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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극장에 얽힌 추억 없니"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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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극장에 얽힌 추억 없니"
사라지는 극장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추억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대홍(bugulbugul) 기자   
얼마 전 여동생 결혼식 관계로 마산에 내려갔다 왔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이튿날 친구와 마산 시내를 구경하다가 한때 마산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고 오랜 역사를 자랑했던 '중앙극장'이 가구점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내 중심가에 있었고, 큰 극장이었기 때문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 E.T > 등 잘 나간다는 영화는 거의 중앙극장을 거치고 난 뒤 다른 극장에서 상영했습니다. <콰이강의 다리>를 상영할 때는 중간에 필름이 끊겨서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었지만요.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이 헐리는 것을 보면서 허전했던 마음은 얼마 전 3월 7일 부산 최초의 복합상영관이었던 부산극장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됐습니다. 한 번씩 부산에 놀러갈 때면 '꼭 한 번 가봐야지'하고 마음 먹었던 선망의 공간이었거든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극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산에서 가장 번화가라는 창동 중심가에 있던 시민극장이 화재로 문을 닫았고, 3·15 기념탑 옆에 있던 3.15극장, 중앙동에 위치했던 마산 극장 등이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지금은 복합상영관이다, 자동차극장이다, 재상영관이다 해서 극장의 품계가 정해져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꼬마들에게는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자 짜릿한 여행이었습니다. 지방에 재미있는 영화가 내려온다고 하면 한 달 전부터 동네 꼬마들은 용돈을 모으기로 약속을 하고 구경할 날짜를 잡습니다. 숱하게 약속이 깨지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다가, 공포영화 한 편을 보기로 약속이 잡혔습니다.(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상영됐던 영화는 <데드 쉽 Dead Ship>입니다.)

워낙 무섭다고 소문난 영화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힘입어 과장에 과장을 거듭했습니다. "야 그 영화 찍다가 스태프들이 여러 명 죽었대" "배우들도 여러 명 죽었다는대" "미국에서는 영화 상영하다가 관객들이 졸도하는 바람에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대" 확인되지 않는 소문은 그럴 듯하게 아이들의 마음에 파고들면서 한 달이 가까워질수록 취소하겠다는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결국 당일날 극장 앞에 모인 아이는 네 명이었지만, 결국 영화를 보겠다고 들어선 아이는 친구와 저 둘 뿐이었고 저는 무서움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줄거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극장은 모험의 장소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충실한 국가관을 길러주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수한(?) 반공영화가 나오면 단체로 소풍가듯이 극장으로 모였거든요. 제목과 주연배우, 감독 어느 것 하나 기억나지 않지만 자유를 찾아 월남한 남자가 휴전선까지 왔다가 안타깝게 인민군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슬펐던 기억이 있습니다. 존 레논의 '이메진'이 인상깊은 <킬링필드>도 반공영화로 분류돼 단체관람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더 이상 '공포영화'로 담력테스트를 하는 우스꽝스런 짓은 그만 두고 정말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랐습니다. 그 당시 이연걸이 주연으로 나왔던 '소림사 시리즈'를 앞자리에서 보면서 생라면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생라면 씹는 소리가 워낙 커서 대결중일 때만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 때 '소림사 시리즈'를 봤던 극장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극장을 통해서 성인 신고식을 치르려고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고3시절 반 급우에게 대리출석을 부탁하고 친구와 단 둘이 자율학습을 빠지고 밖에 나왔던 저는 당시 가장 야하다고 소문이 났던 강문영 황신혜 주연의 <물위를 걷는 여자>를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차마 표를 끊지 못하고 입구에서 10분 정도는 서 있었습니다. 결국 표를 사서 20m 정도 되는 거리를 올라갔는데 입구에 서있던 여직원이 '씩' 웃으며 한 마디 던지더군요. "몇 살이세요?". 그 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던 저희 둘은 결국 그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이런저런 추억에 잠겼다가, 옆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던 영화인 후배에게 "너는 극장에 얽힌 추억이 없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극장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초등학교 때 영화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커텐 닫고 <우뢰매> 상영한 것이 거의 유일한 추억인데요."

2004/04/03 오후 12:5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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