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서 잡다한 이미지를 쏟아내고 욕망을 주입시키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미지의 허상을 꿀꺽꿀꺽 삼키며 적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공간은 역시 역사라는 줄로 꿰어져 흘러가는 법. 인간은 부속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실체로서 존재를 드러내려는 의지또한 계속된다. 사진전 홍수 속에서 욕망의 거울이자 역사적 실체인 얼굴과 몸에 초점을 맞춘 인물사진 전시가 새삼스러운 것은 이 시대 우리들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가 오형근씨는 일민미술관(5월2일까지·02-2020-2062)에서 열리고 있는 ‘소녀연기’란 제목의 개인전에서 대중문화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윤색된 소녀들, 곧 여성 청소년들의 가공된 얼굴과 몸짓을 60여 점의 대형흑백사진으로 나열한다. 아줌마와 배우 연작사진들을 통해 한국사회 사람들에 대한 유형가르기를 시도해온 이 작가는 미디어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순진소녀’에 대한 성인들의 불온한 성적 상상력을 끄집어낸다. 제각기 다른 용모와 몸의 발육상태에도 불구하고 영화처럼 달뜬 듯 표정연기를 하는 교복소녀들(모두 연기학원생들이다)은 가식을 꺼리지않는다. 순박함을 자연스럽게 가장한 표정과 얽혀 그들이 입은 꽉 낀 교복이 긴장감을 주는 것은 아이러니다. 도식적인 세라복, 체크무늬 치마가 덮은 알짱다리와 권태가 묻어나는 그들 시선 한끝은 성욕과 어설픈 도덕률이 어쩔 수 없는 공존하는 우리 시각문화의 바닥을 향한다.
젊은 작가 8명의 ‘루킹인사이드’전(13일까지 백상기념관·02-724-2236)도 주제의식이 개입된 인물사진들을 출품했지만 일상의 특정상황 속에서 현존하는 인간에 관심을 둔다는 점이 색다르다. 어깨시절의 과거를 벗고 시장에서 새생활을 시작한 중년 근육질 아저씨, 흰 소복을 입고 국방부 정문 앞에 선 군의문사 희생자 어머니 등을 찍은 박진영씨, 한국사회의 특정공간에서 전형적인 행동유형들을 부각시킨 방병상씨의 사진들은 단순기호가 아닌, 다단한 의미를 발산하며 사는 시대 속 인간들을 두루 살피고 있다. 앵글 포착점은 다르지만 두 전시는 양적 팽창에만 익숙한 우리 근대 시각문화의 복잡다단한 지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노형석 기자
돼지가 소를 깔본다? (0) | 2004.04.12 |
---|---|
봄꽃보다 화사한 사람들 (0) | 2004.04.12 |
아이들과 함께 버들피리를 불었습니다 (0) | 2004.04.11 |
취중진담, 그 마음의 순도는 몇? (0) | 2004.04.10 |
"대장장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0) | 2004.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