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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에 8만원, 텃밭을 구입하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3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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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에 8만원, 텃밭을 구입하다
텃밭 이야기(1) 내 땅을 계약하던 날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소영(4blank) 기자   
▲ '내 땅 만들기'를 위해 남편과 아들 녀석이 말뚝을 박고 있다.
ⓒ2004 박소영
유치원 갔다 오기가 무섭게 컴퓨터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내는 6살배기 아들 녀석. 아직까지는 동화 보기, 동요 부르기에 머물지만 언제 게임에 중독(?)될지 모르는 일이라 내심 걱정이었다. 동생이나 형이 있는 아이들은 그나마 그 긴 겨울을 집안에서도 잘 지낼 수 있겠지만 혼자인 우리 아이는 엄마가 함께 놀아 주지 않으면 혼자서 노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아들 녀석에게 흙 가슴을...

컴퓨터와 텔레비전, 온갖 로봇 장난감에 휩싸인 아이를 건져내기 위해 봄이 오기 무섭게 전화를 걸어댔다. 텃밭을 구하기 위해서. 한번도 농촌에 근거한 삶을 살아 본 적 없는 내게 주말농장이란 테마는 낭만적인 전원 생활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이에게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이며 내게도 일정하게 돌아오는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아직 분양이 안 된 텃밭이 있어 8만원을 주고 3평 남짓한 밭을 1년 계약으로 확보했다. 아이와 나는 그곳에 찾아갔다. 우리는 밭 주인에게 계약금을 지불하고 열심히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른 다음, 내 땅 표시를 위해 말뚝을 박고 노끈을 탄탄하게 당겨 맸다. 그 간단한 일에도 무려 2시간이나 쏟아부었다.

▲ "아들아, 흙내음 실컷 맡아라!"
ⓒ2004 박소영
흐뭇한 마음으로 우리 밭을 감상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볼멘소리를 내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저돌적으로 "당신들"이란 호칭을 사용하면서 무지막지한 어투로 "처음 해 보는 거지요? 이렇게 돈 많이 주고도 할 사람이 많으니 원래 농사 짓던 사람들은 두손 들고 나가는 거라"라고 소리쳤다.

사연인 즉슨, 지난해 10평에 2만원을 내고 밭을 구해 열심히 가꾸었는데 며칠 전 와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남의 밭이 되어 있더라는 거다. 그 밭에는 그 아주머니가 심은 부추의 싹이 조금씩 땅 위에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저 아저씨 정말 몬됐네!"하며 우리가 치른 터무니없는 땅값에 분개했다. 곧 그 모양새를 본 건지 주인 아저씨가 우리 곁으로 왔다. 나는 곧바로 아저씨에게 "값 좀 내려 주세요!"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단호했다. "여러 말 하기 싫소. 대기자가 줄 섰어욧"하면서 버텼다.

흙 가슴에 박힌 쇠붙이

나는 실망했다. 이들 텃밭도 돈벌이를 위한 거구나 싶은 게, 여지없이 이 작고 한가로운 땅에도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잖아. 그래, 이만큼 투자했으니 열심히 하면 빛이 날 거야"하며 우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문득 근사한 밭이 되는 땅을 바라 보니 그동안 낯설기만 했던 '땅'이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땅이 곧 희망'이라는 다소 거창한 생각과 함께. 이 작은 공간에다 땀을 흠뻑 쏟으며 희망을 소원하면, 흙더미가 변하여 푸른빛 생명더미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인간과 지연의 아름다운 공존을 꿈꾸며, 또한 영악한 자본을 무기 삼는 이들을 용서하며 귀가했다.

▲ '흙내음을 뒤로하고 다시 아스팔트 공간으로'
ⓒ2004 박소영

2004/03/30 오후 10:40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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