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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1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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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3대째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전만배씨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권윤영(hooko) 기자   
▲ 전만배씨
ⓒ2004 권윤영
"나에게 대장장이는 직업이 아니라 3대째 내려오는 가업이자 장인의 의무랍니다."

전만배(48)씨의 직업은 대장장이다. 쇠를 달구어 각종 연장을 만들고 소비자의 요구대로 제작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대장간으로 연장을 사러 오면 팔기도 한다. 자급자족하는 예전의 농어촌에서 대장간은 필수였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대장간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전씨지만 가슴 한 켠에는 보람과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대장장이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열네살 때부터.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대장장이 일은 아버지를 거쳐 자신까지 3대째 고스란히 이어졌다.

철들면서 시작된 그의 대장장이 인생은 20여년간 할아버지, 아버지를 따라서 시골 5일장 이곳저곳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했다. 여주, 논산, 부여, 용인, 서울, 구리 등 전국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현재의 '한밭대장간'이라는 상호를 달고 정착을 한 것은 8년 전부터다.

▲ 그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2004 권윤영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다 보니 좋은 점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국토는 작지만 각 지역에서 쓰는 연장이 다 달라요. 해안이나 포구마다 어떤 농작물을 재배하는지에 따라서 쓰이는 농기구가 전부 다르죠. 대부분 한 지역에서만 대장간을 대물림을 하기 때문에 그 지역의 특성에 맞춘 것밖에 모르는데 저는 전국의 농기구, 칼 등 모르는 게 없어요."

아무리 최고라고 인정받는 대장장이라고 하더라도 그 지역을 벗어나면 무용지물. 하지만 그는 1년에 한번씩 전국 일주를 하면서 전국 물품에 대한 시장 조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은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대부분 작업이 기계화되다 보니 자연스레 대장간의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대장일을 놓는 현실에서 그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연 최고를 자랑하는 실력 때문이다.

▲ 다른 사람에게 기술을 가르칠 때는 엄격하게 변한다.
ⓒ2004 권윤영
그의 전공 분야는 바로 칼. 20여년째 칼을 만들고 있는데 한자루를 만들 때마다 3단계의 기술 단계를 거칠 뿐만 아니라 무려 열여섯가지의 손동작이 요구된다.

"많은 사람들이 대장일은 무식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은 세공보다 더 정밀하고 어려운 작업이죠. 모든 사람에게 맞는 물건을 맞춰져야 하기에 배우기도 까다로워요. 그래서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하는 일이 힘드니 자꾸 떠나갑니다."

대장일은 철저한 분업이다. 때문에 대장일을 하는 사람도 자기 분야의 기술밖에 모른다. 그래서 그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일을 그만 두거나 죽으면 대장간은 자연 소멸해 왔다. 지금은 대장장이 일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 공사장, 건축장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 역시 힘든 현실에서 그만 두려고도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주문이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다. "수산시장, 포구, 요리사 등 칼로 먹고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제 물건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는 칼을 쓰는 사람들의 손에 무리가 가지 않는 좋은 칼을 만들기 위해 한자루 한자루마다 정성을 들인다.

그가 가장 아쉬운 점은 대장장이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냉담하고 차가울 뿐만 아니라 '사농공상' 사상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

"아직도 대장일을 "그까짓 것 푼돈이나 주고 일 시키면 되지"라고 천시합니다. 기분이 나쁘지만 어쩌겠어요. 남들이 원하는 칼을 최고로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 대전 가수원동에 위치한 한밭 대장간
ⓒ2004 권윤영

최고 소리에 만족한다는 그에게 대장일은 절대 손을 놓아서는 안 될 소명과도 같다. 중국 등 저개발 국가에서 저단가를 내세우며 제품이 나오는데다 지속적인 개발도 병행하고 있어 국내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하게 될지도 모르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장장이 전씨는 그냥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수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다.

전씨에게는 또 한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명장, 장인, 기능장 등 국가가 인정하는 분야에는 대장장이가 들어가 있지 않다. 전씨는 곧 사라질지 모르는 대장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도 '전통전승자'라는 명칭이 붙여지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계자가 있어야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사람들은 국가적인 명예를 갖고 있는 사람한테 배우려고 하잖아요. 내가 그 이름을 따내면 대장일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대장일은 기능이 단절되면 다시 살릴 수 없어요. 책이나 서류로 남길 수 있는 종류의 일도 아니죠. 일을 열심히 배우고 대장간을 물려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2004/04/09 오전 8:17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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