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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졸업과 함께 주어진 자유 앞에서 너무나 신나고 기뻤다. 하지만 지나친 간섭과 제재 속에서 주체적인 판단 능력을 미처 기르지 못했던 나는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할지 조금은 난감하기도 했다. 술도 그 자유의 일부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술을 마실 때, 나만의 주도(酒道)를 지킨다. 나에게 처음으로 술을 따라 준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그 선배의 하체는 무척이나 부실했다. 하지만 하체가 부실한 만큼 근사한 상체를 가지고 있었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였다. 얼마나 그 선배가 멋있어 보였던지, 선배 옆에서 걸을 때면 나도 선배처럼 다리를 절면서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그만큼 선배는 멋진 남자였고, 콤플렉스를 극복한 사람이었다. 학력고사를 막 치르고 난 후, 우리는 늦은 시간에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선배는 내게 술을 사주면서 말했다. "술을 마실 땐 딱 하나만 지키면 돼. 마음이 약해질 땐 술을 마시지 않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두운 골목 귀퉁이에서 구토를 하기도 했고, 친구의 등에 업혀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이 약해질 때 술을 마시지 말라'는 선배의 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살 초입 시절, 내 주위의 젊은 영혼들은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술자리의 화제는 당연히 '이성'과 '좀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순수했던 나와 친구들은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애를 태우곤 했다. 그맘 때, 내 마음 속에는 나를 앓게 만드는 한 여자가 있었다. 종종 그녀와도 술자리를 했는데, 한 친구 녀석이 그날따라 유난히 술을 많이 마셨다. 결국 술이 알맞게 취한 친구는 그녀에게 취중진담이라며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난처해 하며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고, 그 이후로는 좀처럼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친구의 취중진담 덕에 그녀와의 사이가 껄끄럽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 나는 '취중진담'을 싫어하게 됐다. 술의 힘을 빌려 말하면서 사람들은 종종 '말하지 못하는 힘겨움'을 이해해달라고 요구한다. 얼마나 말하기 어려웠으면 술을 마셨겠냐고 호소한다. 친구 역시 그랬고, 그 안타까움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진담의 진심'을 담고 싶다면, 술을 힘을 빌리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멀쩡한 정신으로 여는 마음과 술에 의지해서 여는 마음의 순도(純度)는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사랑 고백만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취중진담은 치사하다. 두려움마저 이기는 것이 사랑의 몫이다. 정말 그 말이 진담이라면 술을 힘을 빌리지 말자. 그래야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진심으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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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09 오전 8:53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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