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촛불 문화행사'에 참여한 작곡가 윤민석씨.<사진 이기태 제공> | ||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 대로/대통령은 물러나야 할지도 몰라/일가친척 측근 가리지 않고/검은 돈 받아 챙겼을지도 모르지”<중략> “그래도 너흰 아니야/너흰 아니야/너흰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채권에 사과상자에/이제는 아예 트럭 채/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
최근 뜨고 있는 노래를 꼽으라면 촛불시위 때마다 등장하는 ‘너흰 아니야’가 단연 으뜸이다. 촛불 시위 때만은 ’10분 안에 애인 있는 남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가사로 인기를 끈 이효리의 ‘10minutes’의 인기를 능가한다.
쉽고 재미있고 따끔하기 때문이다.
‘탄핵무효’와 ‘민주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청량음료처럼 광화문 곳곳에 울려 퍼져나가고 있다.
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한 가사가 흥겨운 반주에 맞춰 반복되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란 노래도 등장하기도 했다. '너흰 아니야'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런 노래를 만들었을까? 왜?
주인공 윤민석(40)씨를 만났다. 지난달 지독한 몸살감기로 병원신세를 졌음에도 거리로 나선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현 정세가 나를 편히 쉴 수 있도록 가만히 놓아 주지 않기 때문이죠.”
“아빠, 열심히 싸워서 좋은 나라 물려 줄께”
“이 노래를 언제, 어떤 계기로 만들었냐구요? 예전부터 작곡가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의 행태를 노래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결과가 발표되고, 서청원 의원의 석방결의안이 통과됐을 때였구요.”
그는 서청원 의원이 석방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고 생각했다. 울분을 토했고, 그 울분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겼다. 결국 그 노래가 탄핵가결로 울분을 삭히고 있는 국민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개탄하듯 말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몰아낸다는 것은 초등학생의 상식에서도 이해가 안되죠. ‘휴지는 휴지통에 넣어야 한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같은 상식이요. 인생 역전의 길은 로또 뿐이고, 친일파 자손들이 큰소리치며 사는 사회를 상식이 통한다고 할 수 없죠.”
그는 민중가요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빠인 그가 ‘가난한 작곡가’로 남아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이유였다. 촛불시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도 현 상황을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로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광화문에 나오면서 세살된 딸에게 전화를 걸어 ‘윤설아, 아빠가 열심히 싸워서 좋은 나라 물려 줄께’라고 말했어요. 스무살 시절이었던 80년대 그렇게 뛰었는데, ‘쫑’(‘끝장’이란 말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을 보지 못해서 40대에 벌 받는구나 싶었죠. 아마 지금 ‘쫑’을 보지 못하면 60대에도 이런 고생을 해야 할 텐데, 이번에는 ‘쫑’내야죠. 딸과의 약속도 지키구요.”
“민중가요도 대중과 호흡할 때 존재가치 있다”
윤민석. 그는 사실 대학가 운동권(?) 사이에서 유명한 민중가요 작곡가였다. '전대협 진군가', '애국의 길', '반미출정가', '전사의 맹세'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노래가 없을 정도다. 그런 그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솔트레이크 겨울철올림픽대회에서 안톤 오노에 의한 금메달 강탈사건 이후 발표된 ‘Fucking U.S.A(퍼킹 유에스에이)’ 때문이었다. 미국의 전횡과 오만을 질타한 이 노래는 네티즌 뿐 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줬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자녀 병역면제 의혹과 부친의 친일행적 의혹을 신랄하게 비판한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어’를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작년에 만들어진 이 두 곡은 개인적으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예요. 저와 송앤라이프 (www.songNlife.com)가 알려지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가사에 담긴 내용 역시 하고 싶은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요. 작년 한해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슬럼프에서 벗어는데 힘이 되어준 노래이기도 하구요.”
사무실은 작년에만 세 번의 홍수피해를 입었다. 개인적인 배신의 아픔도 당했다. 사태수습을 위해 몇 달간 뛰어다녔지만 해결이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3만8000여명의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보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인터넷 앵벌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처참했죠. 하지만 ‘힘내세요’라며 1천~2천원을 보낸 초등학생들이 있었어요. 은혜를 갚아야지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었죠. 1천원의 정성이 재기의 발판이 됐죠. 꿀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개사 캐롤송을 만들어 발표했는데, 인기가 많네요.”(웃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회에 나가려면 구속과 투옥, 고문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힘을 돋우는 노래가 필요했죠. 민중가요를 대중화할 수단도 없었구요. 지금은 시대상황도 달라졌고, 인터넷이 대중화를 주도하고 있잖아요. 민중가요도 대중과 떨어져서는 의미가 없어요.”
“전사가 되고 싶은 꿈 있었지만, 이제는 딴따라로 남고 싶다”
그는 최근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종철이가 나를 보면 무어라고 할까’로 시작되는 ‘편지10’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는 “너 아직도 그거 하냐?”라는 소리를 듣거나, ‘윤설이에게 줄 분유를 사면서 1~2천원 때문에 고민할 때’, ‘부인(양윤경씨는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 멤버였다)에게 생업을 떠맡겨야 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후배들에게 술 한번 제대로 못 사줄 때’ 드는 ‘떼려치우겠다’는 유혹을 종철(고 박종철)이와 한열(고 이한열)이를 생각하면서 억누른다.
“빚은 늘어가고 생계는 어렵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노래’로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절 믿고 응원해주는 가족과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딴따라의 길을 계속 가려고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이예요. 빠른 시일 내에 ‘탄핵무효 민주수호를 위한 문화예술특공대’도 조직할 겁니다.(송앤라이프는 현재 광화문 촛불시위 문화행사를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종철이와 한열이가 절 볼 때 부끄럽지 않도록 말입니다.”
김미영 <인터넷한겨레> 기자 kimmy@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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