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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똥을 더럽다고 말합니까?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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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똥을 더럽다고 말합니까?
화학비료와 농약에 절어 있는 밭에 새로운 희망으로 똥을 뿌립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송성영(sosuyong) 기자   
일주일 넘게 밭을 갈았습니다. 여기 저기 나뉘어 있는 자투리 밭을 다 합쳐 100평도 채 안 되지만 하루에 몇 고랑씩 쉬엄쉬엄 삽과 괭이로 밭을 갈아엎었습니다.

밭을 다 갈아엎고 나서 버려진 깡통으로 똥바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겨우내 모아 두었던 아이들 똥오줌과 변소에 있는 똥물을 퍼 밭에 뿌렸습니다.

똥을 푸는 것은 우리 식구가 먹고 남은 것들을 다시 밭으로 되돌려 주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밭을 갈아먹었던 사람들로 인해 화학비료와 농약에 절어있는 밭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역시 우리식구는 화학비료며 농약 한 방울 주지 않고 이 똥 밭에서 나는 싱싱한 밭작물들을 다시 먹게 될 것입니다.

똥을 푸면서 나는 혼자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홍패네 아부지는 똥 퍼유….”

어릴 적 동네에서 똥 푸는 일을 도맡아 했던 지금은 성도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네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네 아저씨를 그저 ‘홍패네 아부지’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를 비롯한 동네 조무래기들은 그 아저씨가 똥 지게를 메고 나타나면 저만치 거리를 두고 뒤쫓아 다니며 놀려댔습니다.

“홍패네 아부지는 똥 퍼유! 하루에 품삯은 일원 오십 전, 그래도 좋다고 똥 퍼서 남 주나!”

그 ‘홍패네 아부지’는 아이들이 그러든말든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똥을 펐습니다. 내 기억 속에 그는 땅 한 평 없는 ‘동네 상머슴’이었습니다. 그이의 다 쓰러져 가는 외딴 초가에는 언제나 머리를 산발하고 다니는 아내와 ‘홍패’라는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뜬소문에 의하면 그는 육이오 민족전쟁 직후 대전역에서 '하늘 아래 고아'로 떠돌고 있었는데 ‘예수쟁이 아줌마'가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 주었다고 합니다. 그이가 청년이 되자 ‘예수쟁이 아줌마’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여자와 짝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에는 ‘홍패 아부지’보다 더 천대를 받았던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육이오 민족전쟁 때 ‘정신이 헤까닥 돌아버렸다‘는 ‘더빙이’라는 미친 여자였습니다. 그녀를 왜 ‘더빙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를 비롯한 동네 조무래기들은 그 여자가 지나가면 “더빙이는 미친년이래유“라고 놀려댔고 돌멩이까지 집어 던졌습니다.

아궁이를 연탄 고래로 바꾸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던 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이 집 저 집 부엌을 들락거리며 잠을 자던 ‘더빙이’가 연탄 가스에 중독돼 저 세상으로 뜨던 날, 그녀를 가마니때기로 둘둘 말아 지게에 짊어지고 산언덕을 넘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홍패 아부지’였습니다. 하루 종일 꽁꽁 언 땅을 파헤쳐 그녀를 외롭게 장사 지내주었던 사람도 역시 ‘홍패 아부지’였습니다.

‘더빙이’가 저 세상을 뜬 그 이듬해 봄에도 역시 ‘홍패 아부지’는 온 동네 똥을 도맡아 펐습니다. 그리고 우리동네에 신작로가 들어오던 그 해, 그이는 단출한 살림살이와 식솔들을 우마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똥을 푸며 동네 사람들에게 천시를 당하면서도 그 누구를 해코지하지 않았던 ‘홍패 아부지’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똥 지게를 지고 다녔던 ‘홍패 아부지’ 그리고 ‘홍패’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철모르고 놀려댔던 그 시절을 사죄하고 싶었습니다.

밭에 똥을 뿌리고 사나흘 지나 공주 장에 나갔습니다. 똥 밭에 감자를 심기 위해 씨감자를 구했는데 값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작년에 비가 많이 내린 탓이었는지 예년에 비해 씨 감자 값이 두 배 이상이나 올라 있었습니다.

똥 밭에 씨감자와 토란을 심어놓고 모처럼 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세상사에 눈을 돌려보았습니다. 생명을 키우는 정직한 밭과 세상사, 특히 정치판은 늘 그렇듯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마음을 어지럽히고 입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떤 이는 군사 쿠데타를 노래부르고 있었고 군사 쿠데타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잔당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가증스런 눈물로 세상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주둥이로만 먹고사는 어떤 인간들은 우리 식구가 참가했던 촛불 집회를 환각상태에 빠진 것이라며 쥐약 먹은 개처럼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군사독재 정권에 죽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할 때 고양이 앞에 쥐새끼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던 수구언론들은 가재는 게 편이라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부와 명예를 누리며 배불리 잘먹고 잘살던 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을 추앙했던 그들은 한결같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우리의 일용할 양식인 밭작물을 키우는 똥보다 낫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들은 우리 집 변소의 똥보다도 못해 보였습니다. 우리 집 양식에 아무런 도움도 돼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몸과 마음을 억압하고 어지럽혀 왔습니다. 입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새 생명을 키우는 봄이 오고 또 봄이 가고 또 다른 봄이 왔는데도 여전히 똥보다도 못해 보이는 인간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우리 집 밭에서는 조만간 똥물을 먹은 싱싱한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 것입니다. 화학비료며 농약으로 절어 있었던 밭은 똥물로 되살아나면서 희망처럼 싱싱한 새 생명들을 키울 것입니다.
7년 전 가족과 함께 계룡산 갑사 부근에 빈집을 얻어 텃밭을 일구며 생활하고 있는 송성영 기자는 틈틈이 다큐멘타리 방송 원고를 써 오면서 공주에서 ‘동학농민전쟁 우금티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적게 벌어 적게 먹고사는 가족 이야기를 담은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라는 책을 냈다.

2004/04/03 오전 9:3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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