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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자 세대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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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자 세대

겸/ 10대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지난해 귀여니 열풍은 인터넷으로 언어를 배우고 소통방식을 익힌 세대의 등장을 뜻했다. 나는 귀여니의 소설이 한글을 파괴한다는 계몽적 비판세력과 열혈 독자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그것이 문학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에도 무관심했다. 단지 난 귀여니와 같이 인터넷으로 문자를 깨우친 동세대로서 그로 대표되는 인터넷 문자 세대의 문체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었다.


△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내 유년은 키보드를 두드려 게시판과 메일로(그리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쓰고 메신저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귀여니의 소설은 나와 같은 생활양식에서 자란 세대의 소통방식이다. 활자나 텔레비전과 같이 언어 권력을 지닌 매체와는 달리, 참여의 공간인 인터넷은 귀여니의 소설이나 ‘아’과 같은 한글을 변형한 새로운 문자를 가능케 했다. 이들은 한글을 변형시켜 제멋에 쓰고, 구구절절한 설명을 제거한 단문을 쓰며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인터넷을 통한 이들의 소통방식은 감정의 깊이를 동일화하고 표현의 스펙트럼을 단일화했다. ‘^^, ㅠ_ㅠ, -_-’ 같은 이모티콘은 상대방의 의사를 나타내는 최소한의 감정표현으로, A의 ‘^^’와 B의 ‘^^’는 기쁨을 표현한 똑같은 감정이다. 창조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 인터넷 문자 세대는 역설적으로 감정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슬픔은 더욱 그러하다. 슬픔을 나타내는 ‘ㅠ_ㅠ’는 정말 슬프다기보다는 일종의 유희로 읽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들의 언어에는 소통의지가 담겨 있지 않다. 선문답과 같은 이들의 대화는 누군가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말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한 행위일 따름이다. 소통은 불가능하고, 뭘 말하든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란 고루한 사실을 이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독백일지언정 자신이라도 즐거운 언어를 쓸 수밖에.

하지만 이들의 진심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다. 알고 싶은 지식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까지 가지 않고 ‘지식인’ 검색창을 띄우면 되는 이들은 방문을 잠근 채 메신저에 접속해 누군가 먼저 말을 건네주길 바란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보금자리를 튼 사람들은 이해받고자 하는 애절한 자기고백을 늘어놓으며 오늘 내 집에 몇 명이나 방문했고 몇 개의 글을 남겼는지 확인하며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감추고 싶은 비밀은 ‘일촌’지간에는 공개된, 어찌됐든 누군가에게는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뿐이다. 기실 이들의 독백은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정작 절실한 고민은 꼭꼭 숨겨두어 혼자 속을 앓는다. 이들은 이러저러한 설명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할 뿐더러 ‘ㅠ_ㅠ’ 따위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각자의 언어로 집을 짓고 표류하는 아이들, 더 이상 타자와 소통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 닫힌 문을 경계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인터넷 문자 세대. 내 일이 아닌 양, 외부의 시선으로 ‘이들’이라 지칭한 부류와 동세대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난, 내 슬픔을 ‘우리’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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