰언니는 말 대신 한번 따라가 보자며 저의 손을 이끌고 그 먼 읍내까지 걸어 데리고 갔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목욕탕 시설에 당황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던 그때, 목욕탕에 들어서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아마 큰언니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던 기억만이 생생합니다.

어머니의 등 밀던 매운 손맛(?) 역시 이젠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아무리 세게 밀어달라고 해도 그때로는 돌아갈 수 없나봅니다. 그런 모습의 어머니가 요즘은 무척 안쓰러워집니다.

딸아이는 다 씻었다고 그만 나가자고 합니다. 그때의 어머니처럼 묵은 때를 밀어내려고 하니 오히려 간지럽다며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합니다. 그런 딸아이에게 차마 등짝을 내 치지는 못하고 강력한 협박(?)으로 저의 위기를 모면해봅니다.

목욕탕 문을 나서는데 딸아이가 목욕탕집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곤 발그스레한 얼굴로 저에게 말을 합니다.

“엄마, 목욕하고 나오니 정말 시원하죠? 그렇죠?”

2004/03/08 오후 7:19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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