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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고 돌아서 볼멘소리 하는 민심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3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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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고 돌아서 볼멘소리 하는 민심
[현장]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의 택시회사 방문기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한기(hanki) 기자   
▲ 29일 오후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은평구의 한 택시회사를 방문하는 첫 민생투어에 나섰다. 신성콜택시 기사 이강덕씨와 악수하는 추미애 선대위원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valign=top온 김에 쓴소리 좀 듣고 가라.... / 김윤상 기자

"젊은 의원들은 다 빠져나가고, 나이든 사람들만 남았다. 민주당을 소멸시켜야 한다."
"진짜 개혁을 하고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면 열린우리당과 힘을 합쳐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오려면 미리 연락을 해야지, 불쑥 3시에 온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29일 오후 3시30분 은평구에 있는 신성콜택시㈜의 택시 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불만을 토로했다. 그들은 곧 도착할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의 민생현장 방문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첫 민생현장 방문 장소로 택한 택시회사의 분위기는 냉담했다.

'앞뒤좌우 본인이 불리한 경우 확실히 양보하자' '방심으로 전방 소홀하면 어처구니없는 사고 발생'이라는 건물 벽에 걸린 플래카드는 내홍을 겪었던 민주당의 쇄신파와 당권파에게 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택시회사 한켠에서는 추 위원장이 도착하면 인사할 택시기사 이경덕(49)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12시간 근무를 마치고 방금 돌아온 터였다. 이씨는 슈퍼마켓을 하다가 하도 장사가 안돼 택시운전에 나선 지 3개월 보름쯤 됐다고 한다.

- 오늘 어느 정도 벌었습니까?
"12만원 벌었습니다."

- 하루 사납금(회사에 내는 돈)이 얼마인가요?
"8만8000원입니다."

- 그럼 어느 정도 남는 건가요?
"(밥값과 담뱃값 등을 제외하면) 하루에 2∼3만원 가져갑니다."

"전체 택시기사 200명 가운데 반수가 입금을 못하고 있어"

일부 기자들과 이씨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뒤편에 서 있던 다른 택시기사들이 볼멘소리를 해댔다.

"(방문 행사를) 빨리 하고 나가야 (우리들이) 일을 하지…."
"(사납금) 입금 못하는 날이 반이 넘어. 오전반은 태반이 사납금조차 못 채워. 내 주머니에서 돈을 내서 메워야돼."
"전체 택시기사 200명 가운데 반수가 입금을 못하고 있어."
"기자들도 제대로 알고 취재를 해야 돼."


택시기사들의 불만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내에서 1시간만 빈차로 돌아다니면 앞이 안 보여."
"어떤 사람이 (내 택시를 탔다가) 달러가 든 가방을 놓고 안 내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나도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인데 말이야."


오후 3시48분께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택시회사에 도착했다.

추미애 "수고하십니다. 힘드시죠? (악수한 뒤) 몇 시에 나오시나요?"
택시기사 "새벽 3시 반에 나옵니다."

추미애 "하루 수입은 어느 정도 되나요?"
택시기사 "하루 평균 집에 가져가는 돈이 2∼3만원 가량 됩니다. 택시 운전하기 어렵습니다."

추미애 "경제 전체가 풀려야만 택시 경기도 풀립니다."

이씨가 "오늘은 운이 좋아 (사납금을 내기 전) 12만원을 벌었다"고 하자, 뒤에서는 또 다른 택시기사들이 "이야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저렇게 이야기하면 택시기사들이 돈을 잘 버는 줄 안단 말이야, 사납금도 못 채우는 날이 태반인데…"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추 위원장이 이경덕씨와 이야기를 마치고, 정비공과 잠시 인사를 한 뒤 미리 마련된 간담회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한 택시기사가 추 위원장에게 할 말이 있다며 앞으로 뛰쳐나가려 하자 동료 기사가 몸을 끌어안고 막아섰다.

