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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어디 농사 뿐이랴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1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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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심어도 싹 트는 건 제각각
때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어디 농사 뿐이랴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전희식(nongju) 기자   
▲ 같은 날 심은 여러 종류의 종자들인데 싹 트는 것은 다 다르다
ⓒ2004 전희식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 서두르지 말라는 비난이 될 수도 있고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을 두고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아니요, 자민련이나 민주당의 몰락을 두고 뒤늦게 한 마디 거드는 것도 아니다. 오늘 완두콩을 밭에 옮겨 심으면서 이 말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지난달 16일에 삼백여 개의 포트에 종자를 심었는데 하도 싹이 안 트서 한동안 조마조마 했다. 열흘쯤 지났을까. 그때야 겨우 완두콩 싹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다른 놈들은 어떤가 하고 파 보았는데 꼼짝도 않고 씨앗들이 그대로 있었다.

씨앗들이 썩거나 말라 죽을까봐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낮에는 상토가 마르지 말라고 햇볕을 가려 주었다. 밤에는 산골마을 추위에 얼지 말라고 마대로 덮어 주었다. 4월이 되고서도 우리 집 마당에 세워두는 트럭 앞 유리창에는 성에가 끼곤 했다.

▲ 왼쪽에 상토를 들추고 올라오는 것이 오이씨앗이고 오른쪽에 떡잎들이 난 것은 호박씨앗이다.
ⓒ2004 전희식
오늘 밭에다 옮겨 심는 완두콩은 잎도 많고 가지도 몇 개씩 생겨나 있었는데 호박씨는 이제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이와 수세미, 어름 등은 몇 구멍을 파 보았더니 막 움이 트는 것도 있고 여전히 씨앗이 그대로인 것도 있었다.

자기에게 맞는 절기와 날씨를 종자마다 어떻게 알아채고 같이 심어도 이토록 각기 날을 달리해서 싹을 틔울까 놀랍다가도 그게 다 자연의 이치고 종자들의 특성이려니 싶어졌다.

작년에 직접 씨앗을 받아 잘 말려 보관했고 목초액을 희석하여 침종까지 해서 말린 다음에 심었기 때문에 발아율도 예년처럼 100프로가 되려니 하고 내가 성급하게 싹트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다 때가 있다는 것은 다른 농사에서도 겪었던 일이다. 작년에 들깨 모종을 세 차례에 걸쳐 했는데 늦게 심은 것도 꽃 피고 열매 맺는 시기는 일찍 심은 것과 같았다. 때가 되니까 심은 날은 달라도 같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이 경우에는 때라는 것이 날짜 수가 아니고 절기를 말하는 게 된다.

일이 한 때에 몰리지 않게 하려고 세 번에 나눠 들깨를 심은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때가 오는 걸 알아차리는 능력은 어떻게 생길까. 때를 놓치지 않는 능력은 또 어떻게 갖게 되는 걸까?
전희식 기자는 10년 전 전라북도 완주군으로 귀농하여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홈페이지 '농주의 귀농일기'(nongju.net)를 운영하면서 일과 놀이와 휴식이 하나된 삶을 추구한다. 생명의 농사 뿐 아니라 대안교육과 대체의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영성수련과 시민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최근 귀농 10년을 결산하는 <아궁이불에 감자를 구워먹다>라는 책을 냈다.

2004/04/18 오전 4:03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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