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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뒤집어줘야 농작물이 잘 자란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1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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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뒤집어줘야 농작물이 잘 자란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2)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도(parkdo) 기자   
40여년 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강원도 안흥 산골마을로 내려온 지 이제 열흘 남짓하다. 그마저도 선산 성묘도 하고, 아우와 친구를 만날 겸 2박 3일 남도 여행도 다녀왔으니 온전히 이 마을에서 지낸 날은 일주일에 지나지 않는다.

낯설고 물선 이 마을은 나와는 전혀 연이 없는 곳이다. 몇 해 전부터 아내가 여러 곳을 다니며 약 10년 간 거저 빌리다시피 해서 얻은 집이다. 폐가 직전의 집을 지난해 동안 아내가 손수 수리해서 두 식구가 사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꾸며 놓았다.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나오는 전원주택과는 거리가 먼 농가다.

▲ 텃밭에다 퇴비를 내는 필자
ⓒ2004 박소현
산골에 온 이상 산골사람이 돼야 한다. 내 집 이웃에는 사촌 지간인 노씨 두 집이 살고 있는데, 둘 다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그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내 집에는 200평 가량의 텃밭이 딸려있는데, 올해 이곳에 뭘 심어야할지 아직 결정을 못한 채 아내와 함께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 옥수수, 고추, 감자… 그리고 상추, 쑥갓, 들깨, 파 등 채소들을 조금씩 심어 반찬으로 해결할 요량이다.

노씨의 말에 따르면, 무엇을 심든지 해마다 묵은 밭을 갈아엎어야 농작물이 잘 된다며 밭을 갈기 전, 밑거름으로 퇴비를 뿌려 놓는 것이 좋다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5일 선거날, 일찍 투표를 마치고 당신 밭을 트랙터로 갈아엎을 때, 내 집 텃밭도 갈아줄 테니 전날까지 농협에 가서 퇴비를 사다가 밭에 뿌려두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13일 안흥의 장도 구경할 겸 농협공판장에 가서 퇴비 5부대를 사와서 오늘 아침 텃밭에 골고루 뿌렸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고약한 퇴비 냄새가 싫지 않았다. 나도 반 농사꾼이 된 모양이다.

내일 땅을 갈아엎게 되면 노씨의 도움을 받아, 텃밭에다 여러 작물을 길러서 푸성귀로 반찬도 하고, 고추나 옥수수는 서울에 사는 아이들에게도 보내야겠다.

▲ 장작을 쪼개는 필자
ⓒ2004 박소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퇴비를 뿌리고 있는데, 내 일하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내는 "농사꾼답지 않다"며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일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갔다. 아무렴 하루 아침에 익숙한 농사꾼이 되겠는가.

풋풋한 땅 냄새를 맡으면서 해마다 땅을 갈아엎어야 농작물이 잘 된다는 노씨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렇다. 해마다 땅을 뒤집고 또 새 흙으로 객토를 해야만 땅힘(地力)이 생겨서 충실한 곡식과 푸성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뒤집어줘야 세상이 건강할 텐데, 우리 나라는 해방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정치판을 뒤집어주지 않았다. 한 차례 정권 교체를 했다고 하지만 호미로 깔짝거리는데 지나지 않았다. 가래로 확 뒤집어야 그해 농작물을 잘 키울 수 있다.

이영희 교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저서처럼, 이번 선거 이후 우리 나라도 진보 정당이 의회에 많이 진출해서 정치판이 균형을 가지고 비상(飛上) 하기를 바란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보수와 진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국리민복(國利民福)의 국가가 되고 있다.

▲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아내
ⓒ2004 박소현
우리 정치가 부정부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친일파나 그 후손들이 활개치는 것도, 정치 발전이 없는 것도 사실은 보수 일변도의 정치권 때문이었다. 사람도, 제도도 이따금 바꿔줘야만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땅도 뒤집어야 농작물이 잘 된다"라는 농사꾼의 말에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가 담겨 있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고매한 학자의 고상한 말에서보다 우매한 농사꾼의 경험에서 우러난 우직한 말이 더 교훈적이다.

2004/04/14 오전 11:39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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