▲ 지난 29일 오후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신성콜택시 기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오후 4시 택시회사 건물 2층에 마련된 간담회장에는 택시기사들과 민주당 당직자들, 취재진들 100여 명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노조위원장과 사장의 의례적인 감사 인사가 끝나자, 추 위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반갑다. 다들 반갑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 사실은 이 자리에 매를 맞으러 왔다. (종아리에 매를 맞았을 때) 더 아파하라고 바지를 입지 않고 치마를 입고 왔는데…. 정치권이 실망을 안겨드려 이렇게 나돌며 뵐 염치가 없다.

어느 사람은 택시를 탈 때 개인택시와 일반택시를 가려서 탄다고 하는데, 저는 제일 먼저 오는 택시를 탄다. 그러면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렇듯 이 곳에도 가장 먼저 온 사람이 표심을 얻게끔 잘 밀어달라."


다음 일정 때문에 택시기사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온 김에 쓴소리도 듣고 가야 한다며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바닥경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평상시에도 검소한 차림으로 (이런 곳에) 많이 다녀달라"

노조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 택시기사는 "노 대통령이 잘했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탄핵을 한 것은 더 큰 잘못 아니냐"며 "탄핵에 앞장선 분으로서 한 말씀해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추 위원장은 "고도의 정치적인 질문이 나왔다"며 답변을 이어나갔다.

"선대위원장을 맡기 전후에 사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업종이 음식점과 택시운전이라고 한다. (애초) 탄핵 발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 탄핵을 하게 되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서민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탄핵에 반대했다.

그리고 탄핵이 발의된 후 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을) 만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분당 이후 (민주당이) 방어적이고 위축된 상황에서 특정정당 지지를 호소하고 재신임을 연계한다는 입장을 밝혀, 저로서는 더 이상 (탄핵 반대를) 설득할만한 퇴로가 없었다.

늘 정치인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핵을) 발의한 당으로서 (여러분들이 꾸짖는다면) 질책을 달게 받겠다. 따가운 질책에 감사드린다. 정신을 차려 대오각성 하겠다. 앞으로 잘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겠다."


또 다른 택시기사는 '3D 업종이 겪는 인력난'을 이야기하며 "택시회사도 (운전기사가 모자라) 운행을 하지 못하는 차가 많다"며 "나라에서 '부자세'라도 걷어서 투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그는 "(정치인들이) 선거철에만 많이 다니는데 평상시에도 검소한 차림으로 (이런 곳에) 많이 다녀달라, 그러면 박수를 쳐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추 위원장은 "애정이 없으면 그런 말씀도 없었을 것"이라며 "솔직한 지적을 고언으로 듣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는 "희망의 끝이 없듯이, 반성하고 사죄 드리고 다시 뛰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대선 이후 정치인으로서는 추미애 위원장이 첫 방문"

오후 4시30분. 1시간 가량의 민생현장 방문을 마치고 추 위원장과 민주당 당직자들이 자리를 일어났다. 간담회장에 남아 있던 택시기사들에게 소감을 묻자, 그들은 "피상적인 이야기"라고만 할 뿐 말을 아꼈다.

건물 밖에는 추 위원장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한 택시기사가 푸념을 털어놓았다.

"모두 표를 의식해서 그런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잠깐 와서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여러 사람들만 피곤하게 할뿐이다. 아까도 '12만원 벌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매스컴에 나가면 택시기사들 돈 잘 번다는 오해만 산다."

지난 대선때 이회창 후보가 방문한 뒤 정치인으로서 추미애 위원장이 처음 방문했다는 신성콜택시 기사들은 낯선 정치인의 방문을 무척 피곤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가려는 정치인보다는 자신들의 고충과 애환을 들어주러 오는 정치인을 바랬지만, 이번에도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표정이었다.

▲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29일 오후 민생투어차 신성콜택시 방문을 마친 뒤 해당 회사의 택시를 타고 여의도 당사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004/03/29 오후 6:33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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